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청마靑馬 유치환 柳致環
고독은 욕辱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턴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帽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目)을 에이고, 땅바닥 옥獄엔
무쇠 연자碾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 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요조ㅎ던 : 화려하던
겨울 : 희망을 잃고 얼어붙은 시대
뜨거운 노래 : 시인의 부정부패한 사회에 대한 분노, 양심, 신념
땅에 묻는다 : 진실을 담은 뜨거운 노래를 씨앗처럼 땅에 묻어 자라기를 기다린다 = 가슴 깊이 간직한다
요조턴 빛깔, 설레이던 몸짓 : 생명성
기술사 : 마술사
눈을 에이고 : 시련, 고난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 : 양심을 팔아먹은 사람들의 행위
블로거가 선택한 이 시의 해설
<작품 해설>
1908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한 유치환은 정지용의 시에 감명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31년《문예월간》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오게 된다.
그의 목소리는 저항과 분노를 외치기에 알맞은 남성적 강건함과 함께 사랑과 애상을 노래하기에 알맞은 여리고 섬세함도 갖추고 있다. 말하자면 음역이 상당히 넓은 시인이라고 하겠다. 수백 편이나 되는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유종호 교수의 말마따나 그가 ‘그릇이 큰 시인’임을 느끼게 된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시는 1960년 3월 13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던 작품이다. 그로부터 이틀 후에 저 악명 높은 3·15 부정선거가 있었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한달여 후에는 4·19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세상의 계절은 봄인데 시인은 겨울의 한기(寒氣)를 느끼고 있다. 겨울 숲으로 오니 마치 마술사의 모자 속처럼, 그렇게 요조(窈窕)하던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도 깡그리 거두어가고 앙상한 공허만이 천지에 가득하다. 이러한 공허한 세상에 홀로 서는 일은 고독하다. 그러나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에 거짓된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고통을 견디는 이의 고독은 욕되기는커녕 값진 영광이 된다.
시인은 ‘나’의 노래는 자신의 이름이 걸린 것이므로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목청을 돋워 외쳐대는 뭇 구호와 헛된 찬양이 흘러넘치는 거짓된 거리에서 시인이 아무리 진실하고 ‘뜨거운 노래’를 불러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의 노래는 땅에 묻는 한이 있더라도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시인의 굳은 의지이다.
과연 ‘의지의 시인’이라 불릴 만하지 않은가. 정치적 폭력이 난무하는 자유당 말기 살벌한 시국에 공직자의 신분에 있으면서 이런 시를 발표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깃발’ ‘바위’ 등 그의 많은 시편에 각인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고한 신념을 나는 흠모해왔다. 그런 그가 1967년에 교통사고로 숨지고 그가 살던 태평동 집은 신발가게로 바뀌었다.
그러나 정작 슬픈 것은 그가 간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드러나는 그늘진 행적. 1940년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만주로 이주한 이후에 쓴 시편들에서 묻어나는 친일의 행적은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한다. ‘광야에 와서’라는 시를 보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믿고 간 북만주가 사실은 암울한 땅임을 깨닫고 뒤늦게 후회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 무렵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수(首)’같은 빼어난 시편에서 ‘비적(匪賊)의 머리’가 ‘독립군의 머리’로 읽힐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그의 초기작으로 유명한 ‘깃발’이 일장기가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까지 있는 모양인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전야’나 ‘북두성’같이 어떻게 변명하기 어려운 작품이 그 무렵에 발표되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 정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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