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화 100선 (5)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차일피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년경)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북유럽의 모나리자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Johannes Vermeer, 1632-75)는 네덜란드의 바로크 시대 화가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는 1665년경에 그려졌다.
그림은 가로 39센티미터, 세로 44센티미터의 크기이다. 페르메이르의 다른 그림이 대개 그렇듯이, 비교적 작은 그림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 1)
(사진 1)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Mauritshuis)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의 하나가 되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가 이 그림을 소재로 쓴 소설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1999)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소설은 2003년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이 그림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가 주연을 맡았다.
비평가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아카데미상 3개 부문, 골든 글로브상 2개 부문,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10개 부문 후보에 지명되었다. (사진 2)
(사진 2) 영화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2003)의 스칼렛 요한슨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는 1881년 헤이그의 한 경매에서 현 시세로 4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에 팔렸다. 당시 그림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 그림은 1902년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이 그림이 널리 알려진 것은 그 후 여러 번의 해외 전시를 통해서이다.
1965-66년, 1995-96년, 2013-14년 세 차례의 미국 전시회, 2013-14년 일본 전시회, 2014년 이탈리아 전시회 등에서 이 그림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2014년 미술관 측은 향후 더 이상 이 그림의 해외 및 외부 전시를 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소설, 영화, 그리고 해외 전시의 영향으로 이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의 하나가 되었다. "모나리자" 에 흔히 비견되고 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뒤늦게 재평가된 화가
페르메이르가 살았던 17세기 중반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네덜란드의 황금기였다.
이 시기는 또한 네덜란드의 쟁쟁한 화가들이 활동하던 소위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시대' (Golden Age)이기도 하다.
엄청난 양의 작품들이 제작되었고, 그림 거래도 활발하였다. 1640년 이후 20년간 130만 장의 그림이 그려졌다고 추정되고 있다.
렘브란트(Rembrandt),
프란스 할스(Frans Hals),
얀 스텐(Jan Steen),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Gerard ter Borch),
가브리엘 메추(Gabriël Metsu) 등 잘 알려진 수많은 네덜란드 화가들이 이 시기에 속한다. (그림 1-5)
(그림 1) 렘브란트의 "니콜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Anatomy lesson of Dr. Nicolaes Tulp, 1632)
(그림 2) 프란스 할스의 "웃는 기사" (Laughing cavalier, 1624)
(그림 3) 얀 스텐의 "몸단장하는 여인" (Woman at her toilet, 1663)
(그림 4)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편지" (The letter, 1665년경)
(그림 5) 가브리엘 메추의 "편지 읽는 여인" (Woman writing a letter, 1665)
페르메이르는 현재에는 렘브란트와 비교될 만큼 뛰어난 네덜란드의 빛의 화가로 평가되곤 한다. 렘브란트의 어둡고 장중한 빛에 비해 페르메이르의 빛은 온화하고 부드럽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200년이 넘게 거의 잊혀 있었다.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프랑스 예술가들에 의해 그의 그림은 재발견되었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페르메이르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고 하였다. 그의 그림 "델프트의 풍경" (View of Delft, 1660-61)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말했다. (그림 6)
(그림 6) 델프트의 풍경 (View of Delft, 1660-61)
페르메이르는 많은 작품을 그리지 않았다. 전부 50점이 되지 않는다. 그중 34점만이 현재 남아 있다.
제작연도를 알 수 있는 그림은 3점에 불과하다.
"여자 뚜쟁이" (The procuress, 1656),
"천문학자" (The astronomer, 1668),
"지리학자" (The geographer, 1669)
의 그림이 이에 해당한다. (그림 7-9)
(그림 7) 여자 뚜쟁이 (The procuress, 1656)
(그림 8) 천문학자 (The astronomer, 1668)
(그림 9) 지리학자 (The geographer, 1669)
그는 일 년에 그림을 1-2점 정도밖에 그리지 않았다. 그림을 워낙 치밀하게 정성을 기울여 그리기 때문이다.
다른 요인으로는 공방을 차려 제자를 양성하지 않았으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여관업과 그림 거래 중개업에 많은 시간을 소요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화가 협회(길드)의 회장직을 두 번이나 맡았으며, 11명의 자녀를 돌보아야 하는 것도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적은 숫자의 그림을 그려서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수가 없다.
당시 미술 시장은 그림이 포화 상태로, 대체적으로 화가들은 가난했고, 1672년 프랑스의 네덜란드 침공 후 닥친 경제 공황으로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그는 1675년 43살로 일찍 죽었다. 죽기 전에 그가 빌린 돈 때문에, 부인은 많은 빚에 시달렸다. 빚을 갚기 위해, 부인은 남편의 그림을 한 점만 남기고는 모두 헐값에 처분했다.
마지막 남은 한 점의 그림은 "회화의 알레고리(우화)" (The allegory of painting, 1668년경)이다.
