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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 소설

대역인간

by 자한형 202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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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신

간음한 자 일어나라.

예배당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였다.

간음한 자 일어나라.

그의 목소리는 공포로 변질되어 교인들의 고막을 건드렸다. 창 쪽에 앓아 있던 그녀는 두려움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살갗이 일시에 경련하며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다. 얼굴의 미세한 혈관과 땀구멍에 돌기가 솟아나는 것 같기도 했다.

간음한 자 일어나라.

그녀는 아랫도리가 축축히 젖어오는 것 같아 무릎에 힘을 주었다. 스커트 사이로 찬바람이, 알 수 없는 손가락이. 무엇인지 경직된 것들이 밀고 들어올 것 같았다.

그가 강단을 내려섰다. 그리고 단거리 선수마냥 발끝을 세웠다. 그 주위로 폭력이 몰려들어 순식간에 그를 험상궂게 만들었다. 그는 뛰었다. 교회당이 쾅쾅 울렸다. 뛰면서 그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가 찾아낸 것은 간음한 여자였고 간음한 여자는 제대로 여자 행세도 못한, 그러니까 사내들에게 여자를 뜯어 먹힌 설익은 여자였다.

그는 여자를 찾아내자 힘껏 따귀를 올려붙였다. 그리고 우악스럽게 마룻바닥에 팽개쳤다. 아침에 꿰맨 블라우스와 속치마 어깨 끈이 타지는 소리가 탔다. 수당을 받으면 튼튼한 옷을 사야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그의 발아래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용서해주세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꼭 한번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하두 --- 간음을 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그는 험상궂은 얼굴을 미소로 바꾸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님은 당신을 용서해주실 뿐만 아니 라 구원하시고 사랑하실 겁니다. 기도하고 찬송하세요.

그녀는 그의 용서를 받은 데 감동이 되어 흐느껴 울었다. 아무도 흐느끼는 그녀를 달래거나 위로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의 그 냉담함과 무관심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강도질한 자 일어나라. 강도질한 자 일어나라.

그는 강단에 올라가 다시 이렇게 소리질렀다,

예배당 안은 마치 인질극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공포로 뒤덮여 있었다. 총을 들고 인질들을 구석에 몰아넣는 것처럼 그 우렁차고 잔잔한, 쉰 목소리로 위협하고 있었다.

강도질한 자 일어나라.

아무도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강단을 내려서자 재빨리 교인들을 휘둘러보고 성큼성큼 교인들 속을 비집고 들어갔다. 교인들은 할 수만 있으면 자기 몸을 축소라도 시키려는 듯 움츠렸다. 그는 여전히 -강도질한 자 일어나라-고 외쳐대며 교인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아무라도 그가 지적하기만 하면 강도가 되어 쇠고랑을 찰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가 교회 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깨끗하게 차려입은 청년 앞에 우뚝 섰다. 그리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그를. 정확히 그의 눈동자를 노려보았다. 청년은 숨을 죽인 채. 아니 숨쉬기를 포기한 것처럼 그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그는 청년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청년은 일어섰다가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붙잡았다.

용서하십시오. 용서하세요. 강도질했습니다. 사실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소리를 지르기에 엉겁결에 그만.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그 물건을 되돌려주겠습니다. 지금 당장 되돌려주고 오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용서하세요. 다시는,,,,,,

그는 쥐었던 멱살을 놓았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찬송가를 불렀다. 그 동안 청년은 고개를 푹 숙인 괘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찬송가틀 부르고 난 그는 청년의 뺨을 어루만지며,

회개하라. 즉시 강도질한 물건을 돌려주고 용서를 빌어라.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다, 진정으로 뉘우치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너는 주님의 종이요 길 잃은 가엾은 한 마리의 양이다. 회개하는 이 순간 주님은 용서하셨고 또 사랑하신다.

그는 예배당이 운동장이나 된 것처럼 쾅쾅거리며 다니 강단으로 올라갔다.

내 형제들이여, 우리 모두 주님 앞에 고개 숙여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 죄인이며 우리 모두 가엾은 한 마리의 어린양입니다. 주님의 은총 없이 어찌 단 하루를 아니 단 일초라도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이 순간에도 우리는 주님을 잊고 있으며 간음과 도둑질과 강도질과 파기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그의 선창에 따라 교인들은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그는 땀을 닦기도 했고 담임목사와 귓속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는 눈을 감고 입만 달싹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기도를 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고는 조용한 목소리, 쉬어서 들릴까말까 한 침전된 옥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도둑질한 자 일어나라. 도둑질한 자 일어나라.

예배당 분위기로 보아 금방 누군가 일어날 것 같았지만 누구 한 사람 정말로 일어서는 사람은 없었다. 부흥회의 양념처럼 흔하기 마련인 떠들고 칭얼대는 꼬마들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녹슨 수도꼭지처럼 잠긴 목소리는 사람들 가슴을 갈퀴로 끌어당기는 것 같은, 마치 교인들 자신이 밭은기침이라도 해보고 싶은 답답함이 꾹꾹 눌려 있었다.

