김지원
푸른 파도에 두둥실 실려 윤자는 부신 태양을 향해 누워 있었다. 처음 몸을 잠글 때는 선뜻하던 바닷물이 이젠 정감 있는 온도로 마치 살아 있는 듯 기분 좋게 윤자의 몸에 닿았다. 귓가에 찰랑이는 물결, 젖은 코끝을 스치는 바람, 멀리 시야 한 귀퉁이를 빠져나가는 돛단배며 모터보트의 단조로운 기관소리, 또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영어, 남미어. 또따또따, 발라솰라, 웨익웨익, 가려 들을 수조차 없이 각각 지껄이는 말들의 먼 꿈결같은 소리...... 태양이 눈부시어 윤자는 파도에 씻긴 눈썹을 잠에 취한 사람처럼 겨우겨우 열었다 닫았다 하며 아, 이것이 진정한 나의 평화다 하는 느낌이었다.
정일은 어디 있는가. 윤자는 몸을 일으켜 정일을 찾았다. 정일은 아까처럼 비치파라솔 밑에 앉아 무언가를 마시느라고 목을 뒤로 썩 젖히고 있다. 양코배기 사이에 있어서인가 먼데서 보니 스물일곱 정일의 몸은 마치 보이스카웃 소년같이 꼬인다. 흔히 한국동란 참전용사 사진에 같이 찍힌 하우스보이 비슷한 것도 같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날이 시작될 것이었다. 윤자는 나른한 정신으로 생각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어느 부인 잡지에서 보니 이혼을 하여 여자가 혼자 되면, 오랫동안 바라고 바라오던 이혼의 성취인 경우에도 여자는 패배감, 고독감을 느끼게 마련이니 (왜냐하면 이 사회는 행복한 결혼을 사회적인 성공으로 보기 때문) 이혼한 여자는 생활 습관을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고 필자는 말하고 있었다. 항상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고 하는 이런 것을 벗어나 자고 싶을 때까지 자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주중에라도 파티를 열고 사회활동에 참가해야 한다는 대개 그런 얘기였던 것 같다, 이름도 잊어버린 그 필자가 말한 대로, 경우는 약간 다르지만 윤자는 내일부터 또 다른 자기의 생활을 열어야 할 것이었다. 어떻게 ?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다른 생활이 되겠는가.
윤자는 자기가 어떻게 아주 다른 생활을 할 것인지 전연 막연하였다. 설령 달밤에 체조를 하여본다 한들 윤자 자신이 하는 일이니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아침부터 밤까지의 의미 없이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흘러 겨우 잠이 들면 다음날 날이 밝고,,,,,, 아무런 경계도 없이 나날이 흘러가리라. 혼자 먹는 밥이 얼마나 맛이 없고 자기 씹는 소리가 다시 자기 귀에 들리는 것이 얼마나 견딜 수 없을 것인가, 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내일부터 정일이 안 온다 하니 갑자기 앞으로의 나날이 지루하고 의미 없이 윤자 눈에 다가오는 듯하였다. 몰라 몰라 몰라. 윤자는 다시 태양을 향하고 누워 헤엄을 치며 평화 평화, 이것만이 나의 평화, 자꾸 중얼거렸다.
며칠 전 스튜디오라고 불리는 윤자의 단간 아파트 방에서 사 가지고 온 콩나물과 두부로 된장국을 만들던 정일이 낡은 소파에 앉아(이 소파는 조크만 식탁과 더블어 이 방의 유일한 가구로 밤에는 침대로 사용되었다) 뜨개질 손을 놀리고 있는 윤자에게,
「미세스 리, 우리 결혼하면 그 축하로 비치나 갔다올까요? 신혼 여행이라는 것 있지요,왜.」
문득 말했을 때 윤자는 일부러 웃음소리를 만들어 그 대답을 대신하였었다. 어느 집단이건 그들에게만 통용되는 유모어가 있기 마련이듯, 윤자와 정일이 사이엔 결혼이란 말처럼 농담 같은 말은 또 없었다. 어디까지나 깨끗한 농담이란 표시로 정일도 윤자의 웃음소리에 자기 웃음을 더하였었다.
정일이 낸 결혼하는 날이란 말은 그가 영주권을 타는 날이라고 고쳐 말해야 할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 법적으론 엄연히 신혼 부부이고 이제 그 결혼에 따라 얻어지는 정실의 소망인 영주권을 얻는 날을 정일은 결혼하는 날이라고 말해버린 것이었다. 윤자가 천오백 불이란 돈을 받고 형식상의 결혼을 해주기 전까지 정일은 미국 이민국으로부터 쫓기는 몸이 되어 있었다. 유학생의 신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는 죄목이었다.
「미국은 요새 인플레니 뭐니 해도. 그래도 세계의 대국이 아녜요? 그런데 유학생을 이렇게 대우하는 건,,,,,,」
처음 만난 날 정일은 쫓기는 몸의 공포도 있고 해서인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윤자에게 말하였었다. 그리고 두 달이 가까운 지금, 유력한 변호사 덕분인지 의외로 일은 순조릅게 진행이어 정일은 영주권을 얻고 윤자는 원하는 돈을 다 받고, 그리하여 오늘로 그들의 관계는 끝을 맺게 되는 것이었다.
정일이 동양인 특유의 노랗게 반들반들한 피부를 빛내며 천천히 물가로 오고 있었다. 이곳에선 백인이 별로 희어 보이지 않듯 한국에 살 땐 윤자는 동양인을 -황인종이라고는 그러지만, 뭐 별로 노랗다고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정일이 뭐라고 웃으며 윤자에게 소리지르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가 않는다. 우리 시합할까요 한 것 같기도 하고, 물이 차지 않아요 한 것 같기도 하다.