이 그림에서 등을 돌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는 페르메이르 자신이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화실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자화상이다. (그림 10)
(그림 10) 그림의 알레고리(우화) (The allegory of painting, 1668년경)
페르메이르 그림의 특징
페르메이르는 초기에 종교화와 신화에 바탕을 둔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곧 화풍을 바꾸었으며, 남아 있는 거의 모든 그림은 그와 동시대의 일상의 삶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작품은 모두 작은 크기로 그렸다. 파랑, 노랑, 회색을 주로 쓰고, 비교적 밝은 느낌을 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지만 그림에는 비싼 물감 재료를 풍부하게 썼다.
가령 군청색(ultramarine)을 내기 위해 비싼 청금석(lapis lazuli) 염료를 아낌없이 썼다.
"포도주 잔을 들고 있는 소녀" (The girl with a wine glass, 1660년경)의 그림에서 식탁보의 푸른색은 청금석 염료를 사용한 것이다. (그림 11)
(그림 11) 포도주 잔을 들고 있는 소녀 (The girl with a wine glass, 1660년경)
작품에는 대개 한 명 또는 두 명의 인물을 그렸고, 화면 왼쪽 창문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그렸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만드는 음영으로 인물의 윤곽선이 섬세하고 부드러워졌다.
작품 속 인물은 집안 내부에서 우유를 따르거나, 편지를 쓰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또는 위에 언급한 천문학자나 지질학자처럼 학자적 연구를 하고 있다. (그림 12-15)
(그림 12) 우유를 따르는 여인 (The milkmaid, 1658년경)
(그림 13) 편지를 쓰고 있는 귀부인과 하녀 (Lady writing a letter with her maid, 1671년경)
(그림 14) 음악 수업 (The music lesson, 1665년경)
역사적 사건이나, 영웅들의 서사적 무용담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대신,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삶의 모습을 그렸다. 평범함 속에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가 투영되어 있고, 사람들의 심리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말해진다. (그림 15)
(그림 15)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소녀 (Girl reading a letter at an open window, 1659년경)
페르메이르는 풍경화를 많이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 언급한 "델프트의 풍경" 과 또 다른 그림 "골목길" (The little street)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림 16)
(그림 16) 골목길 (The little street, 1658년경)
페르메이르는 개신교로 세례를 받았으나 가톨릭 여자와 결혼하였다. 부유한 여자 집안에서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결혼 조건으로 내세웠고, 이에 따라 개종하였다. 하지만 마지못해서라기보다, 본인 스스로 원해서 개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그린 "신앙의 알레고리(우화)" (The allegory of faith)에서 가톨릭에 대한 그의 믿음을 볼 수 있다 (그림 17)
(그림 17) 신앙의 알레고리(우화) (The allegory of faith)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의 그림 속의 소녀는 매혹적이다. (그림 18)
(그림 18)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년경)
동양풍(터키식)의 파란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진주 귀걸이를 한 채 뒤를 살짝 돌아보고 있다. 은빛으로 빛나는 유난히 큰 진주 귀걸이가 눈을 사로잡는다.
소녀는 입을 살짝 벌린 채 큰 눈으로 그림을 보는 사람을 또렷하게 보고 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이다. 소녀다운 호기심, 수줍음과 함께 약간의 당돌함도 느껴진다.
페르메이르가 선호하는 노랑과 파랑이 두드러지게 사용되었다. 저고리 옷깃의 흰색이 강조되었고, 맑고 투명한 진주 빛깔이 선명하게 잘 표현되었다. 빛이 진주 표면에 부딪쳐 반사되는 질감도 잘 나타나 있다.
터키식 터번은 당시 인물 그림에서 종종 사용되던 머리 장식이었다.
진주는 페르메이르가 즐겨 그렸으며, 현존하는 34점의 그림 중 21점의 그림에 보이고 있다. 특히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 (Woman with a pearl necklace, 1664년경)에서 두드러진다. (그림 19)
(그림 19)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 (Woman with a pearl necklace, 1664년경)
페르메이르의 작품 중 귀걸이를 한 여자를 그린 그림도 여러 점 있다.
"빨간 모자를 쓴 소녀" (Girl with a red hat, 1669년경),
"편지를 쓰고 있는 여인" (A lady writing a letter, 1665년경),
"젊은 여자 습작" (Study of a young woman, 1667년경)
등을 들 수 있다. (그림 20-22)
(그림 20) 빨간 모자를 쓴 소녀 (Girl with a red hat, 1669년경),
(그림 21) 편지를 쓰고 있는 여인 (A lady writing a letter, 1665년경)
(그림 22) 젊은 여자 습작 (Study of a young woman, 1667년경)
1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에서 'Vermeer' 의 외래어 표기는 현지어 발음을 우선하는 원칙에 따라 '페르메이르' (Vermeer)이다. 이전에는 영어식 발음인 '베르메르' 를 흔히 썼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얀 페르메이르(Jan Vermeer)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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