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 힐링 8강-2], 마음속 깊은 곳의 진짜 ‘나’를 찾다/송인섭
진짜 ‘나’는 ‘보이는 나’인가 ‘보이지 않는 나’인가
진심을 담아 베풀다
현 SK그룹을 세운 일등공신인 최종현은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최종현은 가난했던 대부분 유학생들과 달리 자동차도 몰고 다니는 등 매우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에서 최종현에게 돈을 대주는 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종현의 형은 SK그룹의 창업자라 할 수 있는 최종건! 최종건은 1950년대, 그 어려웠던 시절에 직물공장을 세웠고 그 직물공장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동생 최종현의 도움으로 공장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 후 원래 학문에 뜻을 두었던 최종현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자 형 최종건은 최종현에게 꼬박꼬박 유학비를 보내주고 있었던 것이다.
때는 1960년대라 최종현을 제외한 다른 유학생들의 생활은 궁핍하기 그지없었다. 대부분이 낮에 공부하고 밤에는 돈을 버는 생활을 했다. 최종현은 자신은 비록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런 친구들의 사정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다. 어느 날 그런 친구들 중 하나가 돈을 벌 계획을 세우자 최종현은 그 친구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말하기를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기에 성화(성경 이야기를 다룬 그림)를 만들어 팔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듣기에도 그럴 듯 해보여 최종현은 당장 한국의 형에게 연락해 돈을 융통받았다. 그리고 성화를 잔뜩 인쇄한 후 액자에 넣어 팔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디어를 냈던 이 친구가 처음에는 그림을 팔러 다니는 듯 하더니 잘 팔리지 않자 지레 포기해버리는 게 아닌가. 최종현은 당시로서는 거금의 돈을 들였기에 자신이라도 그림을 팔러 다녀야 했다. 하지만 최종현 역시 장사에는 익숙지 않아 결국 그림을 팔지 못하고 큰 손해를 보고 말았다.
그런 최종현의 친구 중에 저녁마다 막일을 해가며 겨우 유학 생활비를 마련하는 가련한 친구가 있었다. 최종현은 다시 그 친구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신의 생활은 풍족하였으므로 충분히 도울 만한 여력은 되었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 그냥 돈을 주면 무척 자존심 상해할 것 같아 고민하였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다른 친구로부터 “그냥 네 진심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라는 조언을 받았다. 최종현은 이에 자신감을 얻고 당장 그 친구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지금 내 사정은 이러이러하므로 널 돕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그 친구는 머뭇거리더니 최종현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이에 최종현은 그날부터 자신의 생활비 일부를 떼어 매달 그 친구에게 부쳐주는 일을 하였다. 이러한 일은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된 것은 물론 최종현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얼마 후, 최종현은 위기에 빠진 형의 회사를 구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고, 선진 미국에서 배운 경영 기술을 도입하여 단번에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SK그룹을 국내 대표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업적을 이뤄내었다. 최종현은 또한 사업과 장학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였는데 그가 생전에 장학 사업에 투자한 돈은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장학퀴즈라는 당시의 인기 프로그램을 단독으로 전격 지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수백 명의 인재를 발굴하여 이들에게 유학비 전액을 지급하기도 하였다. 이때 한 개인에게 지급된 유학비 전액이 5억에 달할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지원은 회사에 피해가 가지 않게 자신이 별도로 진행한 일이어서 모두의 귀감이 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SK그룹의 총수였던 최종현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그에게 자기 집 한 채조차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SK그룹은 삼성, 현대, LG와 함께 국내 4대 대기업에 들어갈 만큼 대단한 기업이었는데도 말이다.
