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인생은 MBN 방송에서 방영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엊그제 여섯 번째 내용이 나왔는데 문래동 편이었다. 문래동에는 골목을 넘어서는 재미가 있다. 숨은 맛집과 이색 카페를 발견했나요? 그럼 커피향보다 짙은 강철냄새도 느꼈나요? 세월이 흘러 문을 닫은 철공소 자리에 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이색 명소가 되었지만 그곳은 장인들이 구슬땀으로 더위를 식히는 뜨거운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본래 있었던 청계천에서 옮겨온 철공소들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철은 식지만 저희 열정은 식지 않았어요.” 공장의 입구 담벼락에 이런 구호를 써놓은 경우는 드물지요. 저희가 하는 게 쇳덩어리를 뜨겁게 만들면 식혀서 딱딱하게 만드는 일인데 아버지가 하실 때는 전국 일등까지 올라갔었다가 쭉 기울어졌지요. 그래서 이제 집어치울래? 아버지가 그러는 것을 저한테는 악다구니 식으로 네가 하면 100% 망한다고 하셔서 부모님이 젊으셨을 때 보여줬던 그 열정이 이렇게 남아있는데 아버지한테 그런 얘기를 안 들으려고 그것을 깨뜨리거나 식히지 않겠다는 그런 오기 같은 게 제게는 좀 있었죠. 사다리차 불러다가 아버지의 간판은 안에다 모셔놨는데 그게 원래 자리에서 빼고 나니까 너무 허전해서 차라리 그걸 갖다 쓰라고 집사람은 고집하기도 했죠. 그래서 이제 이런 간판글을 쓰기가 쉽지 않아 걸게 되었죠. 이준연(49세) 사장이 최MC에게 물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최MC 답변은 “아니 아직 안 했습니다.” 최사장이 권유한다. “식사 안 하셨으면 저희 동네에서 오래되기도 하고 참 맛있는 집이 있는데.” “아 예 간짜장 드시려면 저도 하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이 중국집에 전화를 한다. “예 간짜장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 큰 공장을 혼자 운영하시는 건 아니죠.” “예 아버님이 하실 때부터 고등학교 동창도 함께 했었고 동생도 결국은 합류를 했어요.” 그리고 제가 맡아서 한다고 할 때에 “너는 안 된다” 그러셨거든요. “너는 안 된다.” 그러셨군요.
100% 망한다고 그랬었는데 아니 아버지가 왜 그랬나면요. 안 그래도 제가 허리가 아파서 수술을 세 번이나 하고 아예 현장 일을 못하고 책상물림이 되니까 아버지가 현장 출신이다 보니까 맘에 안 들었던 거죠. 허리 다치기 전에는 쇳덩어리도 막 들고 현장에서 일을 다 했었는데 허리가 이렇게 돼서 집에서 못 나오고 집사람이 공장에 나가 경리를 본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아무 말씀 없으시다가 “그래 내가 졌다. 너희 알아서 해라” 그랬어요. 너무 험난한 과정을 겪어서 자식한테 그 고난을 물려주기 싫다는 그런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최백호 님의 ‘낭만에 대하여’를 워낙 좋아하는 팬이기도 한 아버지가 49년 3월생이예요. 지금 파킨슨병이 와가지고 같은 동년배 어르신들은 다들 건강하신데 그 모습을 뵐 때면 아버지 생각이 절로 나긴 해요. 아버지의 노력과 열정을 이어보고자 하는 아들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일하고 땀 흘리고 난 뒤 진한 짜장맛을 느끼고 싶을 땐 달콤한 감칠맛에 윤기를 더한 간짜장만한 게 없지요. 잘 먹겠습니다. 중국집도 한 30년도 넘은 것 같은데요. 양파만 있는 게 아니라 호박하고 양배추가 같이 들어있어가지고 더 맛있어요. “그러면 이렇게 혼자 식사를 하세요.” 갑자기 뭐 일이 생겼다거나 동료랑 같이 식사를 못할 때 그러면 때를 놓치니까 이게 겸사겸사 소올 푸드이기도 하고요. “이 집 짜장면 참 맛있네요.” 예 지금은 아버지한테 물어봐도 될 만큼 제가 이만큼 해놨습니다 할 정도로 자리를 잡으셨나요?“ 정부에서 R&D 자금 지원받아서 기술까지 개발했고 일본에서 한 15억 정도 드는 기계를 동생과 함께 만들기도 했어요. 동생이 만들었지요. 그렇게 해서 R&D 성공하고 우리나라에서 세 번짼가 네 번째로 항공 인증도 특허로 획득하고 항공 부품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도 보유하게 되었고 그쪽이 마진이 좋아서 수익도 좋거든요.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없는 거라 그렇죠.
잘 먹고 호의호식할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아버지가 일을 접는다 그리고 이게 없어질거라 그러니까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가 94년도에 만드셨던 저 기계를 버려야 되는데 돈이 없으니까 그 R&D 자금을 받아가지고 이제 폐기되어야 할 기계를 잘 수리해서 일 잘하는 기계 한 50대 정도를 만들어놓은 거죠. 전기세도 줄이고 더 이상 돈도 없고 이거 고칠라 그러면 고장 나고 했었는데 아버지도 이제 제가 어떻게 저걸 했지 싶은가 봐요. ”궁하면 통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계속 도전하다보니 뒤에서 도와주신 분도 있었어요. “오늘 만나보니까 뭐랄까요. 열정과 오기가 느껴집니다. 틀림없이 다 이루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뭉쳐진 열정을 잃지 마시고 예전에 저희 아버지, 어머니가 젊으셨을 때 생각해보면 그분들도 꿈에 부풀어서 움직였던 것 같은데 저희 세대는 꿈이라기보다는 지금부터 시작이고 사업도 이제 시작입니다. 사업에도 기술에도 낭만이 있어야 되는 게 맞습니다. 그 일을 열심히 하셔서 아버지 앞에 당당하게 서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곳의 소상공인들의 일터는 거칠고 뜨겁습니다. 특히 철을 다루는 공장의 작업장의 열기는 한여름 더위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잠깐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주물 공장에 들어선 최MC입니다. 쇳물을 원하는 틀에 부어주면 형태에 맞게 제품을 생산하게 되는 주물이다. 1500도가 넘는 쇳물을 부어주는 작업, 온몸으로 열기를 견뎌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알루미늄 녹인 것이예요. 작업자체가 예술인데요, 74년부터 했으니까요, 50년이 다 되어가네요. 식사는 어떻게 하십니까.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10시 30분쯤에 새참을 먹고 점심을 든든히 먹어야하죠. 힘을 쓰는 작업이니 배를 든든히 채우지 않으면 해내지 못합니다. 이 배를 보면 아시겠죠.
