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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당찬 Z세대를 신나게 하는 교육

by 자한형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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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Z세대를 신나게 하는 교육/전호환(동명대 총장)

지난 올림픽 기간 우리는 파리에서 분투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행복했다. 사상 최약체라고 여겼던 한국 파리올림픽 144명 선수단은 409명을 파견한 일본과 맞먹는 성과를 냈고 금메달 수에서 독일과 이탈리아를 앞섰다.

파리올림픽에서 거둔 성과는 MZ세대 덕분이다. 주목해야 할 건 Z세대의 약진이다. 한국 금메달리스트 16명 가운데 10명이 Z세대다. Z세대란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로 나이는 10대 초반에서 20대 후반이다. 나를 중시하고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릴 만큼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다.

금메달의 기쁜 소식만큼이나 이들의 어록도 무더운 여름밤을 유쾌·상쾌·통쾌하게 했다. 주목받는 건 이들의 당찬 행동이다. MZ세대 메달리스트들은 기성세대가 놀랄 정도의 당당한 소감을 밝혔다. 사격 여자 공기소총에서 금메달을 딴 반효진 선수는 나도 부족하지만 남도 별것 아니다라는 각오로 사대에 섰다고 했다.

펜싱 2관왕에 올랐던 오상욱 선수는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고 잘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사대에서 보여준 냉정함으로 세계인을 사로잡은 김예지 선수는 여자 권총에서 0점을 쏴 결선 진출에 실패한 뒤 “0점 쐈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며 특유의 시크함을 드러냈다.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는 가슴속에 담아뒀던 말을 쏟아냈다.

10년 전이었다면 그들이 이룬 성과는 이런 당찬 행동으로 반감됐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말을 받아들일 만큼 변했다. 이들의 말을 긍정했으면 우리가 할 일은 이 '당당한' 세대를 어떻게 하면 더 잘 키워낼지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벤트에 환호한 것에 불과하다.

2018BTSUN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해 세계 젊은이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또한어제의 나도 나이고, 오늘의 부족하고 실수하는 나도 나이다라는 말은 어른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정치인과 언론은 앞다투어 BTS 발언을 인용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교육에 대한 공론화는 없었다.

안세영 선수가 하고 싶은 말은 '기존 훈련 교육방식의 불만과 개선'이 아닌가. 기성세대의 미덕인 겸손과 양보는 MZ세대에겐 불편함일 수 있다. 명문대학 졸업장은 이들에겐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BTS 멤버 7명 가운데 6명은 이름도 생소한 글로벌사이버대학을 나왔다. 진학의 잣대로 본다면 BTS가 한국에서 설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진학 위주의 경쟁교육을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

젊은이들의 성취를 한 번의 칭찬으로 끝내지 말고 더 많은 미래세대가 그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우리의 과제는 신명 나서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Z세대와 알파세대(2010년 이후 출생자)를 더 많이 배출하는 교육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김유진의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싶을 정도로 연습했다는 말은 '좋아하는 것에 매진하라'는 의미다.

교육의 목적은 '국가 성장 동력'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화, 저출산 등 한국의 모든 문제가 잘못된 교육에서 비롯됐다. 교육이 한국의 성장을 막고 있다. 진학 위주 경쟁교육에 신음하는 Z세대의 멍에를 벗겨줘야 한다. '자신과의 경쟁이 즐거운 교육'K-교육의 주류가 될 때 Z세대와 알파세대의 잠재력은 폭발할 것이고 대한민국은 더 높게 날아오를 것이다.

변색되지 않는 마음/방재홍

독서의 달 9월이다. 책장 앞을 서성이며 좋아하던 책들을 둘러봤다. 국내외 명망 있는 작가들과 세상을 떠난 학자들의 책이 근엄하게 나를 바라봤다. 필요와 호기심에 의해 산 책도 있고, 아주 감사하게도 여러 곳에서 선물 받은 책도 다수다. 한눈에 보기에도 공들여 만든 두터운 양장본과 새 책들도 꽤 있다. 그러다 문득, 책장 한쪽 끝 빛바랜 고() 서적에 손길이 멈췄다. 청년 시절 읽던 책이다.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책을 꺼내 페이지를 넘겼다. 표백되고 단단한 요즘의 고급 종이와는 달리 시간의 색처럼 누렇게 변한 종이, 잉크로 새겨진 작은 글자들과 낡은 종이 냄새, 귀퉁이에 뭉툭한 연필로 써 놓은 이제는 흐려진 메모들책장을 열자 그 시절 내가 행간 사이에 숨겨놓은 생각과 감정들까지 비쳐 올라왔다. 책은 그렇게 제 몸 보다 더 큰 기억을 품고 책장을 지키고 있었다.

책의 의미는 다양하다. 지식과 지혜의 보고, 역사의 조각, 세상을 변화시킨 혁신적인 생각 등등. 한 연구에서 책을 많이 읽고 자란 아이는 가난하더라도 좋은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다는 결과를 접한 적이 있다. 책이 주는 뚜렷한 교육적 성취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몇 십 년 넘게 책을 살피다보니 어쩌면 책이란 그것이 주는 지식과 정보 너머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책의 힘이란 그것이 담고 있는 언어와 내용이 아닌 책 자체라는 그 단순한 물성에 기대고 있는 게 아닐까.

