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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향취(2019.10 7권)

중국 동북3성 여행기

by 자한형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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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3성 여행기

 

1일차 15408, 11.49km, 620kcal, 3,394(건강한 걸음)

08:05 인천발-08:55 심양도착(현지시각)-심양국제학교-한국인 거리(인절미)-中食(오리, 돼지고기, )-고궁-구적족도-아파트(숙소)-夕食(꼬치구이)

 

지인 10명의 중국 동북삼성 역사탐방이 시작되었다. 6시에 인천공항 제2터미널 A구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430분경 택시를 타서 한 시간쯤 소요되었고 택시비는 통행료 6,600원 포함하여 52 000원이었다. 차를 끌고 가느냐 공항버스를 타느냐 등으로 고민하다 택시를 탄 것이다. 공항에 도착에서 홀로 A구역으로 갔고 집사람은 와이파이도시락을 찾으로 갔다 왔다. A구역에서 일행을 만났다. D구역에서 발권을 하고 짐 부치는 수속을 했다. 요즘은 짐을 부티는 것도 무인시스템으로 처리되었다. 출국수속을 하고 48게이트에서 한일전 축구경기 재방송을 보았다. 핸드폰 충전도 가능했다. 집사람이 가져온 단팥빵으로 아침요기를 했다. 아침에 안개가 자욱해서 정시에 이륭이 될까 우려했는데 출발시간이 되었을 때는 시계가 양호해졌다. 비행기좌석은 모닝캄회원인 부부와 우리 부부만 나란히 앉았고 다 이산가족이 되었다. 선양 타오센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절차를 받았다. 항공기에서의 안내와는 달리 열손가락 지문 등록은 여전히 밟아야할 절차였다. 어렵사리 입국수속을 마치고 전세버스에 올랐다.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다. 타오센 공항에 JH님 부인인 SY님이 마중을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선양한국국제학교였다. 교장실을 둘러보고 회의실에서 간단한 공식행사로 KY님이 가져온 칠판지우개를 한 박스 전달했다. 학교 앞마당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버스에 답승하여 서탑이라는 한국인 거리로 이동했다. 한국인 거리에서는 한국전통시장과 비슷한 풍경에 놀랐고 인절미를 사서 먹으며 한국민족이 이곳에 200만명이 살고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북한식당 평양관과 모란관도 있었다. 인공기가 걸려진 모습이 애잔한 느낌을 주었다. 다음 행선지는 점심을 먹기 위해 중국식당에 들렀다. 춘삥이라는 음식이 나왔다. 중국 청나라시대 황제 초상이 걸려져 있었다. 검색을 통해 확인해 보니 옹정제의 초상이었다. 정말 건실한 국가 재정을 만들었던 14년 재위했던 명군이었다. 다시 한 번 중국 대하드라마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얇게 부쳐진 전과 같은 편으로 싸서 먹은 춘삥은 월남쌈과 비슷했다.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설화맥주로 반주를 곁들였다. 식사 후 간 곳은 청나라 초창기의 고궁이었다. 자금성의 1/12 수준이란다. 동로, 중로, 서로가 있었다. 동로에는 대정전이 있고, 심왕정이 좌우로 포진되어져 있었다. 팔각정 모양 전 앞에 좌우로 8기군 8, 왕친위대가 두 개가 합해져 10개의 정이 있었다.

고궁관람을 마친 후 족도 체험을 위해 구적적도로 갔다. 남자 넷, 여자 넷, 부부 한쌍으로 나뉘어 들어갔다. 제공된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리니 맛사지사들이 들어와 약제를 물통에 넣고 발을 담그게 했다. 따슷한 정도의 온도였다.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 동안의 여행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발부터 머리, 등까지 거의 전신 맛사지를 받고 나니 몸도 개운해졌다. 족도체험을 하고 SY님 아파트로 갔다 24층이었다. 짐을 풀고 잠시 앉았다가 걸어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동네 맛있다고 소문난 허름한 꼬치집으로 우리나라 포장마차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가느다란 쇠꼬치에 끼워진 고기류가 익혀서 나왔다. 맥주와 미리 준비한 고량주를 마시며 현지 음식의 맛을 느끼며 식사를 했다. 저녁식사는 SY님이 내는 것이라 했다. 화장실은 열악했다. 아파트로 돌아와 맥주를 한 잔 더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2일차