다음은 철공소 장인들의 휴식처인 음악다방이다. 추억거리가 남아있는 옛날식 다방이다. 전통 쌍화차를 한 잔 시켜서 맛을 본다. 문래동 철공소 거리의 쉼터이자 참새 방앗간이죠. 잠시 떠나는 감성여행이다. 예전에는 음악다방이었죠. 계란노른자가 동동 떠있는 별식이었어요. 다방의 젊은 레지가 배달을 가는데 최MC가 기꺼이 동행한다. 30년째 정밀가공사업을 하는 사업장을 찾았다. 박명동(59) 사장입니다. 제약기계 부품들을 제작한다. 88년부터 시작했다.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삼촌이 철공소를 운영했었는데 물려받게 되었다. 혼자 운영을 하십니까? 아닙니다. 아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병준아! 아들이 등장했다. 눈매가 똑 닮은 붕어빵 부자였다. 항상 마시던 보양식이 쌍화차였죠. 옛날에는 비싸서 제대로 먹어보기도 쉽지 않았죠. 식사는 시켜서 먹기도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죠. 아드님은 어떻게 아버지 일을 돕게 되었죠? 여름방학 때 잠깐 일을 도와주러 나왔다가 어떻게 하다 보니 같이 일을 하게 되었어요. 본래 요리를 전공했었는데 아버지가업을 잇게 되었어요. 이리저리 작업을 해서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의미 있고 재미있기도 한가 봐요. 가업이다 보니 야근도 하게 되고 집에 일을 갖고 가서 하는 것이 단점이긴 해요.
이제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혼밥으로 버틴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그는 나들이란 가수이다. 93년도 3인조 밴드 일기예보의 리더였다. <인형의 꿈>, <좋아 좋아> 등의 히트곡을 갖고 있다. 그는 간경화로 인해 병마와 싸워야 했다. 진안이란 시골로 내려가 3년간 투병생활을 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상경을 했었는데 다시 식도정맥류라는 병으로 복수가 타고 황달이 오는 증세였다. 결국은 간이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다행히도 장기 이식제공자를 만나 간신히 건강을 회복하고 재기할 수 있었다. 그가 찾은 곳은 민물매운탕 집이었다. 최MC는 추어탕을 시켜서 먹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예술 창작촌이다. 노동과 예술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김순미(57)님의 작업실이 있다. 문래동의 각종 사업장에 얼굴문패를 제작해 무료로 배부해주고 있다. 요즘 한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나태주 시인님의 얼굴문패도 걸려 있다. MC가 문패하나를 부탁하자 외주가 들어오면 그것은 유료라고 해서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슈퍼식당이다. 이곳에서 만난 이는 최성민이라는 프로 혼밥러였다. 200여 군데의 맛집을 섭렵한 덕후였다. 그가 먹고 있던 음식은 옥돔구이였다. 추천해주는 맛집은 뒤편에 있는 칼국수집이다. 그곳은 11시30분부터 3시까지만 영업을 하는 곳이란다. 골목의 매력이 가득한 노포가 즐비한 문래동이다. 이제 만날 혼밥 친구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이였다. 그는 문경수(45)씨로 과학 탐험가였다. 그가 선택한 음식은 닭모래집 구이였다. 그에게는 독특한 사연이 있었다. 본래의 직업은 프로그래머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탐험에 관심이 생겨 탐험가가 되었다. 군에 가기 전날에 할머니가 닭모래집 구이를 해주었는데 오래도록 그 맛을 잊지 못해 탐험을 떠나기 전에 꼭 닭모래집 구이를 먹고 가고 갔다 와서도 꼭 닭모래집구이를 먹어 원기를 보충한다고 한다. 그의 잊지 못할 추억은 서호주의 탐험기였다. 그곳에서 보았던 은하수 하늘은 정말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눈을 감으면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한 번은 그곳에 고립되어 3일 반나절을 걸어서 나오며 죽을 고비를 겪기도 했다. 14킬로그램의 감량을 체험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잊을 수 없는 것은 알래스카 원주민 이누이트 부족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마지막 지구인의 모습 같기도 했다. 향후 계획으로는 아이슬란드의 화산활동 모습을 탐험해보고 싶다고 한다. 최초 지구가 생성될 때에도 화산의 폭발로 마그마가 분출되었고 그것이 녹아서 바위가 되고 그것에 많은 무기물이 생성되었고 그 속에서 생명을 잉태시킬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지구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낭만은 지나간 모든 순간에 깃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감이 있는 혼밥인생을 사는 여러분의 인생은 낭만이다.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담아 마시는 그런 낭만을 가져야 힘든 세상 살이를 견뎌낼 수 있으리라. 항상 낭만을 잃지 말고 모두가 감성 풍부하고 멋진 삶을 구가하는 인생을 살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