[8강-3] 마음속 깊은 곳의 진짜 ‘나’를 찾다
진짜 ‘나’는 ‘보이는 나’인가 ‘보이지 않는 나’인가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의 괴리
먼저, 1의 이야기에 나오는 취업준비생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그는 왜 그렇게 주변 친구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 했을까? 그에게 정말 부처님 같은 자비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기에 그의 행동에는 뭔가 미심쩍은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선 그가 베푸는 정도가 너무 과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가 한 달에 베풀기 위해 지출하는 돈은 200만 원! 그는 이 돈을 벌기 위해 무려 여덟 개의 과외를 뛰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그의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취업 준비에도 차질이 생길 것은 뻔한 이치다. 그는 지금 자신의 본업에까지 피해를 주면서 지나친 베풂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오직 친구들에게 베푸는 데에 그가 벌어들이는 수입의 전부를 쓰고 있으며 자신에게 투자하는 돈이 거의 없다. 그 증거로 그는 언제나 후줄근한 티셔츠에 낡아빠진 가방을 들고 다닌다. 실제 그에게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거의 쓰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가 마더 테레사 수녀나 예수와 같은 성자가 아니라면 이건 자선이라 하기에 이상한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도대체 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먼저, 그의 약점은 그가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친구들이 이유 없이 도움 받는 것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돈을 모아줬을 때 그는 버럭 화를 내었다. 그리고 그의 생일날 친구들이 베풀고자 했을 때마저 그가 미리 돈을 계산해버렸다. 이 정도라면 이건 ‘베풂’이 아니라 거의 ‘과시’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과시 말이다. 이것을 간파할 수 있는 대목은 그가 베푼다고 하면서도 전혀 상대방의 의중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즉, 내가 누구에게 베푼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의 처지에 내가 동화되어 일어나는 행동인데, 상대방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한다는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 고백했다. 이유인즉, 어릴 적부터 너무나 소심한 성격이었던 그가 이를 극복하고자 어느 날 일행의 돈을 계산했는데 이때부터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일행의 몫을 대신 내는 행동을 자주 하게 되었고, 이제 자신이 계산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상황에까지 왔다는 것이다. 실제 그의 표정을 보면서 뭔가 불안해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즉, 어떤 작용이 일어나면 그에 대한 반작용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남학생의 경우, 자신의 소심한 성격에 대한 반작용으로 ‘쏘는 행동’이 튀어나온 듯하다. 모임에서 든 비용을 계산하는 사람은 멋져 보이기 마련이지 않은가. 이런 과시는 자신의 소심함을 숨겨버릴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남학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간씩 자신을 포장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면 뭔가 피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 모습을 빗대 좀 과격한 표현으로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말이 나오는 이유는 누구나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보이는 나’는 외부 환경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다. 이 남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멋지게 계산하는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보이지 않는 나’는 외부 환경에서 돌아와 나 혼자가 되었을 때 느껴지는 나의 모습이다. 이 남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소심하고 불안에 떠는 자신의 모습이다. 이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는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가 같지 않다는 괴리감 가운데 오늘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안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다.
‘보이는 나’의 굴레를 벗어라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남의 눈에 더 신경을 쓰는 속성이 있다. 그러다 보면 남의 시선, 남의 생각에 초점을 맞춘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정작 남의 입장에 대해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되 그저 자신의 주관적 입장으로만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모순이다.
1의 이야기에서 남학생 역시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만, 그 해결방법을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다가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남학생이 ‘보이는 나’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2에서 최종현 회장의 경우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고국으로 돌아와 출근을 할 때는 출근 시간을 어기기 일쑤였고, 복장도 작업복 대신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주관대로 행동해 나가는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상대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기가 막히게 상대의 마음을 읽는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유학시절 어려운 친구를 돕고자 했던 마음에서도 엿볼 수 있지 않은가! 아마도 이것이 그의 성공비결이었을 것이다.
보이는 나에만 신경 쓰던 인간은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는 나를 의식하게 되는데, 이것이 보이는 나와 매우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실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이것은 내가 남을 의식하는 만큼 나를 의식하고 파고들면 알 수 있는 부분인데도,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어려워한다. 그 이유는 간단한다. 성경에 “남의 눈의 티끌은 볼 줄 알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말이 나와 있는 것처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잘 보지 못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정한 ‘나’를 발견하려면 반드시 이 모순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노교수의 진심 NOTE
1.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포장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면 뭔가 피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2. 나라는 존재에는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가 있다. ‘보이는 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질 때 나의 모습이고, ‘보이지 않는 나’는 나 혼자 있을 때 나의 모습이다.
3.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가 같지 않을 경우. 이것은 곧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이라 여기며 양심의 가책을 받기 일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괴리감 가운데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안 속에 살아간다.