처음 같이 차이나타운의 피복공장에서 일을 하는 기영 엄마로부터 돈을 받고 순전히 비지네스로 결혼을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구원을 얻은 듯 기뻤던 순간을 윤자는 기억하고 있다. 기영 엄마는 말하였었지. 유학생인데 말이오
,,, 서울에선 형이 살만큼 사는 집이긴 한가봅디다만,,,, 출국령을 받고 지금 다른 주로 도망가려고 짐이랑 죄 꾸렸대요, ,,, 미국 온 지 겨우 칠개 월만에,,,,,,남들은 다 잘 견디는데 재수도 없지,,,,,, 기영 엄마의 여러 가지 말 중에 윤자의 귓속에 쏘옥 들어와 박힌 것은 오직 한가지, 천오백 불이란 말뿐이었다. 그까짓 결혼쯤 못해줄 게 무어겠는가. 중국 처녀와 같이 쓰고 있는 햇볕도 들지 않고 바퀴벌레가 우글우글한 맨하탄 지하실 방만 면할 수 있다면, 게다가 심한 미싱 일로 허리는 판자처럼 뻣뻣하여 이미 일생 지니게 될 불치의 신경통이 허리 근처에 생긴 것을 윤자는 가끔 절망적인 기분으로 생각해보곤 하였다. 고저가 강한 중국말의 소용돌이. 박아내는 갯수로 계산되는 임금. 부리나케 돌아가는 빠른 미싱의 소리. 삶의 전쟁터, 삶의 아우성, 공중에 뿌옇게 떠 있는 먼지 속에 하루종일 미싱을 밟아대노라면 나중엔 집었다 놓았다 하는 헝겊의 무게조차 감당할 수 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천오백 불이 당장 생긴다면, 그녀는 생각하였다 - 우선 소원인 햇볕이 방안에 가득 들이밀리고 창을 열면 거리라도 내려다볼 수 있는 조그만 방을 얻을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소원이 이루어져 윤자는 뉴욕 서부 지하철 종점에서 이십 분쯤 걸리는 곳에 스튜디오라고 불리는 단간방을 얻고 정일을 기영 엄마가 한국말 속에 섞어 쓴 영어대로 비지네스 손님으로 맞아들였다.
정일은 윤자의 영주권으로 산 윤자의 고객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당분간 차이나타운의 심한 노동일에서 놓여날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도 늦게 눈을 떠 누운 채 밑의 거리를 지나는 차 소리를 듣거나 레코드를 들을 수 있었다. 저녁이면 정일이 임시 얻은 직업인 회계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윤자는 하숙집 아줌마가 하숙생을 맞듯 맞아들여 지어놓은 저녁을 같이 먹곤 하였다. 윤자의 하루는 정일이 오기 전과 온 후로 나누어졌다.
저녁을 같이 먹는 대신 정일도 마음속에 계산을 잔뜩 하고 있는 듯 신세지지 않을 정도로 장을 봐오고 때론 정일이 손수 음식을 만들기도 하였다, 윤자는 마침 가까운 거리에 있는 편물 공장에서 이미 짜놓은 편물 옷의 소매며 몸통을 가져다가 꿰매 다는 일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지난달 수입은 열을 내어 하지 않은 탓인지 비교적 싼 방세마저도 되지 않는 돈이었다. 이제 앞으론 좀더 부지런히 해야지. 그러면 굶지야 않겠지. 아직도 정일에게서 받은 돈이 좀 남아 있고, 그러니 당분간 별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아, 몰라, 지금은 평화 평화, 나 의 평화.
「꽤 오래 물 속에 계시는데요.」
정일이 파랗게 변한 입술로 웃으며 가까이 헤엄쳐왔다. 내 입술은 더 새파랗겠지, 물 속에 더 오래 있었으니까. 어쩌면 립스틱을 발라서 괜찮을지도 몰라.
「뭐 마실 것 남았어?」
「네, 콜라도 좀 있고. 물도 방금 떠다놓고 왔어요.」
오늘 해변 나들이는 전부 정일이 주최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불고기, 통조림 등으로부터 종이 냅킨에 이르기까지 전부 그의 비용이며 준비였다.
「미세스 리. 여기 조개가 많이 있다는데 우리 캐 가지고 찹시다, 어떻게 큰지 두 개만 먹으면 배가 부르대요. 이따 집에 가서, 고단한데 간단히 밥하고 해서 먹으면 좋겠지요?」
윤자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물위에 수박 공 같이 떠 넘실넘실 움직이는 정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애는 우리 집에 들를 생각이란 말인가. 우리 집에 들러 마지막 날인 오늘도 늘 하듯이 열한 시 반에 떠날 것인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하긴 윤자의 방에 있는 그의 소지품들을 가지고 가려면 일단 들어오긴 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윤자는 아까 점심을 먹으며 정일이 그녀 집 앞에 차를 대면, 아주 평범히 새 학기가 되면 또 바쁘겠다라든가 인제 기숙사로 들어갈 것이냐라든가. 그런 말로 끝을 맺겠다고 생각하였었다.
정일과 관계에 있어 나이 많은 여자가 젊은 남자에게 치근거리는 것같이 보이지 않는가 하는 것이 윤자가 가장 경계하여 조심하는 점이었다. 아파트의 층마다 있는 공동 샤워장에서 샤워를 맞은 정일이 젖어서 들어서면 윤자는 타올이라든가 로션 정도 건네주고 싶지만 정일이 자신이 가진 열쇠로 방문을 여는 것조차 모른 체하고 앉아 있곤 하였다.
윤자와 함께 저녁을 먹은 후(그들의 기묘한 결혼생활 후반엔 밥을 먹으면서 정일은 신문을 보고 윤자는 레코드를 듣는 체하였다) 정일은 말도 없이 저편 구석 식탁 의자에 앉아 책이나 무엇을 보다가 밤 열한 시만 되면 두 블럭 떨어져 있는 친구 집으로 꼭 자러 내려갔다. 출국령을 받은 사람이 결혼을 하였다고 영주권을 신청하면 틀림없이 이민국에서 조사를 나올 것이니 아파트 주위 사람들에게 그들이 부부라는 인상을 주도록 같이 들락거릴 것이며, 되도록이면 저녁 늦게까지 정일이 윤자의 집에 있을 것, 그리고 윤자의 방에 정일의 잠옷이며 헌 구두 등의 소지품을 갖다놓을 것 등을 그들은 변호사로부터 충고 받고 있었다.
재깍 재깍 재깍
윤자는 뜨개질이나 또는 레코드를 들으며, 정일은 책을 읽기도 하고 편지를 쓰기도 하며-하여튼 두 사람은 무슨 일인가에 지독히 열중해 있는 체하며, 그들은 몰래몰래 자기의 시계를 자주자주 들여다보았다.
재깍 재깍 재깍.