도둑질한 자 일어나!

귀찮은 듯, 마치 도둑놈들만 모아놓고 일어나라고 호통치듯 했다. 목소리라기보다는 쇳소리였다. 금방 핏덩이가 콸콸 쏟아질 것 같은 잠긴 목소리였다. 그는 지금 모든 교인들이 일어서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강단을 내려서서 교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 눈빛은 광기에 서려 있는 것 같았고 그의 주먹은 닥치는 대로 휘둘려질 것 같았다. 겁먹은 꼬마들이 어른들 가슴에 안겨졌다. 무겁게 무엇인가 짓누르는 위압감이 차츰 교인들 어깨 위로 다가오고 있었다,

허리를 펼 수 없을 만큼 늙은 할머니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왔고 머리가 벗겨진 사내는 눈을 내리깔고 성경책을 만지작거렸다. 애기 안은 여자는 애기를 끌어안고 몸을 잔뜩 숙여 앞 사람 등뒤에 숨듯 사렸고 하얀 교복을 빳빳하게 다려 입은 여학생은 눈을 질끈 감은 채 가슴을 떨고 있었다.

예배당 안은 온통 숨쉬기를 중단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꽤 예쁘장하게 생긴 처녀가 그에게 머리채를 잡혀 일어났다. 그리고 바람난 딸을 휘어잡듯 다진다. 속옷 타지는 소리가 예배당을 짓누르고 있던 공포를 걸어가는 것 같았다, 처녀는 나뒹굴었다 일어서며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처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머리채를 잡힌 채 제풀에 쓰러졌다. 허벅지가 잔뜩 올려다 보여도 창피함을 모르는 것 같았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정말 다시는 --- 용서해주세요.

그는 처녀를 살며시 잡아 일으켰다.

주님을 속이려고 하지 맙시다. 이 우주 어디에서나 주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한없이 영원히 용서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세요. 그러면 화평을 얻을 것입니다.

그가 다시 돌아서 강단으로 올라가면서 등뒤의 교인들에게 찬송가를 선창해주었다. 마치 기름에 불붙듯 한꺼번에 예배당이 찬송가로 메워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확성기가 한꺼번에 울리듯 예배당은 온통 찬송가로 흔들거릴 것 같았다. 그동안의 공포와 그 동안의 어떤 알 수 없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듯, 마치 해방이라도 된 것처럼, 환성처럼 힘차게 불렀다.

 

부흥사 한 목사는 교회 입구에 서서 그 교회 담임 목사와 교직자들과 함께 부흥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악수를 나누었다. 교인들이 의무적으로 데리고 나온 예비 교인들은 한 목사와 악수를 하며 두려움 같은 비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처럼 포악스럽고 매몰찼던 한 목사 얼굴은 성자(聖者)가 되려다 만 것처럼 인자하고 온화한 얼굴이 되어 있다.

연 삼일 동안의 부흥회는 이렇게 해서 끝났다. 한 목사가 지나간 교회는 교인의 숫자가 격증한다는 소문이 언제부터인가 교회마다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특히 개척교회나 벽지교회에서의 한 목사의 인기는 교인들에게보다 교직자들 사이에 대단했다. 고의 독특한 부흥회 솜씨는 한 목사를 모시려는 교회들의 치열한 유치작전만 보아도 쉽게 그 인기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한 목사의 부흥회 초청은 3개월이나 반년. 심하면 1년 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한 목사는 부흥회뿐 아니라 안수기도로 불구자나 병자를 깨끗이 고친다고 해서 항상 그 주변에 사람들이 들끓기도 했지만 일부에서는 사이비 목사라고 지탄하기도 했다.

 

그날 밤 한 목사는 담임목사로부터 잘 차린 저녁식사를 대접받았고 액수를 알 수 없는 봉투를 받았다.

한 목사님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교회 형편이 여의치 못해서 대접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원 별 말씀 다하십니다. 이게 모두 박 목사님의 선교사업 덕이지요. 나야 그저 주님이 하라시는 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것뿐이지요. 이렇게나마 일할 수 있게 된 게 다 주님의 은총이 아니겠습니까.

다음엔 언제쯤 오실 수 있겠습니까? 한 목사님이 오셔야 저희 교회가 제자리를 잡고 발전할 수 있을 텐데요.

아직 뭐라고 기약할 수는 없지만 꼭 오도록 하겠습니다. 미천한 저를 찾는 곳이 많아 주님의 뜻으로 알고 돌아다니니 정직한 답변을 못 드리겠습니다.

목사관을 나선 한 목사는 바로 여관으로 갔다. 여관에는 한 목사를 반갑게 맞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목사는 피곤한 듯 가방을 던져놓고,

식사들은 했나? 내일은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일찍들 자. 차표하고 교재들은 준비됐나?

.. 준비됐습니다. 이번에는 씨(C)형입니다.

한 목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봉투를 꺼내 얼마의 돈을 꺼내서 젊은이에게 줬다. 젊은이는 공손하게 두 손으로 돈을 받았다.