4. 인간은 나보다 남의 눈에 더 신경을 쓰는 속성이 있다. 남의 시선, 남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그에 맞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5. 남의 입장에서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되 그저 자신의 주관적 입장으로만 생각해버리는 것이 인간이 가진 모순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남의 입장에서 잘 생각하지 못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6. “남의 눈의 티끌은 볼 줄 알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이는 성경에 나오는 말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잘 보지 못하는 속성을 갖고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9강-상] 청춘의 꿈과 야망을 위하여
마음속 깊은 곳의 진짜 ‘나’를 찾다
재미있는 내 마음의 숨은그림찾기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군 생활 3년 차인 G양은 요즘 혼란에 빠져 있다. 자기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졸업 후 취업에 어려움을 겪다가 마침 군인이었던 한 친척에 의해 여군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접하고 여군이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여자답지 않게 패기가 넘친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기에 자기의 적성에도 맞을 것이란 생각이었던 그녀는 여군 모집에 지원하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취업지옥이라는 말처럼 여군 모집에 합격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합격할 수가 있었다. G양은 이런 어려움을 뚫고 당당히 여군 모집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한동안의 훈련을 받고 소위로 임관된 G양은 ○○사단 인사부에 배치 받았다. 배치 받은 첫날, G양은 온통 남자들 투성이인 군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자신에게 경례하지 않는 한 병사를 붙잡아 바로 그 자리에서 원산폭격(군대 얼차려의 일종)을 시키는 모험을 감행하였다. 사실 G양은 예쁘장하고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혹시 남자 병사들이 자신을 무시할까봐 미리 기선제압에 나선 것이었다. 그러자 병사들도 G양의 기세를 알아챘는지 다음 날부터 벌벌 기기 시작했다.
G양은 여군이 귀한 군대였기에 거의 특별대우를 받는 듯했다. 소위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군인아파트를 제공받는가 하면 남자 소위들은 감히 어울리기도 힘든 중령급들이 G양과 어울리려 하였다. 그뿐 아니라 G양은 어려운 훈련에서도 가급적 제외되었다. 그것은 이 사단에 여군이 워낙 귀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처음, G양은 이런 호의를 거절하고 남자들과 같이 훈련에 참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대의 훈련이란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G양은 슬슬 꾀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대 생활 1년이 지났을 때는 가능한 한 훈련에 빠지는 게 상책이라는 걸 간파하고 되도록 훈련에서 빠지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G양의 군대생활은 만사태평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지, 공무원 신분이다 보니 생활도 보장이 되지, 게다가 주 5일 근무라 금요일 오후면 날름 집으로 달려가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다닐 수도 있었다.
이런 G양이 자신의 군대생활에 점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건 딱 3년이 되었을 무렵부터였다. G양은 어느 날 갑자기 평생 이런 생활을 반복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남들은 호강에 겨운 고민이라 생각하겠지만, G양에게 있어 이것은 심각한 고민이었다. 오로지 조직에 충성해야 하는 상명하복의 삶,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 무엇보다 지난 3년간 자신의 발전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G양으로 하여금 심각한 회의감을 느끼게 했다.
G양은 문득 자신이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군인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처음에는 국가를 위해서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았으나 지난 3년간의 생활을 통해 그것이 허울에 불과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직업의 하나로 자신의 성격에 맞다 싶어 선택한 길이었을 뿐이었다. 이제 G양은 왜 군인이 되었을까를 생각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9강-중] 청춘의 꿈과 야망을 위하여
박태준, 사명감으로 일하다
재미있는 내 마음의 숨은그림찾기
“짧은 인생 영원 조국에!”
이것은 박태준이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대한중석에 부임했을 때 붙여놓았던 표어의 내용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삶을 조국에 바치겠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기에 이런 표어를 당당히 내걸 수 있었다. 대한중석은 1960년대 당시의 대표적 국가기업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한 탓에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박태준이 대한중석을 살리라는 특명을 받고 부임한 것이었다.
박태준은 가장 먼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직원들의 정신교육 무장에 힘을 썼다. 즉,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나 하나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가 잘 되면 나라가 잘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합시다.”
