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마주친 100개의 인생 45: 과거에 고립된 어느 소아성애자의 인생 - 소설, 롤리타/임관산
소설 『롤리타』
프롤로그, 나를 고백한다
나를 고백한다. 나의 일기를 독자들에게 공개한다. 나의 이름은 ‘험버트 험버트’, 미국으로 이민 온 유럽 출신의 학자이며, 현재는 살인죄로 정신병동을 거쳐 감옥에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 고백에 ‘롤리타 : 어느 백인 홀아비의 고백’이란 이름을 붙이겠다.
이 글은 저주받을 소아성애자의 글이며 이 글에는 그 어떤 교훈도 없다. 내가 이것을 세상에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오직 이것만이 나의 마음속에 롤리타, 그녀를 간직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예술만이 그 피난처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롤리타와 함께 불멸을 누리는 길은 오직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 나의 롤리타.
어린 소녀들에게 넋을 빼앗기게 된 이유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약 147센티미터의 키에 열두 살의 그녀, 그녀는 그냥 ‘로’였고,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고, 학교에서는 ‘돌리’이며,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였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롤리타는 인간이 아니라 마성을 가진 님프(nymph,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요정)였다. 나만의 치명적인 ‘님펫(님프에 –et가 붙은 단어. 이 소설에서 처음 쓴 말로 성적 매력을 가진 여자아이를 지칭)’이었다.
어쩌면 롤리타는 애너벨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첫사랑 애너벨, 오 그 비참한 기억이여. 내 나이 열세 살일 때 날씬한 팔과 꿀빛 피부, 그리고 긴 속눈썹을 가진 사랑스러운 아이, 애너벨이 다가왔다.
영화 ‘로리타(1997)’ 中
사춘기의 우리 둘은 갑작스럽게, 서투르게, 뜨겁게, 고통스럽게, 그리고 미친 듯이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우리는 부모의 시선을 피해 보드라운 모래밭에서 격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를 만졌다.
「그러나 이렇게 아쉬운 접촉은 건강하고 경험 없는 어린 육체들을 오히려 더 격앙시킬 뿐, 푸르고 차가운 물속에서 서로를 아무리 더듬어도 흥분은 전혀 식을 줄 몰랐다.」
그러나 그 해, 운명적인 여름이 끝날 무렵 애너벨은 티푸스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금가기 시작했다. 애너벨을 향한 이루지 못한 나의 과도한 욕망은 내 선천적 이상의 입증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날 이후 20대는 물론이고 30대가 되어서도 번민해야 했다.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넋을 빼앗기는 내 모습은 내 갈망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 한번은 지하철에서 빨강머리 여학생 하나가 바로 내 앞에 서 있었는데, 그때 본 황갈색 겨드랑이 터럭 때문에 몇 주 동안이나 피가 끓었다. 이렇게 짧게 끝나버린 짝사랑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나는 점점 괴물이 되어갔다. 애너벨이 아니라면 애너벨의 자매이거나 하다못해 그녀의 시녀라도 만나고 싶었다. 포주들에게 힘들게 힘들게, 가까스로 범죄에 해당할 듯한 나의 요구를 말하며 80여 명의 창녀들을 전전했으나 애너벨은 찾을 수 없었다. 나의 나이는 중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나 내 영혼과 정신은 사춘기의 공원, 그 이끼 낀 나만의 정원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저주받았고 나의 삶은 지옥불 속의 그것이었다.
내 사랑 애너벨...
나는 괴물로 살지 않기 위해 결혼을 했다. 결혼에 따른 규범과 일상적인 성관계가 나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짧게 끝났다. 나 ‘험버트 험버트’가 손에 넣은 것은 여린 소녀가 아니라 몸집 크고 투실투실하고 짧은 다리와 큰 가슴을 가진 촌년이었다.
