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혼밥인생이 MBN 방송으로 첫 방영되었다. 요즘의 대세로 1인 가구가 필연적으로 격게 되는 혼밥에 관해 MZ세대들의 대세로 여겨지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먹방과 더불어 1인가구 600만명 시대의 새로운 트랜드로 각광을 받는 혼밥, 혼술에 관해 어떻게 홀로사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단독 MC는 원로 가수 최백호가 맡았다. 낭만가객이라고 일컬어지고 연륜과 생에 대한 통찰, 천착 그리고 무던함이 묻어나는 감성예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첫 번째 혼밥의 출연자는 J씨였다. 피아노 조율사인 그는 거의 대부분의 끼니를 혼밥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국을 무대로 피아노를 조율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50대 초반의 중년이었다. 안양 1번가의 청국장집, 설렁탕집, 자장면 집 등이 나왔다. 그의 수첩에는 전국의 맛집 리스트가 빼곡이 정리되어져 있었다. 자장면집은 3천원의 저렴한 집이었다. 중국집의 맛집인가의 선별기준은 삼선볶음밥을 먹어보면 그집을 평가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설렁탕을 먹을 때 설렁탕의 소면을 깍두기 국물에 비벼서 먹으면 제대로의 설렁탕을 맛볼 수 있다는 설명도 부언되었다. 다음으로 소개된 곳은 서울 중심부 낙원 상가에 있는 악기상이 즐비한 거리 속의 칼국수 집이었다. 을지로에는 공구상들의 집합소로 알려져 있다. 내년이면 이제 이런 공구상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란다. 먼저 MC가 혼밥을 했다. 칼국수를 맛보고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이번에는 혼밥을 하는 두 사람의 형제를 찾아갔다. MC는 배달하는 곳에 물통을 들고 배달자와 동행했다. 공구상가의 골목 한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용접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고 그곳에는 형제가 있었다. 공구상가에서 한 기술자는 마음만 먹으면 탱크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60대의 동생은 얼마전에 형님에게서 용접하는 기술을 배워 5년전에 이곳으로 독립을 해 나왔단다. 그리고 수시로 문제가 있거나 애로가 생기면 형님에게 가서 자문을 구하고 해답을 구했다. 그는 어린 시절 큰아버지 집으로 양자로 입양되어 갔었다. 중학생쯤이 되어서야 자신이 작은 어머니(숙모)의 아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어머니께서 아들에게 식사를 한끼 차려주었다. 생애 최초로 생모에게서 밥상을 온전하게 받아보는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아들과 어머니는 인근의 공원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손을 꼭 잡은 두 모자간에 60년간의 앙금이 풀어지고 모자간의 애틋한 정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큰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던 순간을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음에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다음은 을지로 노포 노가리집 호프였다. 가장 오래되고 허허벌판에 최초의 호프집으로 서울시의 문화사적 가치를 가진 집이기도 했다. 서울시에서 인증서를 주기도 했다. 얼만전의 다큐에서는 임대업자의 횡포로 인해 호프집이 사라질 위기에 관한 사연을 방영하기도 했었다. 최MC는 오랜 단골인 듯 호프집의 내력을 잘 알고 있었고 주인장과도 잘 아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인테리어 등은 옛것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바꾸지 않았으면 하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손때가 묻었고 추억이 담긴 것인만큼 오래도록 유지보존되기를 기대했다. 최가수는 자기 친구 얘기를 털어놓았다. 노가리를 아주 잘게 잘 찢어놓는 이가 있었단다. 그래서 노가리 안주를 아주 오래 먹을 수 있었고 노가리만 보면 그 친구가 떠오른다고 했다. 직장인들, 공구상 등 소상공인 들이 퇴근을 하면 하루의 피로을 풀기위해 삼삼오오 몰려오는 곳이 노포 호프집이었다. 가끔은 혼자 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친구들과 모여드는 곳이었다. 첫 사업자의 따님이 대를 이어 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MC혼자 혼술을 했다. 옆좌석에는 직장상사와 온 두 명의 부하직원이 있었다. 그는 ‘첫사랑과 부산에 가면이란’ 최가수의 노래를 얘기하기도 했다. 최가수의 찐팬임을 입증하는 면모이기도 했다. 생맥주 한 잔에 노가리를 안주로 마셨다. 처음 개설했을 때에는 생맥주 500CC가 380원이었고 100원이 노가리 한 마리의 값이었다. 500원을 가지고 오면 20원의 거스럼돈으로 돌려받을 수 있었다. 80년대 개업을 했을 초창기에는 허허벌판이었다고 했다. 고단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 생맥주 한 잔으로 허기를 때웠고 주린배를 채울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고도 했다. 주인장의 옛이야기는 끝이 없을 듯했다. 초대손님이 왔다. 한창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전직판사님이었고 현재는 법무부에서 법무심의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정모씨였고 한창 유명세를 떨쳤던 알쓸신잡의 후속프로로 방영되고 있는 알쓸법잡에서도 고정 출연자로 나와 활약을 펼치고 있고 여러 권의 저작을 가진 작가이기도 했다. 경주에서 나고 포항에서 자랐다는 얘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일만 친구란 노래를 듣고 싶어했고 아내는 최가수의 찐팬이라고 했다. 10여 년의 판사생활동안 여러 애환이 있었고 자신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고도 했다. 자신이 원해서 갔던 길이 아니었고 부모님의 원에 의해 법대에 진학을 했고 고시에 합격하는 모습을 어머니께 보여주지도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께서는 고시를 치르는 중간에 운명하셨다. 자신이 원했던 희망한 법대가 아니었기에 저항감이 있었고 이 길이 자신이 가야할 길이었는가에 관한 회의가 일어 오래동안 자신을 괴롭히기도 했었다고도 했다. 굴곡진 삶을 겪기도 했고 중학생 시절에 어머님께서 병고를 앓아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하루 30여건의 재판을 하면서 사기, 살인, 폭행 등 여러 가지 범죄에 대한 심판을 하면서 어렵고 힘들기도 했었다고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애 감정이 쌓이는 것이 있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고 남아 있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혼밥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도 했다. 돌고래처럼 튀어올랐던 감정들을 추스러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정판사는 혼밥을 자주했었고 그런 경험담과 심정을 토로하여 책을 쓰기도 했다. 어느날 서울에 오래 있다가 집에 갔는데 어머니가 외식을 하고 싶어했다. 자신은 집밥이 먹고 싶었는데 말이다. 화가 났다. 어머니는 항상 불어터진 칼국수만 먹다가 암에 걸렸다는 것이 가슴아팠다. 지금도 후회하는 것은 그때라도 어머니의 뜻을 쫓아 외식을 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었다. 호프집의 여주인은 최가수에게 ‘아씨’란 노래를 청하기도 했다. 즉석에서 손님들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최MC는 이번에는 가수로서 ‘아씨’를 구성지게 한가락 불렀다. “옛날에 이 길을 꽃가마 타고 시집 가던 날 .....” 등등 손님들이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했다. 아씨는 60년대 일일연속극으로 방영되었던 TV드라마였고 노래는 그 드라마의 주제곡이었으며 엘리지의 여왕 이미자님이 불렀던 노래였다. 최가수는 자신의 얘기도 들려주었다. 20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것을 소재로 해서 노랫말을 만들었던 것이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란 76년의 데뷔곡이었다고도 했다. 혼밥인생은 타방송사의 허영만의 백반기행 같은 프로와 같이 서민들의 삶과 애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출발하는 듯하다. 다른 형식과 모양 컨셉을 가지고 시도되는 만큼 많은 시청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장수프로 각광받는 프로로 자기매김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