이것이 박태준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것은 통했고 대한중석은 박태준이 부임한 지 불과 1년 만에 만성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박태준은 이 공로를 바탕으로 포항제철을 건립하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게 된다. 포항제철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거대한 제철소를 세우라는 명령이었는데, 이것은 마치 직장의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300원을 주면서 커피 300잔을 뽑아오라는 것과 다름없는 황당한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태준은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기에 대통령의 명령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홀로 일본과 교섭하며 제철소를 설립할 수 있는 비용을 충당했으며 포항의 허허벌판에 포항제철소를 건립해내는 영일만의 기적을 이뤄내었다.
이때 박태준이 포항제철의 직원을 뽑고자 적용했던 기준이 흥미롭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입사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이 설립되고 직원을 뽑는다고 했을 때 많은 인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을 것은 뻔한 이치다. 당시로서는 국내 최고의 기업이자 공영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인재 중에 누구를 뽑아야 할지 인사담당자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능력이 가장 뛰어난 자를 뽑고자 한다면 그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 사람의 스펙을 따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태준의 기준은 달랐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품성이 바르지 않다면 그 사람은 박태준의 기준에서는 미달이었다. 박태준은 그러한 품성 중에 사명감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즉, 회사를 단순히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박태준에게는 나 자신의 이익보다 나라를 위해 조직의 발전에 헌신할 수 있는 사명감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다. 박태준은 이런 품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얼마든지 교육과 훈련으로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한 번은 포항제철 내에서도 기술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한 직원이 다른 곳에서 월급을 더 많이 준다고 하여 옮기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간부들이 아쉬워하자 박태준은 오히려 다른 반응을 내놓았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요. 그때는 사명감이 있는 것처럼 말했는데… 그 친구 역시 돈이 우선이었던 사람이었네요. 그렇다면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제발 나가달라고 부탁해야 할 판인데 스스로 나가주었으니까요. 능력이야 얼마든지 훈련을 통해 개발할 수 있지만, 사명감은 절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박태준은 이런 사람이었다.
[9강-하] 청춘의 꿈과 야망을 위하여
마음속 깊은 곳의 진짜 ‘나’를 찾다
재미있는 내 마음의 숨은그림찾기 내 마음의 숨은그림찾기
앞서 ‘보이는 나’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것이 곧 나의 진실된 모습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나의 모습을 발견해야 진정으로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며 또 이루고자 하는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나’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첫걸음은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에는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조차 알기 힘들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1에서 G양의 경우, 처음 진로를 정할 때 자신의 성격을 바탕으로 여군의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런데 불과 3년 만에 그 생각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토록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간 직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여군 생활을 할 것인가를 두고 깊은 고민을 하는 상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렇다고 여군 생활이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특급 대우를 받으면서 편한 직장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오히려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다. 아마도 거기에는 반복되는 생활, 상명하복이라는 군 생활의 딱딱함, 모순, 그리고 자신의 욕심에 차지 않는 급여수준 등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내 마음 나도 몰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춘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배부른 소리라 원망할 수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춘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아무리 남들 보기에 우러러 보이는 직장이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아 퇴사나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변하니 도대체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마음이란 무엇일까? 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 마음은 마치 누구나 해보았을 숨은그림찾기에 비유될 수 있다. 우리는 숨은그림찾기를 할 때 그림을 대충 보아서는 절대 찾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숨어 있는 그림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전체 그림을 훑어보고 또 그 그림의 세부적인 모습까지 자세히 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때 비로소 숨은 그림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속 숨은그림찾기도 비슷하다. 전체 그림을 내 마음에 비유한다면 내가 내 마음속 숨은그림찾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바로 ‘나’인 것이다. 과연 내 마음속 숨은 그림에서 ‘나’는 어디에 숨어 있을까?
나는 학자로서 지난 32년간 이에 대하여 무수한 탐구를 해왔다. 그리고 마음속 숨은 그림에서 ‘나’는 바로 ‘자아’에 있음을 발견하였다. 여기서 ‘자아’라고 하니 더 어려운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자아’는 곧 ‘마음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나 자신’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자아에 내 생각과 감정의 중심이 들어 있고 내 행동의 중심이 들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자아를 찾지 못해 방황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자아를 제대로 찾은 사람을 ‘내가 있는 나’로 부르며 이 자아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을 ‘내가 없는 나’로 부른다.