드디어 열한 시 반, 어김없이 정일은 풀어놓았던 시계를 주워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일이 나갈 때 윤자는 배웅하지 않는다. 정일은 자기 몫의 아파트 열쇠를 절렁거리며 - 안녕히 주무세요 - 또는 - 저 갑니다 - 대강 그런 말을 달싹달싹 중얼거렸다. 키가 훌쩍 크고 소년 같은 그의 모습이 문을 열고 사라지기까지 윤자는 숨을 죽인 채 계속 하는 일에 몰두하는 체하였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었다. 만나면 이런저런 한국 소식이며 또 이곳 사회의 이야기, 미국의 이민 정책 물가고 , 직업난 같은 두루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고 헤어질 때 윤자가 문간까지 나갔었다. 이와 같이 침묵의 저녁이 시작된 것은 윤자가 정일에게 같이 살자고 말한 이후부터였다. 어째서 그때 그런 얘기가 불쑥 나왔던가. 그날은 특별히 저녁에 올 때 정일이 맥주를 사와 두 사람은 술을 마시고 해롱해롱해진 기분 속에 아는 노래들을 동요부터 유행가까지 죄다 불렀다.
눈물도 한숨도 나 홀로 씹어 삼키며, 나 홀로 걸어왔네 사나이 험한 길,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뭉게구름 피어나듯 사랑이 일고,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고향 고향 내 고향 박꽃 피는 내 고향,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시끄럽다고 옆집에서 벽을 두드리면 조심하여 소리를 작게 내다가 다시 큰 소리로 되었다, 그러다가 윤자는 문득 정일에게 말하였던 것이다. 뭐라고 말하였던가, 그 말 자체는 잊어버렸으나 말할 때의 마음 돌아감만은 아직도 기억한다.
뭣하러 정일은 밤 열한 시 반만 되면 반기지도 않는 친구의 아파트로 자러 내려가는가. 이곳 한 구석에 그냥 자며 같이 매일 누이처럼 동생처럼 살면 좋지 않겠는가. 그러자 갑자기 방금까지 노래를 부르고 죄수들이 지문 찍을 때의 표정 - 피아노 친다고 말하는 그 순간의 표정을 흉내내어 윤자를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웃겨주었던 정일이 몸을 흠칫하며 얼굴을 굳혀, 윤자는 자기가 실수하였음을 그 당장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정일은 전처럼 반찬거리는 사오지만 맥주 깡통 같은 것은 들고 오는 법이 없고 노래는 물론 얘기조차 길게 건네지 않았다. 달팽이가 껍질 속에 숨듯 그는 잔뜩 자기 껍질 속에 움츠러들어 윤자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정일이 시계처럼 어김없이 일어나 나가면 윤자는 온몸에 퍼지는 모욕감을 느끼며,
-자식, 누가 잡아먹는다나.-
닫힌 문에 돌아가는 열쇠 꼬리를 향하여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이윽고 열쇠가 찰카닥 돌아가고 정일이 멀어지는 기척이 들리면 윤자는 진저리치듯 일어나 샤워를 하고 -몸의 슬픔을 털어버리려는 듯 세게 세게 비누질을 하고- 바로 자리에 들기도 하지만 대개는 레코드를 들었다. 줄다리기 싸움이야. 혼자 사는 윤자는 중얼거림이 입버릇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내 마음에 들려고 살살 눈치는 살피며 혹시 내가 결혼을 못해주겠다고 할까봐 전전긍긍 애태우고 있겠지. 사실 그렇지, 이제 와서 내가 싫다고 하면 제가 어떻게 할거야. 어디서 또 나같이 영주권이 있으나 독신인 여자를 찾든지 다른 주로 뺑소니치든지. 그러나 그 두 일이 다 아득하기만 하겠지. 윤자는 입술을 삐죽하였다.
그 후회스런 -동거- 말을 꺼낸 다음 저녁, 윤자는 일부러 정일이 오는 시간쯤에 지나다니며 보기만 하던 근처 놀이터로 처음 나가보았다. 정일이 오는 것을 죽치고 기다린 것 같은 인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비낀 석양빛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하얀 피부, 갈색 피부, 까만 피부, 또 동양 아이들도 두엇 있었다. 정작 나와 놓고 보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을 지키지 않고 밖으로 나온 것이 더 그들의 관계를 이상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그녀의 심장을 곽 누르는 듯했다. 전날, 같이 살자고 얘기한 것은 그때 분위기가 그렇게 시킨 것이지 대단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정일에게 할 말을 마음속으로 만들어보려 하나 잘 되지 않아 윤자는 귀찮은 생각에 그만 중단하여 버렸다. 정말로 이제 와서 윤자는 결혼 같은 걸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어느새 자기 나이 같지도 않게 낯선 나이에 이른 마흔이란 나이, 그리고 이제 정일이 스물일곱 청년이라는 그 나이 때문이라기보다도 윤자는 결혼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남편은 사업이 의외로 번창하여 칠 년 후 윤자와 이혼할 때쯤에는 자가용도 가지고 화곡동 근처에서 제일 좋은 집을 가진 부자가 되어 있었다. 남편은 어느 날 문득 말하였었지. 우리 이혼하자, 이 집은 네가 갖고. 윤자는 너무 놀라서 잠시 기절이라도 했던 것 같다. 뭣 때문에요? 여자가 있어요? 아니, 없어. 난 결혼이 맞지 않나 봐, 혼자 지내고 싶어, 그렇다면 삼 년 동안 마음대로 지내다 오세요.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좋아요. 그러나 남편은 부득부득 이혼을 우겨대다가 나중엔 세면 도구와 옷가지만 들고 나가버렸다. 윤자는 매일 질금질금 울며 틀림없이 남편에게 새 여자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고 퇴계로 남편의 사무실이 있는 곳에 숨어 지켜 서 있기도 하였었다. 정말 남편에겐 그때 여자가 없었던가. 단순히 사는 데 진력이 나서 이혼을 하자고 하였던 것인가. 그들의 아이는 인큐베이터에서 크고 나중까지 건강치 못하여 아프기만 하다가 죽었다. 엄마 경험이 없는 자기는 매사 허둥지둥하기만 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진력이 난 것일까. 아니면 남편이 늦게 돌아오는 저녁 같은 때 자기에게도 불쑥 찾아들던 - 살림을 부수고 어디 먼데로 가고 싶은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남편에게도 든 것이었을까. 지금, 남편은 재혼하여 살고 있단 소문이다. 윤자는 일생 중 미래의 어느 날 남편을 만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같이 나눈 젊은 날의 기억을 그에게서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다는 아주 막연한 바램 같은 것을 먼 하늘가에 걸고 있었다.
「한국사람이여?」
누군가 앞에 와 서서 윤자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뒤통수에 송편만한 쪽을 단단히 달고 있는 쪼그라붙은 듯한 한국 노파였다. 반갑기도 하고 어진지 주위의 시선이 느껴져 약간 부끄럽기도 한 나일론 갑사 치마저고리.