거기 모여 있는 젊은이들은 불과 두어 시간 전에 한 목사로부터 간음한 자. 강도질한 자, 도둑질한 자 등으로 멱살을 잡혔거나 머리채를 쥐어뜯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 목사가 준 돈을 분배하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C형이래며. 니미랄 나만 깨지게 생겼네. 징글징글해. 다음달까지만 채우고 겉보리 두 되짜리 처가살이라도 해야지 원.

이런 맹추 같으니. 그건 니가 강간범이니까 그렇지. 나처럼 도둑놈 정도만 되면 멱살이나 잡히잖아. 나이롱 뽕으로 도둑놈 된 줄 알아. 강도, 강간. 사기 해먹고 남은 찌끄러기야.

나 참, 이거 쌩으로 강도 돼 가지구 풀칠이나 겨우 하구 카니......씨팔 아예 툭툭 털고 한탕 할까부다.

시끄러워 자식들아, 자빠져 자든가 기집 찾아 가든가 아가리들이나 닥쳐. 어차피 배고프면 강도 살인 해댈 놈들 주제에 이만한 일거리라도 가진 걸 주님께 고맙다고 기도나 해라.

그 중에 제일 나이가 들어 보이는 젊은이가 이렇게 쐐기를 박고 나섰다.

형이야 배당도 많고 일거리가 수월하니까 그렇지만 우리야 이거 어디 사람 꼴입니까?

한 녀석이 눈치 보는 목소리로 대꾸인지 투정인지 모를 소리를 했다.

그 바로 옆방에는 낮에 간음한 여자로 머리채를 쥐어뜯긴 처녀와 도둑질로 속옷이 타지도록 나 뒹굴은 처녀가 속옷바람으로 발을 벽에 높인 채 조잘거리고 있었다.

얘 이러다가 진짜 쌩으로 갈보 되겠다. 멀쩡한 년 되려다 몸 망치고 사내나 후려내는 년 만들어대니.

그치 얼마나 받을까? 우리 다섯 식구 먹여 살리는 것 보니 은혜()께나 받는 모양인데.

주님(목사)들이 진짜 모를까?

알아봤자지 뭐. 어린양(교인)들이나 늘리구 은혜나 쏟아지면 됐지. 요새 직업 치고 주님처럼 좋은 직업이 어디 있니?

그나저나 그 도둑놈이 추근거리는데 징그러워 죽겠다.

그래도 강씨(강도)보다는 낫드라, 그건 영락없이 기생 오래비처럼 생겨 가지구 졸라대는데,,,,,,

조심해야겠드라. 우리 선지자(한 목사)도 보통 눈깔이 아니드라. A형 때마다 일부러 그러는지 가슴을 쥐어 비틀고 하는 게.

이들은 모두 한 목사가 부흥회마다 데리고 다니는 소위 부흥부대였다. 이들 부대에도 다른 조직들과 마찬가지요 엄격한 계급이 있어 소위 왕초라는 게 있었다. 왕초의 정확한 내력을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왕초 자신의 입을 빌리면 왕년에 창신동 마구리라면 그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감옥에 있을 때 설교하러 온 한 목사에게 설득되어 종교를 갖게 되었고 출감한 뒤 창신동 일대가 정리되어 행세하기가 어렵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한 목사를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었다고도 했다,

왕초가 주로 하는 일은 봄 가을에 시원찮은 부대원을 바꾸는 일과 한 목사의 각본대로 적당한 배역을 선정하여 실수 없도록 출연시키고 감독하는 일이었다. 물론 왕초 자신도 가끔 도둑놈이나 사기꾼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긴 있었다.

이 부흥사 대원들은 한 목사보다 왕초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곤 했다.

-. 그럴 것이 한번 눈밖에 나면 윤번제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배역을 못 찾아먹고 맨날 멱살잡이가 되든가 따귀까지 헌집 벽 털리듯 맞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야 어차피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참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단단히 각오하고 내디딘 것이니까 견딜 수 있지만 무시로 걸면 웬만한 월급장이보다 나은 직장을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는 건 이들에게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별하게 가진 기술도 없었고 그렇다고 밑천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특히 한번쯤 감옥에 들어갔었다는 딱지가 붙어 있어서 도로 감옥에 기어 들어갈 짓을 하기 전엔 먹고사는 일이 문제거리였다.

그저 윤번제로 돌아가며 한 목사에게 얻어터지거나 창피를 당하면 돈이 굴러 들어온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만한 직업을 갖기가 그리 쉬운 일도 아니라고들 생각하고 있었다.

미리 짜여진 것이니까 우악스럽게 메어꽂는다 해도 웬만큼 숙달이 되어 아프지도 않았다. 참아야지. 이만한 돈벌이가 요새 세상에 흔한 떤 아니니까 꾹 참아야지 .