12,815, 9.12km, 552kcal, 2408(건강한 걸음)

조식(떡라면)-단동으로 이동(3시간, 휴게소 1)- 압록강변 및 단교투어-조식(금백성, 조선불고기, 삼겹살,갈비살)-호산장성-호텔(진주로호텔)-석식-취침

 

동북삼성 역사탐방 2일차이다. 날씨는 쾌청했고 미세먼지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530분쯤 기상해서 채비를 하고 아침식사를 했다. 선양(심양)에 사는 SY님이 준비한 장뇌삼을 공복에 한 뿌리씩 먹은 후 준비해간 라면과 떡국을 섞어 떡라면을 만들어 먹었다. 630분에 출발을 해야 했기에 서둘렀다. 24층의 아파트에서 내려와 버스에 올랐다.(엘리베이터에 24층이 23A로 표시되어 있었다.) 아파트 주민 한 명이 큰 개를 끌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 경비는 삼엄했다. 한 사람씩 통과가 외었고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렸다. 버스는 이제 선양에서 단동으로 향했다. 3시간여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에 한 번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 인근이 청나라시절 황제의 칙서을 버린 곳이라 했다. 청황제가 조선의 왕에게 보내는 칙서를 사신들이 들고 귀국하던 중 그 내용을 보고 자신들의 목이 달아날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칙서를 버렸던 곳이다. 화장실은 좌변기형태였고 흡연 등으로 인해 청결하지 못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나라처럼 깔끔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 일부는 카세트로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기도 하는 보여주기도 했다. 산과 들녘을 달려 단둥에 도착했다. 압록강이 흘렀다. 그리고 압록강 철교가 있었고 그 철교 옆 한 쪽에 단교가 있었다. 단교에 올라가 걷기 위해서 입장권을 끊고 들어갔다. 입구에는 인민복 복장의 중국군들이 나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나라에는 치명적인 침략 군인이 북한과 중국에게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군인인 것이 아이러니 했다. 단교는 강의 중간 정도까지 이어지다 끊겨 있었다. 기념촬영을 했고 강 저편으로 헐벗은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단교에서 내려오니 길 반대편에 북한 식당 류경식당이 보였다. 신기한 듯 한복을 차려입은 여종업원들을 살폈다. 사진을 찍으려는 의도를 눈치 챈 듯 잽싸게 입구 쪽으로 나와 사진을 찍으시면 안됩니다.” 라고 경고를 날리고 냉큼 돌아갔다. 본래 우리의 식사장소였는데 혹시 모를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해서 다른 곳으로 식사장소를 옮겼다고 했다. 길거리에 노점상에 우리나라 사과 같은 과일이 있었는데 미니사과 정도의 크기였다. 한참을 도보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을 금잭성 조선족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의 벽에는 여우 오드리 햅번과 잉그리드 버그만의 흑백사진이 두 장 걸려 있고 또 다른 벽에는 로마의 휴일에서의 장면이 큰 브로마이드처럼 걸려 있었다. 그리고 칸막이처럼 되어진 벽에는 책들이 장식품처럼 걸려 있덨다. 식당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중국인들이 담배를 피워대는 광경이 신기한 장면처럼 낯설었다. 불고기가 우리식으로 보면 삼겹살과 양념된 소갈비살이었다. 엄청난 양에 한 번 놀라고, 저렴한 가격에 두 번 놀랐다. 