「네.」
대답하기도 전에 노파는 윤자 옆에 몸을 털썩 던지듯 앉더니 치마 밑에서 빨간 갑의 담배를 꺼내었다.
「색시두 필라오?」
「아니요.」
노파는 담뱃불을 붙이며 싸움이라도 걸 듯,
「아, 이곳이 어디 사람 살 데여 ? 짐승이나 살 데지. 뜨뜻한 장판방에서 살다오니 마루랑 시커멓고 죄 신발 신고 다니고, <집에 가시지 그러세요?>아, 아들놈들이 보내줘야 말이지. 난 죙일 애 보는 게 일이여. 저눔의 비행기만 보면 눈물이 난다니까, 내가 어찌다가 저눔으걸 타고 여길 왔나 싶어서.」
노파는 매일 울고 있은 듯 눈이 빨갛게 진물러 있고 그 눈에 다시 새로운 눈물이 고여왔다. 윤자는 고개를 들어 마침 머리 위를 낮게 떠가는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근처에 비행장이 있는 까닭에 비행기는 이제 막 이륙을 시작한 자세로 하늘을 향하여 떠오르고 있었다.
비행기 몸체에 붙은 빨간 불 초록빛 불이 저녁하늘 속에 깜박이며 떠가는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며 윤자는 새삼 목이 메는 기분이었다. 타향살이 팔 년째. 나는 이 할머니처럼 그리운 고향도 없고, 비행기를 보고 눈물을 흘릴 기분도 아니고 - 고국은 그녀에겐 수치의 고장이었다, 그곳으로부터의 탈출 탈출, 그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길같이 생각되었었다. 자기는 아무 데나 바람 부는 대로 떠다니는 민들레 씨 같은 것, 육 층 창문까지 높이 날아든 민들레 씨를 윤자는 손바닥에 받아본 일이 있었다. 그때 윤자는, 아, 여기까지, 하고 중얼거렸었다.
그날 놀이터에서 일곱 시쯤 돌아와 보니 정일이 이미 와 있었다.
「어디 가셨댔어요?」
문을 열고 정일이 선생 앞에 선 중학생같이 발했다. 먼저 말을 걸어준 정일에게 그녀는 안도를 느끼며,
「방금 한국할머니 한 분을 만났어.」
「아. 그 한복 입고 다니는 할머니 말이지요? 미국 나쁘다고 그런 소리 미세스 리에게도 해요?」
「알아?」
「그 할머니 유명해요. 한국사람만 봤다 하면 줄줄이거든요.」
이렇게 평범하게 시작된 그 저녁이 결국은 그 이후로 오는 수많은 줄다리기 같은 팽팽한 침묵의 대결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정일이,
「미세스 리, 우리 결혼하면 비치에나 갈까요?」
하고 성큼 대담한 농담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드디어 ! 이민국의 정식 허가가 내려 변호사에게 사인하러 갈 일만 남았을 때였다. 오후 여섯 시라고는 하여도 여름 해라 아직도 한낮같이 밝은 뉴욕 팔월의 무더위 저녁이었다. 창문에 달아놓은 조그만 환기용 선풍기가 붕붕붕 소리를 내며 아파트 맨 꼭대기 층의 열기 속에 허덕이듯 돌아가고 있었다.
정일은 들뜬 기분에 불쑥 말했겠지만 윤자로선 어디까지나 농담인 줄 알면서도 그 결혼이란 말이 신경에 걸려, 그때 뜨개질 손을 멈추고 전축에 레코드를 얹었었다. 싸구려 전축은 얄팍한 소리로 정감 있는 남자의 노래를 풀어내었다.
아 이제는 우리 헤어질 시간
다시 한번 내 손을 잡아주어요
그러나 노래의 가사가 무슨 저의가 있는 듯 정일에게 들릴 것 같아 윤자는
「노래를 틀면 더 덥고,,,,,,」
하며 전축을 곧 꺼버렸던 것이다
그때의 약속대로 이제 영주권을 받아든 정일은 차를 빌어 해변 데리고 나왔다. 일종의 사례 같은 거겠지. 해산 후의 산모가 의사에게 드리는 꽃이나 술 같은 것 (윤자는 그렇게 사례하였었다.) 또 졸업 때 선생님에게 드리는 기념품 같은 그런 거겠지. 윤자는 부풀어오르며 다가오는 파도에 고개를 푹 집어넣고 몸을 솟구치며 크게 중얼거렸다.
주말 러시아워의 혼잡을 퍼하기 위하여 그들은 남들보다 늦게까지 해변에 남아 있었다. 저녁이 되어갈수록 바람이 쌀쌀해져서 물 속에 들어가지 않고 식어 가는 모래 위에 앉아 있었다, 야외인 탓인지 아니면 마지막 날이어서인지 오늘은 두 사람 사이의 줄다리기 시합이 많이 완화된 기분이다. 그러나 서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또는 가끔 전화라든가 편지라든가 그런 보통 아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인사말 같은 것은 쑥 빠졌다. 얘기를 많이 한 쪽은 정일로, 그는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그런 얘기들을 젊은 청년이 가지는 싱싱한 분위기로 얘기했다. 팔 년 전에 떠난 윤자로선 정일이 말하는 언어에서 물고기가 뛰노는 듯한 신선한 매력을 느낀다. 학교 때 운동하러 다니던 얘기, 아홉 살 때 홍역하던 얘기, 미국에 가서 아르바이트하겠다고 운전 면허 따러 서울의 삼복 더위에 돌아다니던 일, 그런 간단한 경험담으로부터 책을 읽은 얘기 -빠비용-이란 책을 보니 바로 빠삐용 같은 그런 의지로만 산다면 미국 천지에서도 못할 게 없겠습디다. 또 이곳 사람들이 모이면 흔히 나오게 마련인 엽전 근성 -중국사람들은 일대째는 지하철 공사에서 막노동자로 일하며 한 푼 두 푼 모아 이대째에 가서 조그만 세탁소나 우동 가게를 내고 삼대째 가서야 집도 짓고 교육도 하고 그런다는 거라. 그 얘기 듣고 보니 나도 그렇지만 우리 나라 사람은 성미가 급해 일이 년 안에 결산을 보려고 그러는 것 같애요,,,,,, 떠날 때 친구며 형님께 말했어요.