이날 이때까지 남을 두둘겨 패면 팼지 얻어맞거나, 터지고 찍 소리 한마디 못 해본 과거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숫제 맞으면서도. 그것도 생으로 강도니 소매치기니 창녀가 되어 터지면서도 대꾸 한마디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신세였다. 이건 멱살이나 머리채나 따귀를 빌려주는 행위였고 자존심이나 양심 같은 걸 모독하는 행위라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 목사의 그 쩍쩍 달라붙는 입을 빌리면 과히 수치스럽거나 속상해할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죄짓고 사는 수많은 인간들을, 방법이 어떻든 간에 회개시키고 교회로 이끌어 내는 역할, 즉 지옥에나 갈 많은 죄인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천당 중매장이 같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천당 중매장이! 천국 중매장이!

그럴듯한 말이었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강도니 도둑놈이니 창녀보다 얼마나 듣기 좋은 단어며 얼마나 출중한 격려와 위안인가. 한 목사가 그 탁월한 두뇌를 회전시켜 만들어낸 이 낱말에 부흥사 부대원들은 잠간씩 황홀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목사의 말재주에 잠깐씩 속아주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았다. 그들은 아무리 천국 중매장이니 주님의 사업을 말없이 수행하는 사람이니 해대도 실감할 줄을 몰랐다. 천당 중매장이가 맨날 따귀나 맞고 머리채나 뜯기고 있으니 실감이 날 리도 만무했다.

 

창녀와 소매치기(처녀 두 명의 별명)에게도 꿈 많은 소녀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려고 밤새도록 야간열차에 시달리며 새벽녘에 서울에 도착한 뒤부터 엉망이 되고 말았다. 서울역에서 선도반이라는 중년 사내들에게 끌려가 헐값에 창녀촌에 팔렸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내들의 몸무게를 다는 저울처럼 몇 달을 시달리기도 했었다. 둘은 어찌 도망갈 기회를 얻어 달아났지만 허기진 창자를 위로하기 위해 또 한번 소매치기의 바람잡이 노릇을 해야 했고 백화점이나 시장바닥에서 물건을 훔치기도 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경찰서에 끌려갔었고 감옥이란 델 들어가 요사스럽고 해괴망측한 신입식을 치르기도 했다. 별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 차입이니 면회 같은 것이 끊겨 막막하던 판에 왕초와 손이 닿게 되어 벌써 6개월이 넘게 멀쩡한 창녀와 소매치기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악몽과도 같던 지난 일들을 잊기 위해 뇌를 꺼내 깨끗한 물이나 소독약으로 씻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받곤 했다. 색 많은 벌이는 아니었지만 아껴 쓰기만 하면 좋은 벌이가 되어 우선 돈 걱정은 없어서 좋았다. 처음 예배당 바닥에 나 뒹굴릴 때는 마치 여관방에서 중년 사내들에게 홀딱 벗기던 것처럼 견딜 수 없는 수치와 고통을 맛보았지만 돈이라는 것이 좋은 미끼였고 더 이상 아랫도리나 몸뚱아리를 놀리거나 감옥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 천직이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한 일행은 오후 늦게 K시에 도착했다. K시는 신흥도시로 상당히 많은 개척교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 목사를 마중 나온 사람들을 퍼해 천당 중매장이들은 한적한 여관을 잡았다. 이튿날부터 시작되는 부흥회에 대비하기 위해 간단한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숙달된 배우들이지만 혹시나 실수를 할까봐 왕초의 연출로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예행연습은 거의 왕초가 한 목사의 대역을 맡게 되었다. 물론 오늘 연습은 내일에 있을 C형이었다.

왕초가 네 명의 천당 중매장이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한 목사 특유의 컬컬한 목소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매우 작았다.

도둑질한 자 일어나라! 우리 주님은 자기 죄를 뉘우치는 자에게, 회개하는 자에게 사랑으로 용서를 하십니다. 우리 모두 회개합시다. 우리 모두 주님께 참회합시다. 다같이 찬송합니다.

우리 선지자가 사고 나면 형이 대신 나서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오빤 목사가 제격예요. 돈 써서 신학교 4학년쯤 들어가면 영락없이 훌륭한 부흥사가 될 텐데,,,,,,

대원들이 한마디씩 거들자 왕초는 빙그레 웃었다.

이 자식들아 하라면 못할 줄 알아. 그치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거야 없어. 한때는 나도 입으로 벌어먹고 살았으니까.

그 뒷말은 듣지 않아도 번했다. 창신동 마구리 시절을 들먹여대며 그럴듯한 사건을, 열 번도 더 들은 그럴듯한 얘기를 거품을 쏟아가며 지껄이기 마련이었다. 왕초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눈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자 시작한다. 오늘은 기분도 그렇지 않고 하니까 진짜처럼 한번 해보자.

왕초의 눈은 이상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금세 그의 동작이 한 목사처럼 변해 갔다.

도둑질한 자 일어나라. 도둑질한 자 일어나!