파채무침, 깍두기, 배추김치 등도 한국산 못지않은 맛을 냈다. 포식을 했고 제대로 식도락을 즐기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냉면으로 식사를 마쳤다. 버스에 올라 다음 관광지인 호산장성으로 향했다. 중국인들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려장성인 호산장성이 만리장성의 시작점이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산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하얀 들국화가 참초로이 피어 있었다. 입장권을 끊은 후 입구에 들어갔더니 우리나라 코끼리 열차와 같은 한 량짜리 셔틀이 있었다. 그것을 타고 산성 입구에 도착했다. 산성은 9문부터 시작했다. 산성 중간 중간에 있는 문 9개를 통화해야 하는데 정각처럼 되어있는 문에 들어서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4문까지는 약간의 경사로 거의 평지수준이었으나 3문부터는 경사가 60도 이상정도로 가팔랐다. 계단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고 북한 땅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정상의 1문은 2층 구조이었고 압록강이 한 눈에 들어왔다. 북한 민둥산과 압록강 섬의 광활한 밭들도 보였다. 간간히 소들과 함께 밭갈이를 하는 농부들도 볼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더 경사가 심해서 만만치 않았다. 70도 이상의 경사로 느껴지는 좁고 가파른 돌계단 길을 난간을 붙잡고 한걸음씩 한참 내려왔다. 이어 벼랑 끝 절벽 길을 거의 기다시피 지나기도 했고 오르락 내리락 하기를 대여섯 차례 하기도 했다. 짧은 출렁다리를 지나기도 했다. 북한과 중국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AY님이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민둥산이면 북한, 숲이 우거져있으면 중국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척인 북한 땅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끝자락에 내려오니 지척이라는 표석과 ‘1보간이라는 표지석이 보였다. 북한이 고랑 같아 보이는 강 건너 지척에 있다는 뜻이었다. 꿀맛 같은 시원한 물 맛과 아이스크림은 땀방울로 얼룩진 몸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길거리 노점상에는 게를 꼬치에 끼운 튀김을 팔았는데 모두들 맛있게 먹는 모습이 이체로웠다. 호산장성 입구로 나와 탈것으로 이동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단동의 진주로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압록강이 바로 호텔 앞으로 흐르고 있었다. 문제는 저녁을 먹을 식당이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해서 음식점을 가야할지를 두고 집행을 맞아 진행하고 있는 SY님과 JH님이 고민했다. 결국 호텔지하로 나와 호텔에서 운영하는 압록강변 야외 테라스형 식당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했다. 먼저 맛을 본 것은 와인과 양갈비, 양다리 훈제였다. 그리고 조그마한 빵과 감자를 으깨 치즈를 덮어 오븐에 구운 음식과 냉면이었다. 테라스 한견에서 다른 중국관광객들이 여러포즈로 깔깔대며 기념촬영을 했다. 밤이 되자 강 건너 북한은 빛이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이틀째 동북삼성 역사탐방이 마무리 되었다. 무척이나 험난하고 지난한 코스였지만 무사히 즐겁게 여정을 마무리했다.