우표 값이 없어 편지를 부치지 못할지도 모르니 섭섭해하지 말라고요. 형님이 새 만년필 하나를 주시며 이게 제법 비싼 건데 미국 가서 정 배고프면 팔아서 밥 한 끼 사먹으라고. 또 누이는 금반지를 만들어줬어요. 내 그눔으걸 끼구 새 옷을 위부터 아래까지 쪽 뽑아 입고 비행기 안에서 하나도 먹지 않고 - 정말 아무 것도 안 먹었어요 - 그러구 앉아 있었으니 스튜어디스가 벌써, 아, 저놈은 지금 처음 비행기 탄 놈이구나. 알았을 거란 말예요. 참. 그눔의 반지는 왜 떡 끼었는지. 이와 같이 그렇고 그런 얘기들이었다.
윤자는 공원에서 만났던 한국 노파 얘기를 좀 자세히 하고(왜 나는 그 할머니 생각을 그리도 자주 하게 되는가?) 그리고 자기 신상 얘기도 아주 조금 했다. 얘기를 안 해도 정일은 기영 엄마를 통해 자기가 의지 없는 이혼녀라는 것쯤 알고 있을 것이었다.
태양이 엷어질수록 바람이 세어져서 그들은 수영복 위에 옷들을 걸쳐 입었다. 아무렇게나 입은 정일의 옷이 거꾸로 되어 목뒤에 붙은 상표가 글씨도 선명하게 -거북표-라고 적힌 것을 윤자는 문득 그리움 같은 것을 옷에라기보다 그 옷을 입고 있는 정일에게 느꼈다. 미국 온다고 정일은 저 옷을 사 입었겠지. 형수나 누나가, 이것 입어봐, 하여서 옷가게 앞에서 훌쩍 목을 집어넣어 입어봤을까, 아니면 혼자 옷가게를 기웃거리다가 상점 여자의 등살에 못 이겨 집어든 옷일까.
자기에게도 아직 서울에서 산 옷이 몇 개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온 지 얼마 안 되는 정일은 구두도 셔츠도 심지어 칫솔까지 전부 한국 상표다.
「셔츠를 뒤집어 입었어.」
정일은 윤자의 꾸준한 시선에 반발이라도 하듯 난폭하게 옷을 벗었다가 다시 입었다.
좀 떨어진 곳에 길게 누워 애무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 연인들과 몇 그룹을 제외하면 이제 사람들이 거의 떠난 해변엔 바랜 흰빛의 갈매기 떼가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어딘가 억센 듯 보이는 날개며, 믿지 못하겠다는 듯 날카롭게 쉴새없이 움직이는 눈초리며, 뾰족한 부리가 곧장 자기의 눈이나 심장을 파먹을 듯싶은 무서움을 느끼며 윤자는 깔았던 타올을 개켜 넣고 일어섰다.
「그만 가.」
그들은 차가 서 있는, 이제는 차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 광활한 운동장같이 넓은 주차장 한켠에도 수많은 갈매기가 이미 내려앉아 있었다.
정일은 차의 발동을 걸며,
「저 갈매기 밭 가까이로 가볼까요?」
「날아가겠지.」
「살짝 가면 괜찮을 거예요. 수천 마리는 되겠는데요.」
차는 갈매기 떼 곁을 천천히 미끄러지듯 굴러갔다. 정일이 말대로 날아오르지 않는 갈매기를 윤자는 이제 아무 공포도 없이 창 밖으로 볼 수 있었다.
차는 바다를 뒤에 두고 하이웨이로 들어섰다. 차창의 옆면으로 대규모 놀이 성난 듯 검푸른 하늘에 짙게 깔리고, 먼 산이며 나무들의 검은 형체가 뒤로 돌아가며 물러나고 있었다. 차는 이미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었다.
「고단하시지요. 뒤로 편히 기대세요, 수영이 은근히 힘든 운동이에요.」
더 이상 말이 없는 때문인지 어떤 엄격하고 조용한 정일의 질서를 차의 스피드에서 느끼며 윤자는 앞 차창에 가득 퍼진 놀이 어디까지 따라올까, 새삼 이 땅덩이가 거대하다고 생각도 해보고, 오늘 집에는 같이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정일의 소지품을 다음날 어디에서 정일을 만나서 줄까. 그러면 또 한번 더 만나게 되니 번거롭고....., 바닷물이 나가지 않아 조개는 결국 못 잡고 말았다. 이제까지 내가 정일에게 너무 만만하게 보인 것은 아닌가, 돈에도 정에도 굶주린 여자로 보인 것은 아닌가, 이러 저리 생각을 갈렸다. 정일은 언젠가 말하였었다. 나는 여기서 학위를 따고 책도 두어 권쯤 써서 이름을 낸 후 한국에 가고 싶어요. 요샌 박사가 너무 많거든요. 그냥 갔다간 실업자 되기 딱 알맞지. 그런 너의 인생이 나보다 훨씬 값지다고 너는 생각하는가. 네 이력에는 항상 내가 아주 하찮게 입에 올려지겠지. 미국서 출국령을 받았을 땐 한심하더군. 그래서 돈 주고 마흔살 난 아줌마하고 결혼했지. 그 동안 혼났다, 혼났어. 그 여자가 막 같이 살자고 뎀비잖니, 아니면 미래에 나타날 그의 연인에게 구혼을 하며,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한번 이혼을 한 몸이에요, 놀라셨습니까? 그러나 실은- 하고 지껄일지도 모른다. 윤자는 그런 생각을 한 것조차 불쾌해져서 고개를 흔들었다. 정일은 조용히 차를 몬다, 핸들 위에 얹힌 그의 손이 정결하게 윤자의 눈에 비쳤다. 공부하는 손. 윤자는 그 손을 끌어 잡고, 아니면 이발로 꽉 물고 그를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 손을 곽 물고서 이 다음, 아주 이 다음까지라도 어디 가 윤자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었다.
얼굴에 닿은 윤자의 시선을 느끼고 정일은 살짝 윤자를 곁눈질해 보았다. 조그마한 얼굴이 약간 비스듬히 정일 쪽을 향했다가 앞으로 향한다. 이 여자는 미인은 아니지만 - 어떤 때는 마른 탓인지 시들어 보이기도 하지만 - 어떤 때는 굉장히 예뻐 보인다. 특히 더울 때면 살결이 꿀 빛으로 윤이 나고 속눈썹은 더욱 짙어지는 것 같다. 정일은 한번 또 이 여자의 얼굴을, 거북해서 자세히 본 일이 없다. 그래서 가끔 그 얼굴을 - 그 자그마한 얼굴을 손아귀에 집어넣고 오래도록 보고 싶은 가벼운 충동을 느껴보기도 하였었다.