도둑놈이 한번 고개를 쳐들었다가 이내 깊숙이 숙였다, 왕초는 천천히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도둑놈 앞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냅다 도둑놈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도둑놈은 왕초의 우악스런 손아귀에 걸려 잘 개어놓은 것처럼 꼼짝 못했다. 왕오는 도둑놈을 일으켜 세게 따귀를 갈겼다. 그리고 엎어치기로 메어꽂고는 주먹으로 사정없이 면상을 후려갈겼다. 도둑놈은 대번에 코피를 홀리며 나뒹굴었다. 둘러섰던 대원들은 그제서야 왕초의 심기가 수상쩍다는 것을 알고 말렸다. 이건 연습도 아니고 각본에도 없는 일이었다.

이 새끼 도둑질이나 해 처먹고. 젊은 놈이 뭐 쌀 짓이 없어 도둑질을 해. 아주 틀려먹은 새끼 같으니. 옳게 살 생각은 않고 남의 물건이나 훔쳐! 저런 새끼는 칵 밟아 죽여야 돼.

왕초는 뜯어말리는 대원들에 의해 겨우 진정했다. 아직도 뭔가 분이 안 풀렸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저녁밥 잘 먹고 예행 연습한다고 모아놓더니 주먹이 근질거렸는지 한바탕 몸을 풀고 말았다.

간음한 자 일어나라. 간음한 자 일어나! 일어나란 말야 이 쌍년아.

왕초는 정말 이상해졌다. 각본에도 없는 즉흥 연습이었다. 창녀를 일으켜 세워 머리채를 휘감더니 주먹질을 했다. 그리고 창녀의 옷을 찢어 발겼다. 소리 지르는 창녀의 얼굴 역시 코피로 범벅이 되었다.

여관 주인이 쫓아오는 난리를 치르고서야 겨우 왕초의 행패는 멎었다. 얼굴이 심하게 부어오른 도둑놈과 창녀는 동료들이 맛사지를 해주고 있었다. 도둑놈은 멍하게 천정을 바라본 채 침통한 표정이었고, 창녀는 계속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제 정신을 차린 것 같은 왕초는 혼자소리처럼 지껄였다.

나도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그저 내가 도둑놈-강도-사기꾼-창녀, 그런 니들 때문에 살 수 있다는 게 견딜 수 없이 미웠단 말이다, 진짜 잡놈이 되는 게 낫지. 이거 생으로 잡놈 노릇을 하고 있으니------나도 잘 모르겠다. 니들이 왜 그렇게 미웠는지. 차라리 진짜 강도나 살인을 하는 게 낫지 불쌍한 니들을 패다니 ,,,,,,

왕초는 담배를 빼어 물고 맞는 녀석보다 더 침통한 표정으로.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가만두면 또 소란을 필 것처럼 그답지 않게 심각해졌다. 한참을 그렇게 버티고 섰던 왕초는 훌쩍 나가버렸다.

왕초가 나가고 없는 방이었지만 아무도 그 비겁한 폭력을 탓하거나 왕초의 못 된 소행을 성토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침통해했고 그저 우울한 척을 했다.

사기꾼만은 창녀를 위로하느라고 중간 중간 왕초를 헐뜯긴 했지만 그녀도 무슨 악의나 정말 욕하고 있는 만큼의 미움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왕초는 상당히 취해서 들어왔다. 그는 과일과 음료수 술 등을 잔뜩 사들고 들어왔다. 자기 방으로 창녀와 도둑놈을 불러온 왕초는.

정말 미안하다. 차라리 니들한테 실컷 맞았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도둑놈과 창녀 역시 아무 말도 못했다. 한참동안 침묵이라는 어색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도둑놈이 입을 열었다.

, 어쩌면 나도 누구한텐가 실컷 맞아보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아프고 쓰리지만 웬지 후련한 기분이 들어요.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저 시원한 기분이니 웬일인지 모르겠어요.

도둑놈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왕초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바로 그거다. 내가 주욱 그래 왔었던 것 같다. 누구한테든 실컷 얻어터지고 싶었어.

그러면서 뭔가 숙제가 풀려질 것 같은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창녀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전 지금도 계속 밤마다 돈을 버는 착각을 하곤 해요. 이렇게 매일 죄를 짓고도 너무 쉽게 용서를 받곤 하니까 실감이 나지 않아요. 죄만 자꾸 차곡차곡 쌓이는 기분예요. 차라리 죄 값을 받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아 혼자 놀라곤 해요. 이렇게 매일 죄를 지으면서 돈을 번다는 생각을 하면 살아 있는 게 미안해요. 오빨 미워하진 않아요. 다 제 팔자려니 하니까요.