나는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롤리타와의 첫 만남과 사랑을 고백한 엄마
뉴욕의 생활은 나에게 즐거움과 어둠을 동시에 주었다. 센트럴파크를 뛰노는 어린 소녀들, 님펫(성적 매력을 가진 여자아이)들을 훔쳐보는 것은 대단한 즐거움이었고, 나에게 달라붙는 화려한 차림의 직장여성들이 풍기는 역겨운 향수 냄새는 불쾌함의 어둠이었다. 나는 극심한 신경쇠약으로 1년 이상을 요양원에서 보내야 했으며 다시 일을 시작하자마자 또 입원해야 했다. 나는 시골 생활을 원했다. 뉴잉글랜드의 시골집을 보러 갔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내 심장 밑에서 푸른 파도가 불쑥 솟구치고, 햇빛이 쏟아지는 매트 위에 반라의 몸으로 무릎을 꿇은 내 리비에라의 연인이 무릎을 축으로 빙글 돌아앉으면서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나를 바라보았다. 옛날 그 아이와 똑같았다.」
낡은 시골집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어린 시절 죽어버린 나의 신부를 덮어버릴 새로운 소녀 ‘로’를 발견했다. 늙어가는 유인원 같은 내 육체였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은 영원한 것이었다. 그녀는 검은색 스카프로 가슴을 가리고 안뜰에서 뛰놀고 있었지만, 나는 사춘기 시절 그날 내가 어루만졌던 그 풋가슴을 단숨에 꿰뚫어 보았다. 로에게는 내 입술이 머물렀던 애너벨의 홀쭉하고 사랑스러운 배도 있었고 영원히 잊지 못할 마지막 날, 반바지 고무줄이 남긴 올록볼록한 흔적에 입을 맞추었던 그 풋풋한 엉덩이도 있었다. 섬광처럼 전율이 흘렀다. 나는 경외감과 기쁨에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30대 중반의 과부, 집주인 샬럿 헤이즈 부인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낡고 후줄근한 그녀의 집과 내가 기거할 방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흔쾌히 헤이즈 부인의 하숙생이 되었다. 물론 그것은 나의 롤리타 때문이었다.
하숙생 생활이 시작되었고 어느 날 샬럿 헤이즈 부인이 사랑을 고백했다. 그 고백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반응은 혐오감과 거부감이었다. 그러나 문득 깨달았다. 내가 로의 의붓아버지가 되었을 때 그녀에게 거리낌 없이 퍼부을 수 있는 온갖 애무가 떠오른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하루 세 번씩은 그녀를 껴안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헤이즈 부인의 사랑을 수락했다.
「샬럿과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이볼을 마셨다. 그 술기운 덕분에 엄마를 애무하면서 딸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의 음모가 들통났다. 샬럿이 내 일기장을 훔쳐본 것이다. 그녀는 눈물과 독설을 함께 쏟아내며 로를 데리고 떠나겠다고 했다. 나에게 앞으로는 절대로 절대로 로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를 달래야 했다. 나는 그녀가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한잔하자고 했다. 그리고 당신이 본 것은 단지 소설일 뿐이라는 변명을 하며 냉장고가 있는 곳으로 갔다. 샬럿은 대답도 하지 않고 기세등등하게 무언가를 써댔다. 이미 우표까지 붙인 두 통의 편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세 번째 편지를 쓰는 것이리라.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편지 중 하나는 캠프에 가 있는 로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내가 술을 가져왔을 때 샬럿은 없었고 대신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 속 목소리는 샬럿이 죽었다고 말했다. 샬럿은 흥분한 상태에서 건너편 우체통에 편지 세 통을 넣으려고 도로에 뛰어들었다가 차에 치인 것이었다. 밖으로 나간 내 눈에 정수리가 깨져 뼈와 뇌수와 구릿빛 머리카락과 피가 마구 뒤엉켜 곤죽이 된 샬럿의 시체가 들어왔다.