 

3일차 6.8. 15,468, 11.08km, 650kcal, 4,642(건강한 걸음)

단동-집안(5시간)-중힉(조선족불고기)-광개토대왕비-왕릉-장수왕릉(장군총)-환도산성-호텔체크인-국내성터-석식(중국음식)-kfc(커피,아이스크림)-호텔복귀

 

여행 3일차다. 430분에 일어나자마자 압록강변에 떠오른 일출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구름 속에 살포시 그 모습을 드러낸 태양은 여전히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단동의 압록강변에서 맞는 일출은 색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국시간으로 계산하면 530분인 셈이다. 630분 아침식사는 호텔 2층에서 조식 뷔페로 하였다. 오늘 아침도 SY님이 장뇌삼을 일행들에게 일일이 지극정성으로 나눠 주었다. 10인이 앉을 수 있는 원탁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계란 후라이와 삶은 계란도 있었다. 수박 등 과일도 후식으로 맛볼 수 있었다. 좁쌀죽이 인기 메뉴였다. SY님이 단체로 체크아웃을 하고 보증금을 반환 받아 왔다. 체크아웃 과정에서 재떨이가 2개 있었는데 1개만 있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하나 뿐이었다고 강변을 해서 납득이 된 것 같다. 7시에 버스에 짐을 싣고 지안(집안)’으로 출발했다. 압록강변을 따라 이동하는 것은 우리조상들의 숨결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헤 주었다. 중국 쪽에도 철책이 쳐져 있었고 북한 땅 쪽으로도 철조망이 쳐져 있었기에 국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선풍적인 호응을 받았던 압록강은 흐른다’(이미륵), ‘북간도’(안수길) 등 만주 별판을 무대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동포들의 행적이 눈물겨웠으리라 상상이 되었다. 신록의 푸르름이 더할 나위 없는 6월의 싱그러움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간간이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광을 담기 위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했다. 산과 들판 그리고 압록강을 지났고 조그마한 시골 장터같은 혼잡한 곳들도 지나쳤다. 길거리 난장에 걸린 울긋불긋한 많은 옷들과 많은 농산물들이 지천으로 깔린 채 새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동북삼성의 중국인들은 한족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래도 조선족이 소수민족으로 자리매짐하고 있다는 것에서 친근감이 느껴졌다. 한 시간쯤 달린 후에 나타난 명소로 수풍댐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력발전소였던 그 명성 그대로 웅장한 모습을 저 멀리 강 한 켠에서 바라 볼 수 있었다. 만주국과 공동자본 참여를 통해 건립되었기에 아직도 생산된 전기의 절반의 몫을 동북삼성에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길가에는 참외, 구기자 등을 거리에서 판매하는 노점이 서너군 데 있었다. 다시 한 시간여를 달려서 만난 곳은 화장실이었다. 도착하기 전 마지막 화장실이었다. 70년대 우리나라 시골 화장실을 생각하고 기겁을 했지만, 파리는 많았으나 분뇨냄새가 심하지 않아 생각보다는 쉽게 일을 볼 수 있었다. 화장실 옆 밭에는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고 깨금 등의 작물도 재배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인 모습에서 일부 농부들이 복숭아 과수원에서 봉지 씌우기를 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장장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지안(집안)’이라는 곳이었다. ‘조선족 불고기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숯불 화로가 준비되었고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도록 6인석으로 조성이 되어 있었다. 배추김치와 콩나물 무침이 있었고 큰 양푼 같은 그릇에 된장국이 나왔다. 상추와 앙파 마늘 등도 푸짐하게 나왔다. 가격도 저렴했다. 맥주도 반주로 한 잔씩 했다. 옆 좌석에 먹고 있었던 특수부위(염통과 돼지껍데기)도 어렵게 통역해서 겨우 시켜서 먹을 수 있었다. 염통은 바싹 익혀서 소금에 찍어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첫 예정지로 시작한 곳은 호태왕비’(광개토대왕비)였다. 동북삼성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였다. 사방이 유리로 된 비각을 만들어 비석을 보호하고 있었다. 비문의 훼손 방지를 위해 실내에서의 사진 촬영도 엄격히 금지되었다. 비각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높이 6m였고 1,590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비명은 호태왕비라고 되었다. 역사탐방을 온 부산의 여중생이 우리의 단체사진을 찍어주었다. 부산 연제구에서 왔다고 해서 반가웠다. 