그들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밤늦도록 술잔을 비웠다. 오히려 더 친해진 것 같았다. 왕초는 취하면 취할수록 돈을 왕창 벌어서 신학 대학 졸업장을 사든가 얼렁뚱땅 목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튿날 부흥회에는 도둑놈과 창녀가 바지고 대신 강도와 사기꾼이 대역으로 출동을 했다. 아침에 급히 간단한 연습만 한 채 왕초가 데리고 나갔다. 그들은 한번 나가면 거의 밤늦게 들어오게 되었다. 한 목사의 연극은 꼭 부흥회 마지막 단계에 실시되기 때문이었다. 밝은 대낮에 그 짓을 하다가 혹시 눈치라도 채는 교인이 있거나 다른 지역의 부흥회 때 얼굴을 익히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둘만 남게 된 여관은 대낮이라 조용했다. 도둑놈은 퉁퉁 부은 얼굴로 옆방의 창녀를 찾아갔다. 그리고 서로 멍든 자국을 달걀로 문질러주기를 반복했다. 제 얼굴들이 아니고 마치 잘못 만든 가면을 쓴 것 같은 서로의 얼굴을 동정하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매일매일 너무나 똑같은 죄를 많이 짓고 있다는 불안 때문에 소화가 안될 지경야.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비겁하게 사는 것인지도 모르지. 난 길에서 순경만 만나도 괜히 겁이 나. 그리고 쓸 만한 물건이나 괜찮은 집을 보면 훔치고 싶은 충동이 생겨. 이왕 매일 도둑놈일 바에야 진짜 한탕 해치우고 싶어. 그래서 이놈의 도둑놈 신세나 면했으면.

그래도 나보다는 나은 거야, 난 밤에 남자를 보면 붙잡고 싶은 충동이 불쑥 불쑥 치밀곤 해서 깜짝 놀라곤 한다니까.

날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둘은 서로 먼저 불을 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 맛사지를 해주거나 신세타령을 하거나 한 목사를 헐뜯어대고 있었다. 불을 켜지 않으면 서로를 분간 못할 정도가 되었을 때 둘은 힘껏 껴안았다.

창녀는 남자를 붙잡았고 도둑놈은 여자를 훔치기 시작했다. 마치 여러 해를 함께 살아온 부부처럼 부끄러움 없이 굴었다. 여자는 남자를 아주 정밀하게 계체량을 하는 것 같았고 남자는 여자를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아주 완벽하게 훔치고 있는 것 같았다. 방 안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이 이불자락 사이에서 일기 시작했고 그들의 숨소리에 끈적끈적한 사람의 냄새가 짙게 꾸물거렸다. 그들의 경험에 더하기를 하나 더 보태는 밤은 지치고 느슨하고 가쁘게, 그리고 팽창과 수축과 분비와 질긴 연대감으로 이어져갔다. 그들은 어느 지점인가에 열심히 뛰어갔다 온 것처럼 만족감과 지침과 감을 쏟아놓았다.

그날 밤 늦게 대역으로 출연했던 강도와 사기꾼이 왕초와 함께 돌아왔다. 몹시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피곤하다기보다는 무엇엔가 맹렬한 분노를 느끼고 있는 표정들이었다. 강도의 왼쪽 팔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왕초는 강도의 팔을 가리키며,

그치가 엎어치기를 잘못 했어. 의자에다 메어꽂으니 성한 놈이 이상하지.

강도는 조심스럽게 이불 위에 누우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개새끼. 하나님 다돼 가더구만. 잘 처먹어서 기운이 남으니까 마구잽이로 던지잖아. 벌떡 일어나 한번 받았으면 속이 풀리겠드만,...., 차마.....,

돌아눕지도 못하면서 천정에다 대고 뭐라고 욕지거리를 내 뱉았다. 도둑놈보다는 아무래도 덩치가 있는 강도 쪽이 업어치기 하기엔 힘에 겨웠던 모양이었다. 바닥에다 내던져져야 낙법으로 버텨나 볼 일이지 의자에다 박아버렸으니 꼼짝없이 당한 것 같았다.

도둑놈은 자기 대신 나갔다가 다치고 온 강도에게 미안한 표정이었지만 강도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그냥 투덜거리고 있었다.

씨팔 어짜퍼 조진 인생인데,,,,,, 우리같이 남 돈이나 벌어주는 대역 인간처럼 불쌍한 게 어디 있어,,,,,,

K시를 떠날 때까지 연 삼일간을 창녀와 도둑놈은 과도한 사랑으로 일관했다. 그들은 격렬한, 마치 몹시 굶었던 사람들처럼 사랑을 했다. 그리고 열심히 서로의 상처를 매만져 부기와 멍 자국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찾아낸 것은 하루빨리 이 파렴치한 대역(代役) 인간을 걷어차고 힘겹겠지만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길을 택하자는 것이었다. 그냥 무작정 탈출하기에는 둘 다 너무 가진 게 없었다. 배당금으로 받은 돈을 헤아려보아도 둘이 한달 정도나 버틸 정도밖에 안 되었다.

둘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 때문에 갑자기 그 동안의 파렴치한 짓을 맹렬하게 미워하기 시작했다. 잘도 해내었던 그 도둑놈과 창녀 역할에 대해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손쉽게 돈이 되는 일이면 무슨 짓이고 할 것 같던 이들에게 사람답게, 아니 최소한 비굴하지 않게 살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내밀었던 것이다. 그들의 양심은 사랑이라는 뜨거운 형체 앞에서 갑자기 꿈틀거린 것이다.