최악의 장애물, 샬럿이 제거되었다. 나의 연기는 훌륭했다. 나는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에게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고 홀로 남아 고아가 된 어린 딸의 장례를 걱정하는 자상한 의붓아버지였다. 사람들에게는 로를 죽을 때까지 보살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참견쟁이들이 우글우글한 이곳으로 나의 롤리타를 데려올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제 사촌 중에 뉴욕에서 홀로 사는 고상한 누님이 있습니다. 거기서 돌리(로, 롤리타)한테 맞는 좋은 사립학교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아, 교활하기 짝이 없는 험버트!」
첫 번째 여행, 어린애와 연인 사이
「“글쎄, 아직 키스도 안 해줬잖아요?”
나는 내심 숨이 끊어질 듯이 신음하다가 앞쪽에 제법 널찍한 갓길을 발견하고 다짜고짜 덜컹거리고 흔들거리며 풀밭으로 뛰어들었다. 어린애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어린애라는 사실을 잊지--」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로에게는 천진난만한 놀이에 불과하고 가짜 사랑을 흉내 낸 가짜 연애를 다시 모방하는 어린 열두 살짜리 계집애다운 유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러나 운명의 교묘한 도움을 받아 시작된 황홀한 쾌락을 거부할 의지는 너무나도 약했다. 나는 입술 너머로 그녀의 큼직한 앞니가 짓누르는 감촉까지 느끼면서 박하맛 나는 침을 맛보고 말았다.
이렇게 로와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캠프Q’에서 그녀를 데리고 나와 차에 태웠다. 내 목적지는 호텔 ‘마법에 걸린 사냥꾼’이었다. 그곳은 한적하고 은밀한 곳이었다. 로는 나를 연인, 아빠, 변태 아저씨 등으로 부르며 조잘댔으나 비교적 고분고분하게 따라왔다. 가끔씩 사탕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주면 되었다.
「이 아이는 이제 천애고아다. 혈혈단신 외톨이다. 그런데 바로 그날 아침, 육중한 몸집에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어른이 이 외로운 아이와 세 번이나 격렬한 성교를 해버렸다.」
그것은 강간과 다를 바 없었다. 화살이 과녁을 넘어가서 악몽에 꽂히고 말았다. 나는 경솔하고 어리석고 비열했다. 나의 하반신은 기뻐했으나 상반신은 슬퍼했다. 지독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것은 로가 이미 열한 살 때 첫 경험을 했다는 것, 그녀가 처녀가 아니었다는 사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욕정의 얼굴은 늘 우울했다. 이 가련한 님펫을 향한 나의 욕망은 놀랍도록 모질었다. 이 캄캄한 혼돈의 밑바닥에서는 다시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미국 여기저기를 떠도는 길고 긴 여행이 계속되었다. 돈을 아껴야 했기에 숙박은 호텔보다는 모텔에서 했다. 물론 그곳이 금단의 사랑에는 더 어울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로는 참으로 복잡한 감정의 변화를 보였다. 갑자기 화를 내며 나를 헐뜯다가도 동전이 필요할 때는 얌전해지기도 했다. 나는 사탕, 만화책, 콜라, 생리대, 아찔한 상의, 반바지, 각양각색의 원피스 등을 아낌없이 사주었다. 낮에 어떤 다툼이 있었더라도 밤에는 다정하게 내 품에 안겼다. 고아가 된 그녀에게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끝나고, 완전히 끝나고 그녀가 내 품에 안겨 울던 장면이 떠오른다. 한동안 계속되었던 우울증을 한꺼번에 씻어내는 유익한 폭풍같은 흐느낌이었다. 그 무렵 그녀는 걸핏하면 우울해했다.」
두 번째 여행, 로의 성장과 미쳐가는 나
동부 비어즐리에 도착하는 것으로 로와 나의 떳떳지 못한 긴 여행은 끝이 났다. 비어즐리에는 괜찮은 여학교가 있었고 여자대학도 있었다. 나는 그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내가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를 비어즐리의 사립학교에 입학시키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멕시코로 갔어야 했다. 그곳에서 한 2년쯤 숨어 지내다가 결혼을 했어야 했다. 로의 행실이 점점 나빠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늘 나의 욕망에 불을 지르면서도 정작 자신의 욕망은 드러내지 않았다. 나약하고 현명하지 못한 나는 그녀의 노예로 변해갔으며, 그녀는 그 점을 이용했다. 나는 끝없이 돈을 토해내어야 했다. 10센트, 25센트, 1달러짜리 은화. 물론 입맞춤을 하거나 특별한 애무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돈을 받으면서도 무성의했다. 어딘가에 돈을 모으는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그녀가 나를 파산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도망치는 데 필요한 돈을 모으는 일이었다.」
나한테 참견하지 마세요
2년이 흘렀고 로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확실히 달라졌다. 나는 그 변화에 구역질이 날 정도로 환멸을 느꼈다. 로는 가끔씩 냉혹하고 흐릿한 눈으로 나를 조롱하듯 바라보았다. 학교에서 로는 연극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했는데, 그것을 핑계로 자주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나의 비밀을 친구들에게 발설했을까 두려워해야 했고 어떤 싸움은 이웃집에서 신고할 정도로 격렬하게 진행됐다. 다시 떠나야 했다.
