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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조카결혼식

by 자한형 2024.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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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결혼식

새벽 530분에 기상했다. 조카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여동생의 둘째 딸 혼사였다.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우리 내외는 채비를 해서 하남의 집을 나섰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쾌청하고 맑은 가을하늘을 보여주었고 결혼식을 올리기에도 적절했다. 하늘이 축복해주는 듯했다. 오전 635분에 서울 잠실행 광역버스를 타고 갔다.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 두 구역을 가서 종합운동장역에서 9호선 급행열차를 탔다. 20분쯤 후에 노량진역에 도착해서 다시 1호선으로 환승해 영등포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부산행 KTX 823분발이었다. 대합실 매점에서 김밥 등 요깃거리를 샀다. 그리고 작은아들이 합류했다. 깔끔하게 정장차림으로 차려입었다. 셋이 좌석이 다 다른 형편이어서 각각 가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1130분 경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KTX에서 앉아서 편안하게 아침 식사를 했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가을 들녘의 정취를 느껴볼 수도 있었다. 하늘은 가을답게 맑았으나 10월 말 주말이라 다소 차가운 느낌이 드는 날씨였다. 택시승강장에서 잠시 줄을 섰다가 택시에 올랐다. 센텀시티의 한 호텔 예식장이 오늘의 예식장소였다. 동서고가도로를 타고 갔다. 예식은 오후 2시였으나 나는 혼주를 대행해야 하고 작은아들은 접수를 봐야 하는 상황이어서 일찍 도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예식장에 도착한 것은 1238분 경이었다. 식장의 분위기는 전타임의 예식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어수선했다. 신부대기실에서 신부와 신랑 사돈네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잠시 후 여동생이 한복차림으로 예쁘게 차려입고 왔다. 카메라맨의 주문이 많았다. 기념촬영을 혼주로서 하고 예식장 입구의 혼주 자리로 여동생과 함께 이동했다. 꽃을 양복주머니에 꽂고 흰 목장갑을 끼고 하객맞이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오후 두 시가 되자 예식이 시작되었다. 양가 어머님들 께서 촛불의 점화를 시작으로 예식이 진행되었다. 신랑 신부 합동 입장이 있었고 사회자의 성혼선언문 낭독이 있었다. 다음은 신랑 아버지의 덕담이 있었다. 부모에 대한 효도의 제일은 계좌이체라고 소리치자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신부는 올해 29세였고 신랑은 30세였다. 꽃다운 청춘이었다. 신부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을 서울에서 다녔고 전공은 국어교육이었다. 또한 교육 관련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신랑은 중소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영위하던 중에 소개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매제가 자리를 해야 하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오빠인 내가 신부아버지의 역을 하게 되어 아쉬움이 남았다. 젊은 두 사람이 겪어야 할 앞으로의 인생행로가 여러 난관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힘을 합해 노력하고 정성을 다한다면 이겨내지 못할 난관은 없으리라. 다음의 식순은 신부 친구의 축가 있었다. 잔잔한 음율이 흐르는 속에 차분하게 분위기를 압도했다. 다음은 신랑 신부의 양가 부모님에 대한 인사가 있었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행진으로 공식적인 예식은 마무리되었다.. 양가의 친척분들 등의 사진촬영이 있었고 다음은 피로연회장에서의 식사였다. 혼주로서 양가부모가 신랑신부와 함께 피로연장을 돌며 인사를 했다. 나는 신부 아버지 역할을 대행했다. 본래 통상적인 결혼예식에서 신부 입장에서 신부 아버지와 신부가 손을 잡고 입장을 하고 사위에게 신부를 인계하는 식의 절차가 필수적인데 신랑 신부 동시 입장으로 절차를 진행한 것이다. 우리 혼주의 식사는 별도의 한적한 내실에서 양가 가족이 같이 식사를 했다. 부친께서도 결혼식에 참석을 하셨다. 남동생이 부친을 차로 모시고 왔다. 다소 거동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자리를 빛내주셨다. 신혼부부는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다녀올 것이라고 했다. 별도 폐백 등 예전과 같은 자리는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 상견례에서 다 인사를 나눈 것으로 대신하는 셈이었다. 신혼의 재미를 듬뿍 느끼고 즐겁고 기쁨 가득한 여행이 되리라. 우리 내외와 조카내외간에는 10월 초순에 한 번 만나 식사를 한 적이 있었기에 구면이었다. 사람의 삶을 놓고 볼 때 흔히들 하는 말로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했다. 사람의 일생을 좌우할 만큼 그렇게 중차대한 부분으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간혹 잘못된 배우자의 선택으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잘못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 결혼도 필수가 선택이 되고 이혼도 다반사로 일어나는 사회 현상이 되고 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까지도 의무 지워지는 식이 아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 다른 한 배우자를 선택하고 일생을 같이 하는 결혼이란 것은 참으로 소중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한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의 일생을 책임진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그 모든 것을 포괄해서 종합적이고 충체적으로 다 보듬는 것이고 보살피고 배려하고 감사하고 헌신하는 모든 것이 들어가 있는 것일 것이다. 일과 사랑 성공과 사랑 등 여러 외적인 부분과 사랑을 결혼을 대비시키고 양립시키고 논의하고 고찰하고 심사숙고하고 최고의 선택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도 한다. 요즘 세태를 보면 결혼도 한 중요부분인데 더불어 이혼도 하나의 삶의 양태로 여겨지고 있고 그것도 삶의 일부분임을 수용하는 형국ㅇ이다. 인간의 인생살이 3대 선택의 하나로 배우자의 선택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모름지기 성공적인 삶 또는 행복한 삶의 필수적인 요소에 배우자의 선택 또는 결혼도 그 한 부분일 수 있으리라. 서로 다른 환경과 여건 속에서 살아온 다 사람이 한 방향을 같이 바라보며 백년해로한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 부분이다. 조카내외는 이제부터 제대로의 인생살이를 새롭게 시작하는 첫걸음을 뗀 셈이다. 언제나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마음을 같이해서 험난한 인생길의 동반자로서 굳건하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좋은 베필이 서로 되기를 기원한다. 우리내외는 조카부부에게 아이를 필수적으로 셋은 낳아야 한다고 권유하기도 했다. 새출발하는 초년생 부부 조카내외가 언제나 교훈적인 썩은 사과의 예화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일생토록 맹산서예의 굳은 결의를 다져서 건행하면서 평생 백년해로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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