젊은 시절 읽은 책을 펼치면, 그때의 내가 글자와 글자 사이에서 투명하게 비쳐 올라온다. 그리고 그건 책 속의 글자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겹눈을 뜨고 아는 것이다. 책 속 문장을 읽던 그때의 내가 전혀 다른 문장들 위에 포개지는 것이다. 텍스트 그 자체로는 환기할 수 없는. 시간이 사는 마법의 성처럼 책은 그렇게 나의 한때를 보존해준다.

인생은 재출발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시에 운행되는 열차와 같다. 그러나 책은 다 읽은 후에도 헷갈리거나 당황스러울 때는 언제든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당신은 원한다면 몇 번이고 다시 읽어 이해 못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튀르키예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고요한 집의 한 대목이다. 이 문장을 나는 단순히 이렇게 이해했었다. 책은 인생과 달리 뒤로 가기가 가능한 매체라고. 하지만 어느새 이 문장이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인생의 시간이란 치사하게도 편도 행 열차라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한 시절 열심히 책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그 책을 통해서 과거의 나를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종이는 변색되고, 반짝이는 젊음도 저문다. 하지만 책은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치열하게 책을 읽던 그 시간을, 그때의 내 고민을, 그 젊음의 사유와 변색되기 이전의 마음을. 그래서 나는 간절히 바란다. 어제보다 젊은 오늘, 단 한 권의 책이라도 더 절실히 읽기를.

목적이 있는 배움/유호연

문득 '공부'라는 단어의 어원이 궁금했다.

네이버에 공부 어원을 검색하니 어원을 공부하여 영어 단어를 쉽게 외우는 법이 나왔다. 내가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다. 다시 구글에 ‘study(공부), etymology(어원)’를 검색하니 열정(zeal)과 공들인 적용(painstaking application)’이란 설명이 나왔다.

검색 엔진이 보여주는 검색 결과는 그 사회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표본이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내용을 기초로 검색되는 결과를 '최적화'한 것이 먼저 제공되기 때문이다.

'공부 어원'의 검색 결과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요령'의 숙달에 치우친 공부를 해왔는지 보여준다. 조금 보태어 해석하자면 '공부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는 몰라도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우기 위한 '요령'에는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내가 교육 현장에서 자주 받는 질문과 연결된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아이비리그에 갈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으면 난 이렇게 되묻는다. “왜 아이비리그에 가려고 하니?”

라는 질문 안에는 사실 내 답이 들어 있다. ‘목적이 뚜렷한 학생이 아이비리거가 된다. 이때 목적은 아이비리그에 가고 싶은 이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공들여 적용할대상이 되는 인생의 목적을 말한다.

목적이 뚜렷한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스스로 찾아낸다. 아이비리그라는 교육시스템은 그들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하나의 수단, 길이 되어줄 뿐이다. 그리고 미국의 명문이라 불리는 아이비리그 학교들도 인생의 목적을 찾은 학생들을 선발하고 싶어하며, 그런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매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한국의 대입 시스템은 어떠한가? ‘조국 사태라 불리는 입시 비리가 불거진 이후, ‘대입 공정성 강화를 위해 자기소개서 및 비교과활동이 평가 대상에서 배제됐다. 학생이 개인적으로 어떤 봉사활동을 해왔는지,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어떤 진로를 희망하는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점수로만 학생을 선발하게 됐다.

지금 한국의 대학은 더더욱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됐다. 학생들은 주체적으로 인생을 헤쳐 나갈 길을 찾는 대신, 1점이라도 점수를 올리기 위한 요령의 달인이 되고 있다. 대학은 손발이 다 잘린 채, 점수에 맞춰 들어오는 학생들을 일정한 순서까지 받아주는 문지기 역할만 하고 있다.

대학은 교과과정 내내 점수 잘 받는 법만 연습해온 학생들을 데리고, 세계를 뒤흔들 혁신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까? 인생의 목적을 잊도록 강요 받아온 학생들은 행복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최근 만난 서울대학교의 모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국으로 대학 갈지, 외국으로 갈지 고민하는 학생이 있으면 외국으로 가라고 하세요. 내가 서울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교수님이 어려운 문제를 내시면 여럿이 모여 몇 시간 토론해서 답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인터넷에서 답지부터 찾고 답에 과정을 맞추려고 합니다. 안타까워요.” 공부의 목적을 잊은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는 안타까움을 에둘러 지적하신 말씀이었다.

비단 교육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인생의 목적을 잊은 사람들이 많다. 교권 붕괴, 갑질 문화, 사회 분단 등 모두 삶의 목적을 잊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제다. 인생의 목적과 수단을 혼돈한 사건들이다.

'평균의 종말'의 저자 토드 로즈에 따르면 AI의 발전이 불러올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표준화된 인재가 설 자리는 없다. 개인성을 최대한 존중함으로써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가로서 인생의 목적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 자신만의 목적을 찾아 헤매는 학생을 응원하는 것, 그리고 인생은 혼자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작일 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

빠른 경제 성장이라는 그림자 속에 목적을 잊은 한국 사회가 목적이 이끄는 참된 선진국으로 도약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