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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갑진년

by 자한형 2025.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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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하남에 온 지 2년 차가 되었다. 어느만큼 하남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도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서울과는 다르게 낯설고 불편한 부분은 쉽게 해소되지 못했다. 연초에는 제주에 23일의 일정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금요일 늦은 시간에 제주에 가서 일요일 아침에 귀경하는 일정이었지만 우리 내외는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온전한 제주여행 일정은 토요일 하루뿐이었지만 그런대로 빠듯한 일정 중에도 알차게 시간을 보낸 셈이었다. 산방산쪽이 바라다 보이는 동백꽃 군락지는 겨울임에도 멋진 구경거리를 선사해 주었다. 제주도의 서북방향인 애월 쪽의 상월암 근처의 카페 로서는 예전 농협 자재부 시절 같이 근무했던 김 부장이 운영하는 카페여서 남국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갑진년 2월부터는 국민연금을 수령하게 되어 그나마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대학병원 치료비로 수 백만 원이 나온 부친의 병원치료비를 분담하고 보니 경제적으로 휘청거릴 정도로 어려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부친의 항암치료 등 통원치료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아내는 3월부터 교육장에서 본청 교육정책국장에 보임되어 더욱 바쁜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하남시 공공텃밭 신청은 무위로 돌아가 이제는 더 이상 텃밭을 운영하는 것으로 어렵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분양하는 텃밭도 알아보았지만 너무 거리상 멀고 경제성이 없을 것 같아 시도하다 포기하고 말았다. 갑진년 5월경에는 세종의 막내처제네에서 가족행사를 하기도 했다. 아들네 가족도 참여를 해서 뜻깊은 시간을 갖기도 했다. 모두 처음보는 우리 손자에 대해 격려해 주고 축복해 주기도 했다. 7월말경에는 작은 아들이 변리사 시험을 보기도 했다. 시험이 끝난후 우리 내외와 함께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8월 중순에는 며느리의 재취업이 있었다. 그리고 손자의 캐어는 작은 아들이 맡아서 수행했다. 손자의 어린이집 등원은 3월부터 시작되었는데 그것을 작은 아들이 맡아서 등 하원을 시키고 돌보는 일이었다. 아들네는 상일동의 아르테온 쪽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리고 파밀리에는 팔았다. 입주시기가 맞지 않아 아들네 가족이 3개월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사는 형국이 되었다. 식구가 많아 무척이나 북적거리는 가운데 불협화음 없이 잘 살았지만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기도 했다. 손자의 캐어는 11월부터 할아버지의 몫이 되었다. 8월말에는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었다. 교육감은 실형의 확정으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1015일에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보궐선거가 있었다. 진보교육감의 당선으로 인해 아내는 보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10월 말에는 부산에서 조카의 결혼식이 있었다. 내가 혼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작은 아들은 축의금의 접수를 맡아보기도 했다. 추석명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 모친에 대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모친은 8월 중순에 오랜 병고 끝에 선종했다. 장례를 치르고 삼오제, 49제를 지냈다. 부산추모공원에 어머니를 모셨다. 모친은 돌아가시기 전에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기도 했고 다시 집으로 퇴원했다가 최종적으로는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운명하고 말았다. 10월말에는 작은 아들이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11월 하순에 특허법인에 취업했다. 이제 작은 아들에게 남은 과제는 결혼만 남겨둔 셈이 되었다. 11월에는 각종 집과 관련된 계약이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서울의 아파트에 관해서는 월세에서 전세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하남 집은 전세금을 5% 인상하고 2년간 더 거주하는 것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광주집에 관해서도 3% 수준에서 전세금을 올리고 계약기간을 1년 더 연장하는 것으로 계약했다. 부친은 다행히 주민센터의 등급심사를 받았는데 요양보호사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평일에 3시간 정도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해주고 청소 빨래 식사준비 등을 처리해 주었다. 부친은 보청기를 새로 맞춰 착용하게 되었다. 모친의 작고 후3개월 뒤 휴대전화에 대한 연체금이 부과되어 이를 정리하고 휴대전화 정지도 처리하게 되었다. 막냇동생과 협의하고 정산해서 반반씩 비용을 부담했다. 건강상으로는 비뇨기과의 진료를 받기도 했고 항문외과도 방문해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건강검진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혈액검사를 받았고 꾸준히 중성지방의 수치를 낮추기 위한 일환으로 오메가 33을 복용하기도 했다. 계속적으로 병원출입은 잦아 끊임없이 처방전을 받아 약을 조제해 복용하기도 했다. 8월경부터는 임플란트 치료에 들어가 거의 6개월 정도를 치료받고 있는 형국이다. 비용부담도 만만치 않다. 임시치아로 인한 불편함도 심각할 정도여서 2-3일에 한 번씩 치아가 빠지다가 결국은 임시치아가 망가지는 사태로 인해 새롭게 임시치아를 해 넣기도 했다. 7월경에는 이종 형수의 재활병원에 병문안을 아내와 다녀오기도 했다. 모친의 납골당에 대한 방문은 동생들이 다녀온 듯했다. 지인들의 경조사도 잇따르기도 해서 경조금 부담도 만만치 않았던 한 해였던 듯했다. 박사장 등과는 한 번씩 분당 쪽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당구를 한게임씩 하기도 했다. 작은 아들이 첫월급을 타서 가족행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합격 축하연은 집에서 스테이크에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부친께서도 장인어른께서도 합격 축하금을 전해주기도 했다. 아들은 피부과에서 관리를 진행시키고 있고 라식 수술도 받았다. 자기관리에 들어간 셈이다. 부친께서는 다행히 주민센터 심사원의 심사 등급을 판정받아 요양보호사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되었다. 평일 아침 시간 세 시간 동안 요양보호사가 방문하여 각종 집안일을 해주고 가는 것으로 되었다. 그래서 평일에는 거의 보살핌을 받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휴일에는 여동생이 수고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갑진년 한 해 동안 바쁘게 지냈고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한 해였다. 하루종일 긴장의 연속이었고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시기였다. 언제나 산책을 하고자 했고 유튜브의 동영상 업로드도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가족들이 변고도 있었고 병환 유고 등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가족이 합심했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가족일에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리라. 지난 2년 간의 습작을 모아 화수은화를 출간하게 되기도 했다. 연말에는 큰 아들네 가족이 떠나고 12월 말쯤에는 작은 아들이 집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강남쪽의 오피스텔도 알아보았지만 여의칠 않아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연말에는 거의 모든 모임에 참석을 못하게 되기도 했고 해외여행 제의도 있었지만 손자 캐어로 인해 무산되기도 했다. 새해는 뜻깊게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새해 푸른 뱀의 해인 을사년에도 우리 가족 모두가 평안하고 강녕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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