「미세스 리, 애기는 없었어요?」
「죽었어.」
윤자의 망막엔 베이비 파우더 냄새와 우유 냄새가 배어 있던 그 아이의 옷이며 장난감, 담요 등을 태우던 집 안뜰이 떠오른다. 장미가 피고 졸리운 여름 오후였지. 아, 그 분노와 회한 속에 아프던 마음.
정일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죽었어, 하는 메마른 윤자의 음성이 산뜻하게 그의 귀에 남아 있어 그는 탐색하는 눈초리를 몰래 그녀에게 보내었다, 이 여자는 감각이 없는 여자 같다. 항상 무표정해 있고 남에게는 관심이 없고, 아이의 죽음조차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 하긴 그 동안 세월이 흘렀으니. 자기도 어머닌 대학 다닐 때 돌아가시고 아버진 어려서 돌아가셨지요. 그런 말을 별 슬픔 없이 얘기하지 않는가. 그런 거겠지. 그러나 아이를 잃은 여자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그냥 간단히 죽었어, 할 수만은 없는 게 아닐까.
그는 기영 엄마로부터 윤자가 가난한 독신 여자인 것을 처음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이름조차 그냥 아무렇게나 지어 붙인 듯한 윤자라는 이름이어서 그는 아무런 느낌 없이, 이를테면 그 여자가 여자라는 것조차 염두에 없이 영주권을 얻을 길이 생긴 것이 기뻐 기영 엄마를 통해 선금을 지불하였었다. 아니, 그저 자기와 법적 결혼을 해주려는 여자는 고생을 지독히 하는 가난한 사람으로, 용모는 그저 막연히 기영 엄마 비슷하게 짧은 파마 머리에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통자루 같은 원피스를 입고 흰 샌들을 신고 다니는 사십대의 어색한 양장차림 아줌마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정일은 기영 엄마 집 버스 정류장까지 기영 아빠(그는 형님의 친구였다)와 같이 마중을 나가서 소년 같은 숏커트머리에 소매 없는 물빛 원피스를 입고 서 있는 자그마하고 마른 여자를 발견하였다. 쌍꺼풀이 밭고랑같이 깊고 눈썹이 짙고 피부는 윤이 나게 가무잡잡하여 동남아 지방 어느 여자 같은 인상이었다, 마르고 긴 팔에 기다란 백이 걸리고 손에는 선글라스가 걸려 있었다.
함께 기영 엄마의 집으로 걸어가며 정일은 자기 어깨에밖에 키가 안 차는 이 여자에게 자꾸 측은한 죄스러움을 느꼈다. 술집 여자에게 느꼈던 것 비슷한 감정 거북해지는 정일과 달리 윤자는 아무 생각도 없는 듯 산뜻하게 굴었다. 학생이시라구요 ? 이렇게 말을 시작하여 아파트는 어제 얻었어요, 사흘 후에 이사를 할텐데요, 이따 같이 가서 집을 알아놔야지요, 아주 조그매요, 욕실도 부엌도 따로 없고. 마흔이나 된 여자의 몸이 어찌된 것이 열여덟 소년 같은 그런 느낌을 주었다. 이 여자가. 마흔이나 된 여자가(그 마흔이란 나이가 정일에게 자꾸자꾸 파고 들었다) 돈 때문에 나랑 결혼을 한다. 늙은 창녀를 대한 듯 그는 정말로 죄스러워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아주 그만 정말 결혼을 하시지. 따안따따따,,,,,,」
저녁을 먹을 때 웨딩 마치까지 불러가며 기영 엄마가 놀릴 때도 정일은 쥐구멍을 파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윤자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시내로 들어가며 차가 밀려 그들의 차는 가끔씩 멈춰 섰다. 보트를 뒤꽁무니에 매단 차, 자전거를 실은 차, 지붕 꼭대기에 텐트며 삽을 실은 차들도 드문드문 눈에 띄는 자동차의 행렬.
「우리가 늦게 떠났으니 그래도 이렇지요, 한두 시간 전만 해도 이 길은 메워졌을 거예요.」
윤자는 말이 없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정일은 거리의 문닫은 상가를 바라보며 영주권 때문에 국제 전화에 매달려 형님의 어려운 돈을 긁어 온 일이며 (형수가 그것을 알고 있을까?) 이번 학기는 돈이 없어 등록을 못할 것을 우울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곧 힘을 내었다. 그러면 대수냐, 이제 영주권이 있으니 (그는 가슴을 쭉 폈다.) 어디 뒤지고 다니면 취직을 못할 리야 없겠고 다음 학기 쉬며 부지런히 벌면 그 다음 학기엔 등록을 할 수 있겠지. 영주권이 있으니 학비도 반으로 싸지겠고. 그의 머리는 잠깐 집세와 식비 같은 것을 줄일 대로 줄이면 얼마나 될까 산수 놀음으로 바빠졌다. 그렇지만 먹는 걸 너무 줄이진 말아야지. 건강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공부뿐 아니라 그 인생이 그냥 병고에 시드는 것를 정일은 여러 번 듣고 보아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의 인생은 자기에 비하여 얼마나 쉬운가. 공부를 안 해도 되고 매일 매일 레코드나 들으며 먹고살다 가면 된다. 세월아 네월아 하며 살아가면 된다, 정일은 또 지성인이라고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젊은 자기가 아무런 생각 없이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것에 수치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누가 고국에 돌아간다고 하면 무조건 애국자, 이곳에 뼈를 묻겠다 하면 미국화 되었다고 비난하는, 그런 똑똑하다 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떠나 아무런 편견 없이 자기가 조국에 대해 가지는 자기 자신의 감정이 그는 부끄러웠다. 나는 무엇 때문에 기를 쓰고 이곳에 있으려 하는가. 자기의 학문이 그다지도 위대한 것인가. 마치 이젠 싫증이 난 애인을 의리상 도덕상 어루만지고 돌보아주어야 되는 그런 입장에 있는 사나이 심정처럼 자기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는 미국에 대해서도 한국에 대해서도 비평가의 안목으로 대할 때 갖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중학생 시절 영어 시간에 앉아 막연히 동경하였던 대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것이었다. 마니, 공부 그 자체보다 공부하였다는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이었다. 더 더우기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가끔씩 이곳에서 아주 살아버릴까 하는 충동을 느끼는 점이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떨까, 그 사람들도 이곳에 살며 자기 조국에 대해 죄의식을 느낄까. 정일은 핸들에 손을 얹은 채 생각을 달렸다. 책에서 더러운 미국 물질 문명을 개탄하는 글들을 읽을 때면 무엇이 더러운 것인지 모르겠는 그는 정말 자기 가슴을 쥐어뜯으며 스물일곱 한국 청년이 이 세상과 가지는 연관을 바로 깨닫고 그 마음에 활활 타는 분노를 가지고 싶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진정 똑똑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한국인이라는 그런 죄의식조차 없이 살아가고 있다. 세월아 네월아 살아가고 있다.
