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서
본래 계획이 있었던 것은 제천쪽의 지인의 집에서 하루를 묵고 올 요량이었다. 그런데 집사람의 성화로 인해 급하게 일정이 변경되었다. 수안보 상록호텔로 숙소를 잡으려 해보다가 말았다. 그래서 결국 낙점된 곳이 원주였다. 간단히 짐을 꾸려 집을 나섰다. 4일간 연휴의 3일째였다. 용케도 방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연휴중간이어서 길이 많이 막힐 것으로 우려했는데 예상외로 전혀 도로상의 정체구간은 없었다. 한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원주의 외곽에 위치한 한 호텔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여장을 풀었다. 저녁식사할 곳을 물색했다. 집사람이 선택한 곳은 인근에 있는 대게집이었다. 식사대가 거의 한우값 수준을 능가했다. 자리가 없어 기다려야할 지경이었다. 다음날이 어버이날이니만큼 다들 외식을 하러 나온 듯했다. 옆좌석에는 노부부와 아들, 딸이 정겹게 대화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자리를 꾸며가고 있었다. 일단 간단한 입가심용 요리들이 나왔다. 회도 감질날만큼 맛만은 보게 해 주었다. 기타 주전부리는 게가 다 익을 동안 배를 채우게할 목적으로 충분했다. 게를 찌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듯했다. 차를 가져왔기에 대리를 부를 수도 있었지만 약주를 주문하지 않았다. 위치가 터미널 부근이다보니 주차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 나중에 가게 주인이 알려준 주차장은 만차였다. 그래서 주변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더니 도장을 받아오면 2시간이 무료라고 알려주었다. 주차장에는 그나마 잔여석이 몇군데 남아있었다. 요즘의 현대인의 필수작업인 인증샷부터 찍었다. 드디어 메인 요리가 나왔다. 집사람은 먹어본 경험이 있는지 미리 배부된 대게용 젓가락으로 기가 막히게 살을 발라냈다. 처음 대게를 먹어본 나는 어설픈 손질에 대게 살들이 다 사방으로 튀었다. 마지막에는 볶음밥과 게 매운탕이 나왔다. 커피는 언제나 그렇듯이 셀프였다. 집사람에게 커피를 한잔 뽑아주고 계산을 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가게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와서 아쉬워했던 술잔을 곁들이며 회포를 풀었다. 원주는 혁신도시로 지정이 되었는지 곳곳에 개발이 한창이었다. 숙소 인근도 다 개발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다음날 둘러볼 곳은 박경리 문학관과 치악산 국립공원의 구룡사로 정했다. 내일은 연휴 마지막 날이라 교통정체가 심각할 것으로 여겨졌다. 2018년에 개최예정인 평창동계올림픽까지 많은 준비를 해야할 것으로 보였다. 영동과 영서로 강원도를 나눌 때 영서의 대표적인 도시가 원주였다. 숙소에서 지척거리에 박경리 문학관이 있었다. 너무 일찍 당도하는 바람에 개관시간인 10시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가 개관시간에 맞춰 입장했다. 문학관은 4층에 있었다. 4층부터 2층까지 여러 가지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이번 문학관 방문을 통해 알게된 것은 작가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8살 남짓 되었을 때 잃었다고 했다. 남편에 대한 옥바라지를 했었는데 사위에 대한 옥바라지도 하게 되어 작가의 기구한 운명이 서글퍼졌다. 인생의 애환을 너무 많이 겪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여겨졌다. 사위의 본가쪽이 원주여서 그곳에 정착을 한 듯 보였다. 묘소는 통영에 위치하고 있단다. 토지를 쓰는데 수십년이 걸렸다는 것도 새로운 얘기였다. 김약국의 딸들이라는 작품도 있었다. 대하소설을 직접 육필로 쓰셨으니 그 대작을 집필하면서 겪었을 고초와 애환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사셨던 건물앞에는 작가의 좌상과 호미 그리고 고양이가 한 마리 조각상으로 있었다. 무척이나 외롭고 힘들었을 일생이 정말 파란만장했을 것 같이 여겨졌다. 문학관에서의 관람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돌렸다. 치악산 국립공원에 소재한 구룡사였다. 20여키로미터를 달려 도착한 곳은 구룡사 입구였다. 주차장이 협소해 결국 아래쪽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다시 올라가야 했다. 다행히 무료셔틀 버스가 있어 걸을 필요는 없었다. 입구에서 내려 절까지는 800미터 가량이었다. 왼쪽편에 산책길이 있었고 우측으로는 차도가 있었다. 산책길 아래로는 길게 늘어진 계곡이 있었다. 국립공원이어서 그런지 계곡쪽으로의 출입은 제한적이었다. 맑은 물이 시원스럽게 여겨졌고 청량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휴일이고 연휴여서 관람객들이 줄지어 올라가고 있었다. 모두들 가슴에는 카아네이션을 하나씩 달고 있었기에 어버이 날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집사람은 대웅전 등에서 삼배를 올리고 가지고 간 향을 피웠고 잠깐씩 좌선을 하기도 했다. 초파일을 일주일 앞두고 있어 연등이 줄지어 메어져 있었고 절 한켠에서는 보살들이 제기 등을 닦고 있었다. 지천으로 피어져 있는 꽃들에게 벌, 나비들이 쉴새없이 넘나들고 있었다. 절 구경을 마치고 입구로 내려와 셔틀버스를 기다렸는데 공교롭게도 유료버스가 먼저와 그것으로 하산했다. 이제는 귀경길이 문제였다. 이미 오후로 접어들었으니 귀경길 정체가 불을 보듯 뻔했다. 일단 춘천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서 가기로 했다. 일단 춘천까지는 쾌속질주가 가능했다. 그러나 강촌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한 길은 역시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결국 설악 IC에서 빠져나와 국도를 탔다. 결국 양평의 서종리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서 귀가길을 서둘렀다. 연휴의 마지막이라 귀경길 정체는 극심할 정도였다. 일박이일간의 원주여행이 끝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여유있는 시간을 보냈고 소중하고 보람된 일정을 보낸 듯하다. 먹는 것도 훌륭했고 볼거리도 실컷 눈요기를 한 셈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이제는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번잡하지 않고 편안하게 일박이일간의 일정을 소화한 듯했다. 사진도 많이 찍었고 추억도 많이 남겼던 일박이일간의 원주여행이었다. 오래전에는 강원도에서 하도 고생을 했었기에 그쪽을 보고는 오줌도 누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곳을 그리워하게 되었으니 인간의 마음 변화에 허황된 쓴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