다시 여행이 시작되었고 가는 곳마다 모텔의 안내문이 우리를 맞이했다. 내 속셈은 멕시코 국경을 건너가는 것이었다. 일단 그곳에 가서 이제 키 60인치, 몸무게 90파운드로 성장한 어린 애첩을 어떻게 할지 결정할 셈이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여행을 출발부터 좋지 않았으며, 나는 자주 망상에 시달려야 했다.
로가 나 몰래 정체불명의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을 만난다고 느꼈다. 언젠가는 주유소에 들렀을 때 수리공의 작업을 지켜보느라 잠시 내 시선이 차단된 사이에 그녀가 슬그머니 차에서 내려 건물 뒤편으로 사라진 적도 있었다. 그것은 분명 금기사항이었다. 로가 나 몰래 어디론가 전화할 때, 또는 주변의 젊은 남자를 볼 때 나는 조만간 로가 도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로에 대한 나의 의심은 점점 커져 갔으며 그와 함께 나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그녀의 티셔츠를 난폭하게 벗겨냈다. 다른 옷도 모조리 벗겨버렸다. 샌들도 빼앗아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그녀가 저지른 간음의 그림자를 맹렬히 추적했다. 그러나 내가 뒤쫓는 냄새는 너무 희미해서 미치광이의 망상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로의 목적지는 ‘엘핀스톤’이었나보다. 그녀가 나로부터 도망칠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엘핀스톤에 와서야 사라졌으니 말이다. 엘핀스톤의 모텔에서 로는 열병에 걸렸다. 열이 40도를 넘나들었다. 나는 로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리고 증세가 호전되었다는 말에 병원을 방문했으나 로는 없었다. 누군가가 캐딜락을 타고 와서 병원비를 내고 로를 퇴원시켰다는 것이다. 나의 롤리타는 그렇게 사라졌다. 도대체 누구일까. 그 악마는 누구일까. 롤리타 없는 삶이 시작되었다.
「내가 여기서 전달하고 싶은 대략적인 인상은 내 인생이 전속력으로 날아가던 중 비행기의 옆문이 벌컥 열린 듯이 암흑의 시간이 으르렁거리며 덤벼들고 매서운 돌풍이 외로운 조난자의 비명마저 삼켜버렸다는 것이다.」
롤리타의 편지와 재회, 그러나...
3년을 찾아 헤맸다. 롤리타를 찾아 헤맸고 그녀를 데려간 악마를 찾아 헤맸다. 이 연놈들을 찾아야 해, 라고 중얼대고 있을 때 한 통의 편지가 담담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롤리타의 편지였다. 그 편지는 ‘아빠에게’로 시작해 ‘돌리(리처드 F. 스킬러 부인)’으로 끝났다. 그 편지에서 로는 자신이 결혼했고 임신 중이며 삼사백 달러의 돈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났다. 로를 향해 혼자서. 아니 혼자가 아니었다. 조그맣고 시꺼먼 친구, 권총과 함께였다.