이들에게는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선()에 대한 욕정 같은 갈구가 일어났다. 더럽게는 살아왔지만 늘 가슴 한 귀퉁이에 도사리고 있던 착하게 살고 싶다는 잠재의식에 이들의 사랑은 성냥을 그어버린 것이었다. 단순하게 사랑하기 때문이란 불붙기 쉬운 여린 감정으로 시작된 이들의 동요는 용감할 수 있는 힘마저 생겨났다.

 

K시를 떠나 다음 부흥회 예정지인 Y읍에 도착한 날 밤, 도둑놈과 창녀는 왕초에게 사랑 때문에 생긴 용기로 입을 열었다. 왕초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을 정도의 단어와 왕초의 인간적인 이해를 충동질할 말과 그의 양심에 성선(聖善)적인 어떤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할 얘기를 꾸며대느라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형이 한번 봐주셔야만 하겠습니다. 갚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오빠. 지금부터라도 한번 착하게 살고 싶어요. 정말예요. 이 생활이 아주 지긋지긋 해요.죄를 짓고 뻗대는 게 낫지 멀쩡해 가지고 죄지은 척을 해야 하니 ...... 아무리 돈이 좋아 이 짓을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왕초는 어금니를 씹는지 볼을 씰룩거리며 이들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었다.

니들 나한테 맞았다고 이러는 건 아니지?

그럼요 ! 사실 형한테 정이 없으면 몰래 도망이라도 갔을 겁니다. 그래도 형이 우리들한테 있는 정 없는 정 다 쏟아줬는데,,,,,, 형한테만은 속이고 싶지 않았어요.

왕초는 또 한참을 생각하는 눈치였다. 왕초 자신도 이들이 불과 며칠 전부터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과 그놈의 사랑에 눈을 뜨고 부터 뭔가 사람다와 지려는 욕심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작지만 매운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잔소리들 말고 조금 더 참자. 지금 당장 여기를 빠져나간다 해도 한 달이 못 가서 그놈의 돈과 목구멍 때문에 별 수없이 또 니들이 얘기하는 사람답게를 사창가나 뒷골목에 팔아먹게 돼. 이달까지만이라도 눌러 있어.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까. 구멍가게 밑천이라도 장만해야 살 수 있잖아. 잔소리들 말고 참아. 알았지. 허튼 수작하다가 서툰만큼 또 신세를 조지기 전에. 세상이 어떻다는 걸 알만큼 경험했잖아. 무작정 어떻게 되겠지 했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아냐. 참아. 내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알았지?

둘은 왕초 말대로 세상이 어떻다는 걸 대충은 알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놈의 돈이 얼마나 사람의 간까지 홀랑 뒤집어 놓는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었지 때문에 순순히 왕초의 말대로 참기로 했다.

봄 한철만 해도 여기저기 성황이기 마련인 부흥회는 천지 사방에서 열렸고 한 목사는 연속 강행군을 계속했다. 천당 중매장이들 역시 한 목사를 따라 강행군을 했다. 강행군을 한 만큼 배당도 짭짤하게 많아졌다.

그들은 여전히 강도와 도둑놈, 간음한 계집과 소매치기한 계집, 혹은 사기꾼이며 살인미수범 등으로 한 목사에게 따귀를 빌려주거나 멱살을 꾸어주거나 엎어치기나 주먹질을 당하며 살고 있었다. 한 목사는 자꾸 죄를 만들어주었고 그들은 자꾸 죄를 만들어 가졌다.

그들의 이러한 연극은 정말 한 목사 말처럼 천당 중매장이 구실을 훌륭히 치르어 내곤 했다. 개척 교회의 교세를 확장시켜주었고 변두리 교회를 부흥시켜주기를 계속했다.

한 목사가 정신없이 바빠지면 바빠질수록 덩달아 그들도 경황없이 바빠졌다. 다행한 것은 배당 금액이 많아졌다는 것과 왕초의 잔소리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과 대원들에게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봄철 대부흥회가 거의 끝나가자 한 목사는 그 동안의 노독을 풀기 위해 일주일간 서울 집으로 돌아갔다. 대원들에겐 이 기회가 모처럼의 휴가나 마찬가지였다. 강도와 소매치기가 떠나고 나자 왕초는 창녀와 도둑놈을 데리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왕초는 창녀와 도둑놈을 여관에 남겨둔 채 빈 가방을 들고 나갔다. 서너 시간이 지난 뒤에 왕초의 가방은 듬직해져 들어왔다. 그리고는 창녀와 도둑놈을 불러 뭔가 치밀한 계획을 설명하여 두 사람에게 배역을 맡겼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불한당 같은 생활을 청산하게 될 마지막 찬스란 말야.

그래도 어쩐지 양심에 걸리는데요. 어찌됐든 우리한테는 잘해줬는데.

