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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세종에서

by 자한형 202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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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서

지난주 월요일이었다. 아내가 휴가를 냈다. 세종에 있는 막내 처제네에서 가족들이 모이기로 했다. 손자를 보기 위한 행사였다. 손자는 이제 24개월을 자랐다. 우리 내외는 9시쯤에 캐리어와 가방 등을 챙겨서 차에 싣고 차로 출발했다. 반려견 메리에 관해서는 막내아들이 와서 이틀 동안 돌보는 것으로 했다. 하남에서 세종까지의 거리는130 킬리미터의 거리에 자동차로 2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여겨졌다. 무더위가 절정인 시기였다. 중복이 얼마 전 지났고 말복을 앞두고 있는 시기였다. 아들도 휴가를 냈다. 11시쯤에 처제네에 도착했다. 국도 도로변에 복숭아를 길가에서 파는 곳이 즐비했다. 조치원 복숭아라고 했다. 광주에서 올라오시는 장인 장모님은 KTX 편으로 오송에 도착하고 막내처제가 마중을 나가 모시고 올 것이었다. 중식에는 우리 가족과 광주의 장인 장모님 처제네 가족이 참석했다. 중식 장소는 삼계탕집이었다. 한쪽에는 마침 어린이용 방이 마련되었다. 손자는 그곳의 장난감에 푹 빠졌다. 손자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처음 보게된 증손주의 앙증맞은 몸짓에 모두를 신기한 표정이었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했다. 식사를 마친 후 여자들은 근처의 마사지 숍으로 이동해서 한 시간 정도의 마사지를 받고 왔다. 손자는 아들이 낮잠을 재웠다. 나는 유튜브로 황순원 원작의 TV문학관 소나기를 시청했다. 학창시절 국어책에 등재되었던 단편소설을 극화한 것이었다. 윤초시댁의 손녀딸이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와서 생활하고 적응하는 모습이 향토색 짙게 묘사되었다. 들녘으로 놀러 나갔던 소년과 소녀는 소나기를 맞아 고뿔에 걸렸고 그것이 폐렴으로 번져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슬픈 이야기였다. 죽은 소녀가 원피스에 묻은 물을 잊지 못해 꼭 그 옷을 입혀서 장사 지내 달라고 했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시골의 학교 농촌 풍경 등이 옛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학교 운동회도 나왔고 선생님들의 모습과 학창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기도 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도 정겨웠다. 원두막에서 비를 피했고 짚단 속에서 소나기를 피하던 소녀는 처음 생활해 보는 시골생활이 마냥 즐겁고 신비롭기도 했다. 윤초시는 하나밖에 없는 혈육을 잃게 되므로써 대가 끊기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곧 저녁시간이 되어 다시 저녁 식사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은 샤브샤브집이었다. 13명의 좌석을 마련해서 화기애애한 가운데 식사를 했다. 추가적으로 권박사와 조카 희진이가 왔다. 찜기에 고기와 야채 등이 세팅된 것을 맛보았다. 다음은 셀프로 바에서 고기와 야채 등을 가져와 두 개에 용기에 넣어 익힌 후 맛을 보았다. 무한리필의 고기 등을 가져와 거의 포식 수준의 먹방이 이뤄졌다. 희진이는 순천의 송광사 낙안읍성, 조계산, 선암사 등지를 둘러보는 남도여행을 마치고 올라온 길이었다. 내일에는 중국 상해로 해외여행의 일정이 잡혔다. 막내처제는 열대어를 키우고 있었다. 6개월 정도 된 모양이었다. 베타 구피 등 여러 종류였다. 산소를 공급해주고 물도 주기적으로 갈아주는 식이었다. 신경써야할 부분이 많았다. 배설물 등을 처리하는 것도 간단치 않았다. 저녁 11시경에는 광주에서 처남네와 처형이 밤늦게 도착했다. 이젠 성원이 된 셈이었다. 케잌을 놓고 축하를 했다. 기념사진 촬영을 했고 건배를 했다. 술은 하이볼이었다. 연태고량주에 토닉워터와 레몬 등을 넣고 캭테일을 만든 것이었다. 제조는 막내처제네의 민서가 했다. 민서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였고 이제 갓 성년이 된 청년이었다. 다른 두 조카는 군복무 중에 있어 참석을 하지 못했다. 부드러운 술맛에 모두들 만족했다. 밤늦은 시간에 손자는 취침해야 했다. 손자가 시끄러운 소리에 혹시라도 깰까 봐 조심하면서 담소를 나누며 얘기꽃을 피웠다. 막내처제가 손자를 위한 편지글을 낭독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이고 희망이란 찬사와 덕담을 늘어놓았다.