「어떤 분들은 내가 그녀를 죽이려니 짐작했겠지만 물론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 영원히 사랑하리라.」
내가 3년간 상상한 이 순간! 희미한 주근깨가 박힌 두 뺨은 홀쭉해지고, 드러난 정강이와 팔은 갈색을 잃어 잔털이 눈에 띄는, 꾀죄죄한 슬리퍼에 거대하게 부푼 임신한 배를 가진 그녀가 내 앞에 서 있다. 놀라움과 반가움과 침묵과 함께.
큐, 희곡 작가 ‘클레어 퀼티’가 그 악마였다. 마약 중독자에 나와 같은 소아성애자 변태였다. 5년 전, 로가 캠프에 참가했을 때 그녀를 할리우드에 데려간다고 유혹해 집단 난교를 강요한 놈. 로가 나와의 관계에 대해 고백했더니 배꼽 빠지게 웃었다는 놈, 그리고 3년 전 그곳 엘핀스톤의 병원에서 또다시 로를 유혹해 빼돌린 놈이 바로 그놈이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악마는 또 하나의 나였던 것이다. 큐와 나 험버트 험버트,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했고 그것은 큐여야 했다. 그래야 내가 그놈보다 두어 달이라도 오래 살 것이고, 이 이야기를 후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만지면 그대로 죽을 것 같아.” 나는 말했다.
“정말 같이 안 갈래? 나와 같이 갈 가능성은 조금도 없는 거야? 그것만 말해줘.”」
로, 나의 롤리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혼자 가세요
나는 그녀에게 내가 가진 모든 돈, 4,000달러가 든 봉투를 주었다. 로는 그 돈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권총과 함께 차를 몰았다. 마지막 할 일을 위해. 술에 취한 채.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내 비록 다리가 다섯 달린 괴물이었지만 너를 사랑했다. 내 비록 비열하고 잔인했지만, 간악했지만, 무슨 말을 들어도 싸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했다! ...... 나의 아이야. 롤리타, 씩씩한 돌리 스킬러.」
에필로그, 나에게 35년 형을 선고한다
마약에 취한 큐를 죽이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 역시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글쟁이의 몸싸움을 누가 보았더라면 슬랩스틱 코미디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는 비만이었고 나는 가까이 있었지만 첫 발을 명중시키지 못했다. 몸싸움 과정에서 맡은 그의 노린내는 끔찍한 것이었다. 드디어 한 발을 놈의 옆구리 어딘가에 명중시켰다. 놈은 말벌에 쏘인 듯이 울부짖으며 캥거루처럼 도망쳤다. 한 발, 또 한 발. 여러 발이 놈의 몸뚱이에 박혔고 그럴 때마다 놈은 아프다며 그만 쏘라고 애원했다. 결국 머리통을 맞추고 나서야 놈은 입에서 큼직한 분홍색 공기 방울을 뿜으며 죽었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지금까지 쓴 내용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 글에는 약간의 골수와 피가 묻고 아름다운 연녹색 파리들이 붙어 있다.」
속셈이 뻔하다고 하겠지만, 나는 사형에 반대한다. 만약 내가 판사여서 나 자신을 심판한다면 강간죄를 제외한 기타 죄목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내릴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강간죄로 최소 35년 형을 선고한다.
「네 남편이 너에게 늘 잘해주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유령이 되어 검은 연기처럼, 혹은 미친 거인처럼 그 녀석을 찾아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말 테니까.」
나는 결국 재판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심판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구금 중에 관상동맥혈전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유인원의 길, 인간의 길
아무리 ‘나보코프’의 마술적 언어로 포장되었다지만, 500페이지라는 많은 분량 속에 담긴 소아성애자 험버트의 인생은 혐오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가 ‘나의 사랑 롤리타!’를 외칠 때마다 사랑이라는 말이 주는 감동 대신 오히려 역겨움과 증오심이 솟아났습니다. 마치 먹으면 먹을수록 속이 거북해지는 싸구려 불량식품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소아성애’라는 범죄적 정신 질환이니까요.