양심이 밥 먹여주냐? 그런 치들은 우리같이 막 돼 먹은 놈이 손을 봐야 돼. 그게 어디 목사냐 고등사기꾼이지. 잔소리 말고 한탕만 깨끗이 해치우고 좀 다리 뻗고 살자. 마귀 같은 자식들은 누가 보여줘도 본때를 뵈줘야 돼. 털려도 찍소리 못할 거야. 우리가 나불거리기만 하면 평생을 조질 테니까.

왕초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창녀와 도둑놈에게 밤늦도록 알아들을 만큼 잔소리를 했다. 이번 일만 성공하면 반으로 나누어서 사는 것처럼 살자고 했다. 왕초는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웠었는지 한 목사의 재산이며 귀금속이며 저금통장의 액수까지 추측해내곤 했다.

이튿날 아침 이들은 장충동 한 목사에게 전화를 걸은 뒤 조그마한 선물꾸러미를 안고 당당하게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사람 소리가 나자 왕초는 나직하게 두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

니들 진짜 사랑하냐?

둘은 부끄러운 듯 서로를 쳐다보고 망설이 다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왕초는 씨익 웃으며 둘의 어깨를 툭 쳤다.

됐어! 힘내!

응접실에 마주앉아 차를 마시던 왕초는 선물꾸러미를 풀었다, 상자 속에는 날이 선 칼 두 자루와 묶기 좋은 끈과 입을 틀어막을 보자기가 쏟아져 나왔다. 왕초는 칼을 한 목사 목에 댔다.

떠들면 죽인다. 꼼짝 말어. 죽기 싫으면 하라는 대로 해.

도둑놈과 창녀는 재빨리 부인과 한 목사를 묶어 창틀에 매었다. 도둑놈은 부엌에 뛰어들어가 식모를 묶어 데려왔다.

왕초가 한 목사의 목에 칼을 대고 돈과 저금통장과 패물들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만 까딱도 않았다. 왕초의 칼이 한 목사의 목을 찔러 피가 약간 솟았지만 죽는 시늉만 했지 입을 열지 않았다. 도둑놈은 재갈 물린 한 목사의 입을 냅다 후려갈겼다. 피가 보자기에 벌겋게 배어 나왔다. 도둑놈은 사정없이 목사의 .면상을 걷어찼다. 금방 피멍이 들었다. 왕초는 그 사이에 부인의 목에 칼을 댔다. 파랗게 질린 부인은 손가락으로 천정을 가리켰다. 한 목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악을 썼다.

왕초가 칼로 긁어낸 천정 한 가운데는 조그만 구멍이 생겼다. 손을 넣어 그 안에 든 상자를 꺼냈다. 상자 속에서는 왕초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액수가 저금된 통장과 패물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방바닥에 있는 금고 속에서도 적지 않은 현금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왕초는 통장과 도장을 도둑놈에게 건네줬고 패물 상자도 가방에 넣어줬다. 도둑놈은 나가다 말고 묶여 있는 한 목사를 주먹으로 갈겼다. 한 목사는 고꾸라지며 발악적인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비명은 방안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개새끼. 하나님 비슷하던 네 꼴이 영 말이 아니게 됐구나. 기도나 실컷 해라. 니네 진짜 하느님이 봐 줄지 모르니까. 그 동안 열심히 벌어줘서 신나게 잘 먹고 신나게 잘 쓰마.

그리고 창녀에게 한번 싱긋 웃어 보였다. 그 웃음 속에는 뭔가 할말이 무진장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 한시간 후에 왕초와 창녀는 그 집을 나왔다. 도둑놈과 미리 약속한 장소를 찾아가기 위해 서너 번씩이나 택시를 바꾸어 탔다. 서울을 완전히 벗어난 왕초와 창녀는 약속한 시간에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미리 와 있어야 할 도둑놈은 보이지 않았다. 왕초는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보며 두리번거렸다.

 

그날 밤 늦게 왕초는 어금니를 맞 씹으며 어느 으슥한 골목을 걸어나오고 있었다.

놀다 가세요. 아다라시 있어요. 쓸 만해요. 화끈하게 해줄테니까.

몸서리나게 흔들어 줄께.

속옷을 드러낸 채 빨간 입술로 재잘거리는 여자들이 불빛 아래 죽 늘어서 있었다. 왕초는 추근거리는 여자들을 뿌리치며 혼자소리처럼 지껄였다.

지금 한탕 해치우고 오는 길이다. 이년들아.

창녀를 제법 비싼 값으로 뚜장이에게 팔아 넘기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는 골목을 빠져 나오며 생각했다.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운명과 데리고 있던 슬픈 인생들의 미래와 몸뚱아리를 계속 뜯어 먹힐. 창녀의 운명을. 그든 이왕 이렇게 된 판이라면 도둑놈이 붙잡히지 않고 푸짐하게 살아줬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 많은 빳빳한 지폐와 황홀하게 아른거리는 보석을 흔들어가며 살아가는 도둑놈이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버러지처럼 천하고 슬픈 인생을 점지나 받은 것처럼 살아온 그 가엾은 놈만이라도 잘 살아줬으면 해서였다.

그는 침을 탁 뱉고는 어디가 허물어지는 것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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