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The Arnolfini portrait / 얀 반 에이크/차일피일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1434)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1441)는 네덜란드(벨기에)의 화가이다.
그가 1434년에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The Arnolfini portrait)는 서양화에 있어 당시로서는 가장 독창적으로 인물과 배경을 실제에 가깝게 세밀하게 그린 그림으로 평가된다.
그림은 가로 60센티미터, 세로 82센티미터의 크기이다.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National Gallery)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 1)
(사진 1)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National Gallery) 미술관
얀 반 에이크, 유럽 르네상스의 초기 독창적 화가
얀 반 에이크는 현재의 벨기에 지역에서 활동한 초기 네덜란드 화가에 속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비되는 알프스 이북 유럽의 르네상스 초기의 대표적 화가이다.
그는 흔히 '유화' (oil painting)를 처음 도입한 화가로 말해진다.
당시의 화가들은 염료를 날달걀에 풀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템페라' (tempera)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 기법을 쓸 경우 물감이 너무 빨리 말라, 부드럽고 섬세한 색조를 그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반 에이크는 달걀 대신에 '기름' (oil)을 섞음으로써, 그림을 천천히, 그리고 훨씬 세밀하게 그릴 수 있었다. 그가 도입한 이 기법은 이후 대부분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면서, 서양화의 주류가 되었다.
반 에이크는 부르고뉴 공국의 군주의 총애를 받는 궁정 화가로 활동하였다. 생애 내내 명성이 높았고 많은 보수를 받아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반 에이크의 그림으로 남아 있는 것은 현재 20여 점에 불과하다. 그중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는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그림은 원근법, 인체 해부학적 지식, 단축 원근법(foreshortening) 등의 기법으로, 자연과 대상을 실물에 가깝게 그려내는 효과를 이루었다.
반 에이크는 이탈리아 화가들과 달리, 자연과 대상을 아주 세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실물을 화폭에 그대로 재현해 내려고 하였다.
그의 유화 기법은 이러한 세밀한 그림을 그리는 데 매우 유용하였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림 1)
(그림 1)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1434)
그림 속의 남자는 이탈리아 상인 조반니 아르놀피니(Giovanni Arnolfini)이다. 여자는 그의 부인 조반나 체나미(Giovanna Cenami)로 추정된다.
두 사람은 '결혼 서약식' (betrothal)을 재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자는 여자가 내민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을 위를 향해 들고 있다.
두 사람이 결혼 서약을 하고 있으며, 이 그림은 그것을 입증하는 일종의 증빙 서류라는 주장도 있다.
뒤편 벽 거울 위에 라틴어로 '얀 반 에이크가 여기 있었다 1434년'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이라고 적혀 있다. 이 글이 결혼의 증인으로서의 서명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림 2 / 상세)
(그림 2 / 상세) "얀 반 에이크가 여기 있었다 1434년" (Jan van Eyck was here 1434)
다른 한편으로는 벽의 거울에 비친 광경을 보면 그림 속의 부부 이외에 2명이 더 있다. 그중 한 명은 반 에이크로 추정된다. (그림 3 / 상세)
(그림 3 / 상세) 거울 속에 비친 광경
당시 결혼하는 데 있어 2명의 증인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이것 또한 위의 주장을 반증한다고 말한다.
거울 주위에 있는 10개의 원 속의 그림은 십자가에 끌려가 순교하는 '예수의 수난' (Passion of Christ)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의 남자와 여자는 매우 잘 차려입고 있다. 남자는 값비싼 외투를 걸치고 있고, 여자 옷은 소매와 가장자리를 비싼 털로 마무리하였다.
그림 속에 보이는 값비싼 옷, 샹들리에, 양탄자, 여자의 팔찌와 목걸이, 그리고 당시로서는 구하기 힘든 오렌지 등은 이들 부부가 부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 4 / 상세)
(그림 4 / 상세) 두 사람과 방안 풍경
두 사람 모두 겨울 복장을 하고 있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려하고 비싼 옷을 의도적으로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이미 결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자의 머리칼을 위로 묶은 것은 당시 결혼한 여자의 머리 모양이다.
여자가 임신한 것으로 흔히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유행하던 여성의 복식이 그렇고, 처녀들도 그런 모양의 옷을 입었다. (그림 5 / 상세)
(그림 5 / 상세) 여성 복장 양식
옷의 초록색은 희망을 상징하며, 특히 아이를 갖기를 기원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림 속의 개는 서로에 대한 '믿음' (loyalty)과 '진실함' (fidelity)을 상징한다. (그림 6 / 상세)
(그림 6 / 상세) 개와 신발
한편 벗겨져 놓인 남자의 신발은 그가 바깥으로 헤매고 다니지 않음을 상징하며, 부인에게 항상 충실할 것임을 의미한다.
대낮인데도 샹들리에에 켜져 있는 하나의 촛불은 항상 곁에서 지켜주는 하느님의 보호를 상징한다. (그림 7 / 상세)
(그림 7 / 상세) 켜져 있는 촛불
얀 반 에이크의 초상화
반 에이크는 초상화 화가로서 인기가 높았다. 유화 기법에 의해 섬세하게 그려내는 그의 초상화는 강렬한 색조와 선명한 이미지로 인물의 특성을 잘 표현하였다.
아래 "남자의 초상화" (Portrait of a man, 1433)는 반 에이크의 자화상으로 추정된다. (그림 8)
"남자의 초상화" (1433)
아래 그림은 "얀 더 레이우의 초상화" (Portrait of Jan de Leeuw, 1436)이다.
"얀 더 레이우의 초상화" (1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