마침내 차가 윤자의 아파트에 와 멎었다. 육 층 높이의 바랜 벽돌 빌딩들이 늘어선 우울한 아파트 거리. 시멘 트바닥의 인도를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손에 손을 잡은 노인 부부가 주말의 늦은 저녁을 천천히 산보하고 있었다. 정일이 얼른 차에서 내려 아이스박스며 타올 등속의 짐을 어깨에 메었다.
「할로, 오늘 비치에 갔었니? 너희는 아직 아이가 없어서 인생을 마음대로 엔조이할 수 있겠구나.」
삼층의 노파가 반바지차림의 그들을 보고 늘 하듯이 정답게 말을 걸어왔다. 정일도 윤자도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서서 노파에게 각각 웃음을 보내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와 열렸다. 항상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그 안을 먼저 살피는 것이 윤자의 버릇이다, 다른 빌딩의 얘기지만 남자라고 하기보다 차라리 아직 소년이라고 할 만한 청년이 그 안에 숨어 있다가 다른 여자도 아니고 한국 여자를 지하실로 끌고 가 강간하고 죽였다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였다. 어둠에 누워 잠들려 할 때면 윤자는 강간범이 욕정에 번들거리는 얼굴로 한국여자 가슴께를 누르듯 타고 앉아 깨어진 술병으로 뇌수를 치려는 순간을 그려보곤 하였다. 그 순간 그 여자가 느꼈을 공포를 눈을 감고 생각해보려 했다. 동양 여자는 몸이 작다고 해서 더들 당한다고, 사실인지 모르나 그런 말도 퍼져 있었다. 윤자는 옷을 벗긴 흥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자기를 떠올리기도 하였다. 경관이 말하리라.
<누가 이 여자를 아시오?>
사지를 뒤틀고 벌거벗은 자기의 몸을 내려다보고 둘러섰던 사람들은 모두 냉정하게 고개를 가로 저으리라. 냉정하게, 냉정하게. 강간은 두렵지 않으나 죽는 것이 두려웁다. 무엇이든 한번 쓰면 버리게끔 그렇게 길이 들어 있는 이곳 사람들은 동양 여자 하나쯤은 일회의 배설을 하고 더 간단히 죽여버릴 것이다. 노란 얼굴로 저희 종자처럼 부모 자식이 있고 생각도 하고 사는 인간이란 의식조차 없이. 죽이지 말라는 말은 어떻게 하는가. 강간은 두렵지 않으나 죽는 것이 두려웁다. 이곳에 온지 팔 년이나 되어도 윤자는 영어를 잘 못한다. 돈 킬 미(Don'tkill me)하면 되는가. 그러나 그 말에는 애원의 맛이 없다.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 제팔 죽이지만은 말아달라는 애원의 맛이 없다. 프리즈 프리즈 프리즈 돈 킬미. 하면 되는가. -굿나잇- 삼층에서 노파는 내렸다.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그 안에 정일과 윤자 두 사람이 남게 되자 저녁 무렵 낯선 동네 안에 썩 들어섰을 때 느껴지던 것 같은, 허전한 정 같은 것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이별 죽음으로 이 세상과 완전한 이별을 하기까지 아, 얼마나 많은 이별의 연습을 거쳐야 하는가. 윤자는 엘리베이터 벽에 몸을 기대고 그 승강하는 속도에 온몸을 기대고 생각했다. 어렸을 땐 모든 것이 자기 것 같았는데 점점 갈수록 없어지더니 이즈음엔 하나도 자기 것이 없는 것 같다. 누구를 만나든 헤어질 땐 마치 실연을 당한 듯 가슴이 쓰려왔다. 하다못해 기영 엄마와 헤어질 때도 그렇다. 남편이 집을 나가고 싶어 하도록 자기는 누구에게 너무 기대는 성미인가, 모두 내 무게를 견디기 싫어서 내 곁을 떠나가는가. 아이조차도. 윤자는 문득 빨리빨리 늙어 백발을 이고 햇볕 쬐는 곳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때쯤이면 모든 욕망은 다 빠져 달아나 자기 마음은 마치 매미 날개같이 그렇게 투명해져 있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을까? 그때에는 또 어떤 고통이 있을까. 아직도 욕망은 그 연약한 몸 안에 그대로 남아 있을까. 늙은 내 몸을 앉힐 그 조그만 의자는 어디에 놓여 있을까. 미국일까. 한국일까, 또 다시 놀이터에서 만난 한국 노파가 떠오른다. 그 할머니는 도로 한국에 갔을까, 아니면 아직도 양담배를 피워 물며 아무 한국 사람에게나 넋두리를 퍼부어댈까. 나는 어쩌면 늙어서 그 할머니 비슷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생긴 신경통으로 고통스런 몸을 이끌고 아무나 붙잡고 넋두리를 늘어놓을지 모르겠다.
윤자가 아파트의 열쇠를 돌리고 불을 켜자 작으나 네모 반듯한 방이 오늘따라 아주 아늑하고 정다웁게 그들 눈에 비쳐왔다. 낯익은 방의 따뜻한 냄새. 소파 위에 놓인 트렁크는 윤자가 싸놓은 정일이 자신의 소지품이리라. 거기에 눈길이 가자 어쩐지 겸연쩍어 정일은 그것들을 풀어 모조리 다 있던 자리에 도로 갖다놓고 싶었다. 구두는 문간에, 잠옷을 포함한 옷가지들은 옷장에. 그리고 칫솔은 세면대에.
「샤워하고 와요. 끈끈하지?」
윤자가 시키는 대로 정일이 샤워장에서 소금기 배인 몸을 씻고 돌아왔을 때 윤자는 정일이 늘 보아 알고 있는 낡은 노란 원피스로 갈아입고 구부리고 앉아 문간에 흘린 모래를 쓸어 담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갔던 아이스박스는 깨끗이 비워지고 타올들도 어느새 다 치워져 있었다. 윤자는 그 동안 머리를 감았는지 젖은 머리에 빗자국이 깨끗하였다, 뭐라 말해보려 하다 정일은 갑자기 거북스러워져서 발끝걸음으로 소파에 가 앉았다. 자기가 샤워를 하는 그 짧은 동안 어느새 머리를 감고 옷을 갈아입고 모래를 쓸어 담고,,,,,, 부단히 움직이는 윤자가 정일의 눈에 대단히 신선하게 - 마치 샘가의 처녀처럼 그렇게 청신하게 비쳤다.