타임지 선정 20세기 100대 소설.PNG출처-<타임지 홈페이지> 링크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유명한 ‘타임’지가 이 소설을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로 선정했다는 것이고 프랑스의 정론지로 평가받는 ‘르 몽드’지가 ‘세기의 명저 100’에 이 소설을 올려놓았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저자인 나보코프가 자신의 대표작인 이 소설에 대해 그 어떠한 도덕적 교훈도 없다고 공언했음에도 말입니다. 조국 러시아를 떠나 서방세계로 망명한 작가,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는 작가, 나보코프는 왜 험버트의 이야기를 썼을까요.
「어느 과학자가 이 유인원을 몇 달 동안 어르고 달래서 동물로는 처음으로 목탄화를 그리게 했는데, 이 불쌍한 짐승이 그려낸 것은 자기가 갇힌 우리의 쇠창살이었다.」
나보코프.PNG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나보코프가 작가의 말에서 밝힌 집필 동기입니다. 자신을 가둔 우리(Cage)를 그린 유인원, 이 불쌍한 동물에 관한 신문 기사를 보고 그는 최초의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왜 이것이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을까, 유인원은 누구이고 우리(Cage)는 무엇일까.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봅니다.
먼저 유인원은 험버트이고, 우리(Cage)는 그의 욕망과 집착이라는 생각이 그럴싸하게 떠오릅니다. 험버트는 사춘기 시절 또래 첫사랑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실을 경험했습니다. 상실 앞에 나타나는 인간의 행동 양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상실을 메워 줄 새로운 ‘추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상실의 대상에 대한 ‘집착’입니다. 험버트가 택한 것은 두 번째입니다. 잔인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당연한 선택입니다. 벗어날 수 없는 집착은 굴레이고, 굴레는 마음의 감옥입니다. 그것이 우리(Cage)의 정체입니다. 험버트는 그 우리(Cage) 속으로 들어간 유인원입니다.
어쩌면 유인원은 롤리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험버트는 롤리타를 온전히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고자 인생을 바쳤습니다. 만약 자기만이 열 수 있는 우리(Cage)가 있다면 제일 먼저 그 속에 롤리타를 가두고도 남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롤리타는 험버트가 가진 욕망의 대상이자 성착취의 대상이었으며 성격상 그것은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것이니까요.
상상과 추측이 꼬리를 물다 보니 혹시 유인원은 우리(We)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러저러한 사연들로 만들어진 각자의 감옥. 지독한 경쟁과 낙오에 대한 두려움, 과거 농경 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위험들, 그리고 뻔뻔스럽게 전도되는 선과 악, 또한 옳다고 믿었던 가치관들. 이런 것들이 주는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처가 내가 만든 우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일수록 고장의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내면은 생각보다 여리고 약합니다. 상처 입고 무너지는 내면의 안식처가 필요하지요.
우리(Cage)의 정체가 무엇이든, 유인원이 누구이든지 간에 사람이라면 그것을 열고 나와야 정상입니다. 사람이 아닌 곰이나 원숭이 같은 유인원도 가둬 놓으면 나가려고 발버둥 치니 말입니다. 우리 속 아늑함과 던져주는 먹이에 취해 그 속에 안주한다면 그것은 짐승의 품격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격’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힘든 날 속에서 지치고, 지치다 보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심정 속에서 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 속에서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어두운 인생 하나를 소개했습니다. 험버트의 인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피해자의 선정적 모습을 담은 표지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건강에 좋은 먹을거리를 소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강에 좋지 않은 먹을거리를 알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험버트의 인생을 소개했습니다.
우리 앞에 두 개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속에 갇힌 ‘유인원의 길’이고, 고통스럽고 두렵겠지만 그 우리를 부수고 나와 벌판에 자신을 던지는 ‘인간의 길’입니다. 어떤 길을 걸을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 어떤 대가를 치를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른 각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우울하고 죄송스러운 심정에 시 한 수 소개해 드리며 마흔다섯 번째 인생 탐구를 마칩니다.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어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 김영랑, ‘독을 차고’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