아침부터 손자는 이리저리 사방팔방으로 활발히 돌아다녔다. 물고기에 모이를 주면서 물고기들의 이름을 맞추면서 흥겨워했다. 간단히 과일과 샐러드 등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다. 막내처제네는 처제와 지윤이가 상경했다. 아들네 가족도 작별을 고하고 처갓집이 있는 전주로 향했다. 남아있는 가족들이 중식을 위해 차로 이동했다. 차 두 대로 이동했다. 처남 차에 광주팀 다섯 분이 이동했고 처제네 차에 다섯 명이 승차해서 이동했다. 10분 정도 이동해서 차를 주차해 두고 5층으로 이동했다. 돈까스 무한리필 집이었다. 여러 가지 요리를 입맛대로 맛볼 수 있었다. 만두, 중식, 피자, 메밀 등 갖가지 종류가 많았다. 비빔밥도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광주식구들이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광주를 향해 출발했다. 처남도 바쁜 와중에 제주에서의 12일 일정을 마치고 세종으로 온 것이었다. 아내는 처제와 함께 눈썹문신을 하러 다녀왔다. 그동안에 나는 조카 희진이를 오송역에 데려다주고 귀가했다. 귀갓길에 주유를 하고 왔다. 이제는 세종에서 하남까지 귀가하는 것만 남았다. 평일이었고 휴가철이어서 도로의 사정은 양호했고 특별히 정체되는 구간은 거의 없었다. 아들은 며느리와 손자를 처갓집에 두고 홀로 버스로 귀가했다가 주말에 다시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러 전주로 내려갈 것이었다. 손자가 12일간의 기간동안 별 탈없이 지낸 것만으로도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 뵙는 증조 외할아버지, 증조 외할머니 등과 첫 대면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이었다. 낯선이들과의 만남에 울음부터 터뜨리는 데 천만다행으로 별문제 없이 상견을 마무리 지었던 셈이었다. 축하금도 두둑히 챙겼으니 먼 걸음을 한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아무튼 손자의 앞날이 평온하고 기쁨가득한 나날들이 되리라. 얼마나 더 이렇게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고 뜻깊은 만남을 이어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해 병고를 겪으셨던 분들도 얼마나 더 생을 영위하실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가족들의 생활근거지가 모두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렇게 만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만나고 정을 나누는 것도 코로나19를 겪은 후에는 정말 소중한 일상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가족들이 무더운 여름철을 잘 보내고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길 간구해 본다..

 

사랑하는 태서에게

비록 이제야 너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되었지만

잘 들어봐 너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우리의 마음속에 따뜻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너를 보게 되어 너무 기쁘고

우리 삶 빛나는 선물로 와줘서 고마워

너의 미소와 작은 손

발걸음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진단다

앞으로도 너가 걸어갈 길에는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랄게

너의 모든 날들이 눈부시게 빛나도록 항상 지켜보고 응원할 거란다

언제나 널 사랑하고

아끼는 이가 곁에 있음을 잊지 말기 바라며

태서가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볼 수 있기를 기대해

너의 웃음이 우리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단다

앞으로의 모든 날들이 기쁨으로 가득 바라며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존재 자체만으로도 찬란하고 아름다운 태서에게 사랑과 축복 담아 막내 이모할머니가202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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