모래를 쓸며 윤자는 생각한다. 정일에게 저녁을 먹으라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닌가. 오늘 하루 차까지 빌어와서 자기 대접을 잘했으니 따뜻이 저녁이라도 지어 먹이는 것이 오히려 예의일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뭣보다도 정일이 여기서 굶고 나가면 어디 가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빵조각이나 먹고 말겠지. 정일은 토속적인 한국 음식을 먹어야 먹은 것 같다고 그런다, 그런데 밥을 하는 것은 너무 치근대는 것 같지 않을까. 사례 받은 의사나 학교 선생님이 무슨 보답을 하지 않듯 피날레는 정일이 편에서 장식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노래나 들읍시다.」
우물우물 말하며 정일은 허리를 반쯤 구부리고 전축 있는 데까지 가서 무엇인지도 모르고 얹혀 있는 판에 바늘을 놓았다. 스페인 계통의 미타 선율이 경쾌하게 방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 음악이 그 음악 같기만 한 정일의 귀에도 이 판은 새로 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자기는 어째서 이제까지 이 여자를 두려워하였는가, 마치 마녀를 겁내는 뱃사공같이. 정일의 친구는 누구이든, 심지어는 기영 아빠까지 - 그 여자에게 붙들리면 네 일생은 그만 - 이라는 식으로 충고하였을까.
그의 기묘한 결혼 얘기는 낯도 모르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까지 소문으로 퍼질 대로 퍼져 있었다.
「오늘도 무사했냐?」
친구 집에 자러 내려가면 피카소처럼 팬티만 입고 지내는 친구는 놀려대었다.
「중년 부인은 그런 면으로 지금 한창인데 너 잘먹고 서비스 부디 잘 해줘라.」
하기도 하였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비행기 소리, 지나다니는 차들의 소리. 그것들을 누르고 방안에 퍼지는 기타소리. 무엇인가 더위에 썩어가기도 하는 달콤한 여름밤이었다.
오늘로 이 방에 오는 것은 그만,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이 여자의 간이며 심장이며 실컷 이용해먹고, 그리고 한 가닥 생명의 줄마저 거머쥐고(자기가 떠나면 웬지 이 여자는 갑자기 폭삭 늙을 것같이 그에겐 생각되었다) 도망치려는 비루한 인간으로 자신이 그렇게만 보여져 정일은 안절부절못하는 심정이 되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근 두 달 동안 이 방에서 지내던 나날이 아까와 진다, 자기는 어째서 그 시간을 도무지 즐기지 못하였는가. 윤자가 틀어대는 레코드 소리도 제대로 귀담아들은 일없고 변호사 말을 따라 같이 들락거리기 위하여 저녁 먹고 근처 공원으로 산보 나갈 때도 항상 마음은 조마조마하고 공연히 윤자에게 죄송스럽기만 하였었다.
모래를 다 쓸어 담은 윤자가 동그란 식탁 의자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나는 생각 없지만 만일 배고프면 어제 먹던 상추도 있고 된장도 있고 또 밥도 좀 있으니 갖다가 먹어요.」
젖었던 앞 머리가 말라 두어 가닥 앞으로 늘어진 윤자는 정일의 눈에 더없이 예쁘게 보였다.
「고추장아지도 있어요.」
정일은 몸을 굳혔다, 혼자 우적우적 밥을 먹을 용기는 없었다. 이젠 가보라고 하는 말이다. 드디어 온 순간. 일어나야겠지, 정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고 말해야 할 것이었다. 그 동안을 결산하는 인사, 갑자기 그의 모든 피가 뇌 속으로 몰리는 듯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는 자기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며 우물우물 말하였다.
「제가 결혼을 하자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을 마친 정일은 쫓기듯 문을 열고 나가느라고 문간에 있는 윤자의 샌들 한 짝을 저편 가스 렌지 쪽으로 차버렸다. 문이 탕 닫혔다. 의자 위에 앉았던 윤자는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정일이 방금 뭐라고 하였던가. 윤자는 자기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온몸의 피가 아우성치고 오줌이 마려운 듯했다.
나는 결혼을 믿는 여자가 아니오. 남자에게 되게 혼이 난 여자요.
윤자는 문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문을 열고 정일을 쫓아나가는 대신 그녀는 방문객을 확인하기 위한 조그만 유리 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을 뿐이었다. 눈 하나 크기의 그 동그란 유리는 키가 큰 정일이 엘리베이터 단추를 성급히 두어 번 눌러보다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쫓기듯 층계 쪽으로 겅충겅충 뛰어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 어찌되었건 자기는 젊은 그의 구원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리라. 고목에 물이 돌 듯 윤자의 말라붙었던 혈관 속을 더운 퍼가 윙윙거리며 달려 돌아갔다. 오랫동안 잊었던 이 뜨거운 피의 감각, 이제 와 생각하니 처음부터 이렇게 마련이게 된 일이 아니었는가. 순전히 비지네스로 정일을 만나러 간다고 하던 날, 자기는 얼마나 화장을 하며 즐거웠던가. 보지 않았을 때부터 반드시 결혼은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는 벌써 어떤 즐거운 기대를 그에게 걸었던 게 아닐까. 이제 만사 제자리에 들어선 기분이다.
그녀는 몸을 돌려 새삼 방안을 둘러보았다. 소파 위에는 정일의 소지품이 든 트렁크가 아직도 그냥 놓여 있었다. 정일도 자기 곁을 지나가리라, 종내에는. 갑자기 윤자 자신이 느끼고 있는 그녀의 모든 약점이 윤자를 엄습하였다. 나이 많은 이혼한 여자라는 경력으로부터 눈가에 지는 주름살 하나하나, 자신이 잘 때 가끔씩 침을 흘리는 그런 작은 버릇까지 전부 그녀에게 무섭게 달려들었다. 나는, 하고 윤자는 중얼거렸다. 모든 네 결점들과 최선을 다해 싸워나가리라. 혼자 사는 여자는 중얼거림이 버릇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김지원(金知原: 1943- )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1975년 <현대문학>에 <사랑의 기쁨>, <어떤 시작>을 발표하여 등단. 그는 내부의 의식과 분위기 묘사에 뛰어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잠과 꿈>, <먼 집 먼 바다>, <모래 시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