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고 폭염으로 인해 모두들 힘든 계절이었다. 더욱이 코로나19의 4차대유행이 시작되어 확진자 수가 네 자리 수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50여 일에 이르러 소상공인은 물론 국민들의 삶도 어렵고 피폐해졌다. 다행히 이번 9월 6일부터 재난지원금이 지원된다고 하니 그나마 숨통이 좀 틔일 듯하다. 나는 지난 7월초부터 서울50플러스 재단에서 운영하는 인턴십에 참여하여 2개월을 보냈다. 근무는 한달에 50여 시간 남짓이지만 그나마 일거리가 있고 나갈데가 있다는 데 위안을 삼았다. 근무처는 가락시장역 근처의 가락몰 유통협의회에서 ‘가락몰 홍보전략’을 수립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홍보1팀에 소속되어 4명의 팀원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2일간의 일이지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을 하게 되면서 동인회의의 편집위원은 사퇴를 했다. 1년 6개월 정도를 편집위원으로 일했었는데 사퇴를 하면서 여러 감회에 휩싸였다. 격월에 서너차례씩 동인회 사무실을 나가 동인지의 원고 교정 편집 등을 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그만두게 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1년 6개월 동안 몰입했었던 유튜브 활동도 마무리를 지었다. 이후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분야는 블로그부분이다. 표제로 선정한 것은 ‘영혼의 정화를 이루려는 자한형’ 이다. 2개월쯤 지났는데 그 동안 200여 건의 포스팅 작업을 했다. 아직 이웃이나 구독빈도 수는 미미한 수준이다. 오랜만의 출근이라 적응에 다소 애로를 겪기도 했지만 차츰 적응되어 순조로운 인턴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주에는 팀원 세 명이 식사를 하러 갔다. 통상의 식사가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일단 2층에 있는 수입축산물 판매업소를 찾았다. 수입산 소고기를 세 팩 구입했다. 그리고 상차림을 해주는 3층에 있는 한 식당으로 입장했다. 물론 입구에서 QR코드를 찍은 후 좌정했다. 이 식당에는 고기방이 따로 되어 있었다. 가스렌지가 테이블마다 준비되어져 있었고 불판까지 세팅된 상태였다. 상차림 비용이 1인당 6천원으로 책정되었다. 기본찬으로는 상추 마늘 고추, 무쌈, 콩나물, 김치 등과 양파절임이 있었다. 기본 세팅의 찬을 추가로 필요할 경우에는 셀프로 가져다 먹는 형식이었다. 김교수님이 장을 볼 때 잠깐 수입상품 취급점에서 잔으로 파는 와인을 두 팩 사가지고 왔다. 레드 와인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화이트 와인이었다. 고기를 불판에 굽고 와인을 한잔하면서 고기를 맛보았다. 화력이 좋았다. 금새 세 팩의 고기가 동이 났다. 다음은 식사를 주문했다. 냉면(반)이란 메뉴가 있었다. 절반의 냉면으로 여겨졌다. 모두 냉면(반)을 시켜서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이색 체험을 했고 맛있는 식사를 한 셈이었다. 지난 주말에는 집사람의 전근이 있었다. 학교생활을 접고 다시 교육지원청의 업무를 하게 된 것이다. 사무실에서 짐을 빼고 다시 새로이 근무하게 될 근무처에 사물들을 옮기는 작업을 했다. 다음달부터는 집에서 가까운 교육지원청으로 옮겨 근무가 훨씬 편하게 되었다. 2년 동안의 학교생활이 많은 추억을 남겼고 일선 경험의 한 장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임식에는 많은 교직원들과 학생들의 손편지를 받기도 했다. 가슴뭉클한 느낌을 받았다. 일요일에는 조카와의 중식이 있었다. 오랜만의 외식이어서 온 가족이 참석했다. 흑석동의 한 식당이었다. 발레파킹까지 해주는 식당이었다. 젊은 취향의 파스타, 피자 등이 주 메뉴여서 나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파스타, 피자. 단호박 스프 등은 젊은 취향이었다. 식사를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오랜만의 외식도 맛있었다. 조카는 학교 앞에 오피스텔을 얻어서 생활하고 있다. 조카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유학와서 생활한 4년이 금새 훌쩍 지난 셈이었다. 홀로 와 있는 생활이어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열심히 공부한 탓에 장학금까지 받으며 공부를 했다 하여 축하를 해 주었다. 미국에서 항공훈련을 받고 있는 언니와는 인터넷으로 통화하고 교류하고 있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있냐는 물음에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답변으로 답변을 피했다. 막내동생의 둘째 딸이었다. 이제는 무더운 여름이 끝자락에 와있다.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2020도쿄 하계 올림픽도 끝났다. 우리 국민을 환호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국가대표들의 메달 소식은 코로나19로 지친 심신에 활력과 엔돌핀을 새롭게 돌게 만들어 준 듯하다. 무관중 경기가 많아 제대로 경기의 열기를 느낄 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이제 곧 추석이고 더불어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맞게 된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이어지고 있다. 요즘의 상황하에서는 가족간에도 만남을 가질 수도 없고 회합을 할 수도 없는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이다. 혹자는 그랬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다. 또 어떤 시인은 ‘내 인생에 가을이 온다면’ 이란 시를 남기기도 했다. 가을에 관한 시에 수필에 모두가 가을 노래하고 있고 찬미하고 칭송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모두들 센티멘탈해지고 십상이다. 가을엔 편지를 써야 한다고도 한다. 얼마 전 한국은행에서는 기준금리의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한국경제의 성장률을 4%로 전망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것에 비하면 그나마 올해는 성장을 한 것에 박수를 보내야 하리라. 얼마 전에는 아프카니스탄에서 우리 나라 사람을 도운 아프카니스탄인 390명이 입국했다. 진천에서 생활하고 있고 당분간 우리나라에서의 체류가 불가피할 것이다. 인도적 차원에서의 수용이었다. 정치적으로는 내년 대선을 위한 경선일정이 진행되고 있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거의 일년의 세월이 다 지난 듯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지난주에 2차 백신접종까지 맞았다. 특이증상이나 이상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집사람도 다음주에 2차접종을 할 것이다. 지난 2개월간의 인턴 생활이 무척이나 의미 있었고 색다른 체험이었으며 삶의 새로운 전기가 된 듯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소속이 있고 일할 조직의 일원으로 보람을 가질 수 있는 부분에서 자긍심도 생겼다. 결코 백해무익한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서 감사하다. 무덥고 폭염이었던 여름을 잘 이겨냈듯이 코로나19의 위기도 잘 이겨내고 극복해서 소중한 일상을 회복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