객관적 자아와 주관적 자아
다시 박태준 회장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의 이야기에서 아마도 청춘들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사명감이니 국가를 위해 일한다느니 하는 말은 무슨 위인전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국심’이라 하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이고 요즘은 그저 개인주의, 나아가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을 떠나 우리가 박태준 회장의 모습에서 정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박태준 회장의 마음의 중심에 누구보다 단단하고 분명한 자아가 있다는 사실이다.
박태준 회장의 집안은 일제 말기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했던 재일한국인이었다. 하지만 박태준 회장은 해방 후, 귀국하여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다가 우연히 육군사관학교에서 생도를 모집하는 것을 보고 저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후 박태준 회장의 삶은 오직 국가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곧 박태준 회장의 사명이 된 것이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 그럼 ‘나’는 없고 국가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오직 국가를 위한 삶에서 내 개인의 행복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의 개인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편견일 수 있다. 왜냐하면 박태준 회장에게 있어 ‘국가 = 나’이고, 따라서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은 곧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즉,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도 되며 국가가 잘 되는 것은 곧 내가 잘 되는 것이므로 나의 행복으로 직결된다. 또 이것은 나 하나만의 행복이 아닌 국가를 이루는 일원 모두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지금의 개인주의적 시각으로 따지면 반대의 결과가 나오고 만다. 예를 들어 개인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내가 행복하려면 내가 잘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잘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경쟁상대가 도태되는 불행이 뒤따른다. 곧 나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나만의 행복을 추구할 때 우리가 부딪치는 모순이다. 이 때문에 내가 잘 되어 행복해져도 뭔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결국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나만의 시각에서 벗어난 공동체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박태준 회장의 사명의식은 결코 비난받아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쨌든 박태준 회장은 ‘중심으로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반면 G양의 경우 ‘나의 중심을 이루는 자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상태다. 이를 두고 나는 주관적 자아와 객관적 자아라는 표현을 쓴다. 먼저 주관적 자아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자신의 주관적 생각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자아이다. 반대로 객관적 자아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른 채 외부 환경에 따라 행동하는 자아이다. 박태준 회장의 경우 주관적 자아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라 할 수 있으며 G양의 경우 객관적 자아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은 주관적 자아에 따라 행동하고 싶은가, 아니면 객관적 자아에 따라 행동하고 싶은가? 실제 세상에는 객관적 자아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성공을 이뤄낸 사람들은 거의가 주관적 자아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주관적 자아가 앞에서 이야기했던 바로 ‘내가 있는 나’를 찾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객관적 자아에서 벗어나 주관적 자아를 찾으라 권유하고 싶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주관적 자아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걸 찾았을 때 여러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노교수의 진심 NOTE
1.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알기 힘들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2. 내 마음의 숨은그림찾기란 ‘나’를 찾는 것이다. 내 마음에 숨어 있는 나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전체 마음을 훑어보고 또 그 마음의 세부적인 모습까지 자세히 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때 비로소 숨은 ‘나’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3. ‘내가 있는 나’와 내가 없는 나. 자아를 제대로 찾은 사람을 ‘내가 있는 나’로 부르며 이 자아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을 ‘내가 없는 나’로 부른다.
4. 주관적 자아와 객관적 자아. 주관적 자아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자신의 주관적 생각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자아이다. 반대로 객관적 자아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른 채 외부 환경에 따라 행동하는 자아이다.
5. 대부분의 성공자들은 주관적 자아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성공을 꿈꾸는 청춘이라면 주관적 자아를 찾는 일이 시급하다.
6. 주관적 자아란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힘을 가진 ‘나’이다. 박태준 회장처럼 자신만의 생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목표로 정해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힘을 주관적 자아라 부른다.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꿈도 없다-6 (0) | 2024.07.01 |
---|---|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시간 5 (1) | 2024.07.01 |
젊은 그대 잠 깨어 오라 (1) | 2024.07.01 |
험하고 멀지언정 나의 길을 간다. (1) | 2024.07.01 |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꿈도 없다 (0) | 2024.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