들판에는 작약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진분홍 빛의 자테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도 소용이 없었다. ‘호태왕릉이 있는 곳까지 걸어서 이동을 했다. 그렇게 많은 관광객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공원은 잘 조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중국인들도 관광을 하고 있었고 매표소에는 근무하는 여직원들의 사진도 게시되어져 있었다. 대왕의 릉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고색창연했다. 릉 안쪽으로 들어가면 관 모양의 돌이 두 개 안치 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비장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광개토왕비와 왕릉의 관람을 마치고 이동한 곳은 장수왕릉이었다. 일명 장군총이란 곳이다. 돌로 된 릉의 모양이 작은 피라미드에 버금갈 정도였다. 릉의 네 면에 큰 돌을 3개씩 버팀목을 세워 유지하고 있었으나 유실되어 약간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2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고인돌 형태의 왕족 무덤이 있었는데 역시 돌을 빼내간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 10m쯤 이동하기 시작할 때 소나기가 쏟아졌다. 다음 목적지는 환도산성이었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세차게 내려 환도산성을 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8km를 이동하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환도산성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했으나 입구에 도착하자 비가 그쳤다. 여기는 비가 내리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미리 끊어 놓은 입장권을 제시하고 입장했다. 전체를 다 돌아보려면 7km를 걸어야 한다는 것에서 다들 깜짝 놀랐다. 입구에 있던 출렁다리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환도산성은 어제의 호산장성과는 또 다른 형태였다. 길게 사각 돌을 아래에 쌓고 위에는 깨진 돌들이 쌓여져 있었다. 입구 쪽에는 돌들이 무너지지 않게 철망으로 고정시킨 곳도 있었다. 산성 위에 일부 구간은 나무 데크로 걷기 편하게 해 두었고, 아래 쪽에는 무덤 군이 복원되어 있었다. 돌무덤과 흙무덤, 무덤의 크기 등이 신분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산성 가는 길의 옆 사유지에는 철조망이 쳐저 있었고 작목을 재배하고 있었다. 옥수수, 대파, 쪽파, 호박, 깨금 등이 있었다. 한참 산성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중국인 한 가족이 땅바닥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자세히 살펴보니 말똥구리의 작업 모습이었다. 두 마리 말똥구리가 자신보다 몇 배 더 큰 말똥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열심히 굴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입구에서 2km쯤에 있는 전망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하산했다. ‘환도산성의 관광을 마무리 하면서 동북삼성의 공식적인 관광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호텔에서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면 되는 것이다. 2시간쯤 휴식을 취한 후 로비에서 만나는 것으로 되었는데 그 동안에 호텔 앞에 있는 국내성터를 도보로 둘러보았다. 옛 고구려의 도읍지인 국내성이었는데 성터자리와 남문, 동문 등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인증 샷을 남기고 돌아왔다. 북한과의 접경지역이다보니 보안이 철저했고 공안의 단속도 심해서 여행 경고지역으로 되어져 있다고 했다. 식사는 정통중국식으로 룸에 들어가 10명이 원탁에 앉았다. 준비한 바이오주에 맥주를 시켜서 곁들였다. 탕수육, 마파두부, 돼지고기 고추볶음, 콩요리 등이 나왔다. JH님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침없는 입담과 AY님의 섬세한 유머로 모두 깔깔거리며 웃었다. 다음 평가회 일정도 잡았다. AY님의 제안으로 SY님이 귀국하면 23일 국내여행도 추진하자고 했다. 지안에서의 밤이 깊어가는 가운데 아쉬움이 남았지만 마무리가 되었다. 갈매기, 사우디, 아우디의 건배사도 있었다. 이국땅에서 적응하기까지의 현지 SY님의 눈물겨운 사연도 일행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긍덕기(KFC)에 들러 이이스크림과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여행의 마무리 대화를 나눴다. SN님 부부의 여권 분실 착오 에피소드와 주요부위에 대한 에피소드는 기억으로만 남긴다. 호텔로 돌아와 세면 후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4일차

집안-단둥-휴게소(영릉, 김밥 점심)-선양-공항-출국수속-16:50 이륙

 

동북삼성 역사탐방 마지막 4일차 여정이 시작되었다. 새벽녘이었다. 3시경에 기상했다. 일출을 보려고 창밖을 살펴보는데 안타깝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탁자에 가서 여행기 작성에 나섰다. 거의 3시간 소요되었다. 3일차 일정을 다 쓰고 나니 동이 텄고 새벽시장이 열렸다. 새벽시장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5시 반에 로비에 모여 SY님을 따라 구경할 수 있었는데 어줍잖게 실기하고 말았다. 630분 경에 채비를 해서 2층 식당에 내려갔다. 조식뷔페로 식사를 하고 출발 준비에 들어갔다. 3일차와 동일하게 SY님이 단체로 체크아웃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8시에 출발해서 공항까지 6시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중식식사도 김밥으 ㄹ준비해서 휴게소에서 하기로 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시야도 썩 좋지 못한 상태였다. 처음의 길은 거의 국도였고 제대로 속력을 재지 못했다. 청춘의 문 6권의 남은 부분 60페이지를 읽음으로서 이번 여행에서 책한권을 완독했다. 2월부터 강의를 계속하다보니 제대로 책 한 권을 읽지 못했는데 용케도 완독이 되었다. 신소계와 오리에 관한 부분이 중점적으로 묘사되어 있었고 부제로 된 것은 재기였다. 다음은 강의 자료를 한 번 훑어 보는 것이 과제였다. 6시간여 긴 시간동안 짬짬이 동영상 촬영을 했다. 3분에서 8분짜리 동영상이었고 주로 5분 내외로 찍었다. SY님이 김밥을 배분해 주었다. 아침에 내렸던 비는 그쳤고 영릉휴게소에서 김밥을 먹으니 야외소풍을 온 분위기였다. 이국땅에서 맛보는 김밥은 새로운 느낌이었다. 휴게소에는 청나라 황제의 동상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바깥에는 아이스크림과 쏘시지를 팔고 있었고, 쥐똥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30분 정도의 식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한국에는 우박이 섞인 비가 내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오후 두 시가 되어 공항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꺼내고 버스기사와 작별을 했다. 공항내로 진입해서 자리를 잡고 짐정리를 했다. 발권과 짐을 부치는 수속을 한 후 SY님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출국 수속에 들어갔다. 나라를 달리해서 떨어져 사는 부부의 작별에 애잔함이 느껴졌다. 밧데리를 다 꺼내 점검을 하고 통과했다. SN님은 라이터가 있어서 통과하는데 애로를 겪었다. 면세점에서의 커피와 물은 너무 고가여서 구입을 포기하고 로밍을 해온 AY님은 유튜브를 통해 한국과 세너갈의 U-월드컵 8강전을 다시시청하며 새벽녘의 감동적인 순간을 다시 만끽했다. 한 탑승객이 의자에 여권과 탑승권을 두고 가서 그 것을 주운 여행객이 사람이름을 부르며 돌아다녀 주인을 찾아준 훈훈하지만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전날 밤 SN님의 여권 분실 헤프닝과 주요부위 사건을 다시 떠 올리며 깔깔 웃었다. 비행기 승객은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었고 백두산과 집안을 관광하고 귀국하는 길이었다. 한 시간 전쯤 우리가 탑승할 비행기가 도착했고 청소요원들이 기내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공항에서는 와이파이는 연결이 되지만 사진 전송은 잘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Daum 사이트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와이파이도시락을 준비했지만 카카오톡도 연결이 잘 되지 않아 불편했다. 중국에서는 위쳇을 사용한다고 했다. SY님은 8월 휴가철에 남편인 JH, 자녀분과 상해에서 조우하여 소주와 항주를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39번게이트에서 대기 했다가 30분 전 쯤에 탑승했다. 1650분에 이륙한 대한항공 834편은 1830분쯤에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중앙, 동아, 조선 신문을 보고나니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비가 내린다던 예보와는 달리 쾌청하게 맑은 날씨였다. 공항에서 일행과 작별하고 택시로 귀로에 올랐다. 34일간의 동북3성 역사탐방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마누라 지인들과의 여행이라 여러 가지 우려와 염려가 되었는데 무사히 일정을 마친 셈이다. 이제는 다시 또 여행에서 받은 기운을 활력으로 삼아 평범한 일상으로 회귀하여야 하리라. 이렇게 자주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 여겨진다. 모두들 좋으신 분들이라 무난하고 즐겁고 유쾌한 여행을 할 수 있었던 듯하다. 6월의 신록의 푸르름을 동북삼성 역사탐방을 통해 마음껏 만끽하고 돌아온다. 모든분들이 만사형통, 승승장구하는 나날을 이어가길 간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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