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의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와 월나라간의 전쟁을 통한 피비린내나는 전쟁의 연속이 있었다. 이속에 나오는 고사성어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섶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맛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속깊은 의미는 복수를 위해서 각오를 다지고 패배와 굴욕의 통한을 잊지않고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일컫는 것이다. 드라마로도 나왔고 책으로도 나와 있다. 리선샹 역사소설로 6권으로 되어 있다.
월나라 공주 계환이 오나라로부터 월나라로 도망쳐오는 부분부터 얘기는 시작된다. 그녀는 시아버지로부터 겁탈을 당하는 수모를 겪은 후였다. 약소국이던 월나라는 오나라에게 침략의 빌미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서 결국 오나라로 공주를 돌려보낸다. 국경을 넘던 공주는 경계석에 머리를 박고 자결로 한많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오왕 합려는 월나라를 공격하고 전쟁을 벌인다. 합려는 치명적 상처를 입게되고 그 후유증으로 병사(病死)하고 만다. 합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부차는 선왕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그곳에서 자며 방앞에 사람을 세워두고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한다. 이런 독한 각오로 복수의 칼을 갈던 부차는 곧 월나라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다. 회계산으로의 도망을 쳤던 월왕 구천은 회계산의 치욕(會稽之恥)을 결코 잊지 못한다. 구천을 이를 계기로 방안 서까래에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항상 이 쓸개를 핥으며 패배와 굴욕의 쓴맛을 되씹으며 복수를 준비한다. 인고의 세월을 보낸 구천은 20년 후 다시 오나라를 공격해 오왕 부차에게 승리를 거두고 여러 나라를 정복해 제후의 반열에 오른다. 이때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모를 지닌 서시의 미인계가 등장한다. 찡그린 얼굴까지 흉내를 내게 했다는 고사까지도 유례된다. 여기에서 나온말이 효빈(效顰)이다. 당시 서시는 3년동안 도성에 머물며 노래, 춤, 화장법, 걸음걸이 등을 배우고 난 후 부차에게 헌상되었다. 본래서시는 구천의 책사였던 범려의 여인이었으나 미인계를 위해 부차에게 가게된다. 속설에서는 오나라가 멸망된 후 다시 범려에게 가게 되었다고도 한다. 오나라에는 상국으로 오자서가 있었다. 본래는 초나라 사람이었으나 아버지와 형을 잃고 오나라로 오게 된다. 손자와 더불어 합려왕을 부국강병하게 만들고 초나라를 정복하게 꼬드긴다. 이렇게 정복한 초나라에서 오자서는 왕의 무덤을 파헤쳐서 그 주검에 채찍질을 하며 그 통한을 풀게 된다. 이를 일러 굴묘편시(掘墓鞭屍)라고 한다. 사기를 썼던 사마천의 한(恨)도 이 오자 서에 못지않은 것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왕에게 바른말을 하다 궁형을 당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부모·형제를 잃은 원한에 사무친 복수의 화신이 된 오자서는 부차에게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고 자결을 강요 받게 된다. 자신의 처지가 곤궁하게 되자. 아들을 제나라로 보낸다. 친구였던 표씨에게 맡겼다. 그의 이름을 왕손으로 고치고 평민의 신분으로 오씨의 제사를 보존하게 했다. 그러자 간신 백비는 “국내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니 외부의 제후들과 사귄다.” 또는 “마음에 깊은 앙심을 품고 있다.”라는 등의 혐의를 씌워 촉루라는 검을 보내 자결을 하게 한다. 그는 유언으로 “내 눈알을 뽑아서 오나라 동문에 걸어놓고, 시신은 가래나무 아래 묻어달라. "틀림없이 월나라 군사가 쳐들어 올테니, 자기눈으로 직접 월나라 군사가 오는 것을 보고, 무덤에서 자란 가래나무로 오왕을 묻을 관을 짜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오왕 부차는 격노하여 오자서의 시신을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싸서 강에 버린다. 그러자 오나라 백성이 시신을 강에서 건져내서 오산에 묻고는 그 산 이름을 서산이라고 고쳤고 강 이름도 서강(전단 강이라고도 불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결국, 오자서의 예언대로 오나라는 월에 병합되고 부차는 죽어가면서 오자서의 조언을 백안시(白眼視)했던 것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죽은 후에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면서 시신의 눈을 가려달라고 부탁한 뒤 자결을 했다고 한다. 오나라에 오자서가 있었다면 월나라에는 명재상에 속하는 범려가 있었다.
그는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일등공신이 된다. 오나라가 멸망한뒤 친구였던 문종에게 이런말을 남긴다. “ 구천은 장경오훼(長頸烏喙)의 상이다. ” “고난은 같이 할 수 있어도 부귀는 같이할 수 없다.” “ 날랜 토끼가 죽으면 좋은 개가 삶기고, 높이 나는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이 들어가고, 적국이 파하면 謀臣(모신)이 죽는다고 했다.” 그러니 재빨리 월나라를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하고 자신은 미련없이 월나라를 떠난다. 그러나 문종은 미적거리고 남아 있게 되지만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이런 얘기들이 있는 것이 와신상담 또는 월왕구천에 관련되어 있는 대강의 줄거리이다. 여기에서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여겨지는 하나를 소개하면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이 장면은 부차가 범려에게 자기 밑에서 일을 좀 해주기를 권하는 바에 대하여 범려가 사양하면서 내뱉는 말인데 책에서 인용된 부분이다. 명철보신의 화신 범려가 부차에게 자신이 구천을 섬길 수밖에 없는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부차가 말하였다. “현명한 여인은 망가에 시집을 가지 않는다 했소. 또 현명한 신하는 도의를 모르는 군주에게 머물지 않는 법이오. 과거의 원한을 문제 삼지 않을 터이니 범려의 재주를 제세구민에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늘의 은덕을 져버리는 셈이 아니겠소? 과인의 신하가 됨이 어떠하오?”
범려의 답변이다. “부차 대왕 패장이 감히 어찌 입을 열겠습니까 마는 망국의 신하는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범려는 구천 대왕의 신하된 자로 대왕이 오나라의 죄인이 됨을 막지 못했습니다. 나라가 패망하고 국왕이 타국의 죄인이 된 것만으로 소신 범려는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둘째로 옛 성인의 말씀에 따르면 ‘주군이 심려하면 신하는 치욕을 겪고, 주군이 치욕을 겪으면 신하는 죽음을 감내해야 한다’ 고 합니다. 허나 저는 죽지도 못한 채 이리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미 말할 필요도 없이 철저히 패배한 파렴치한입니다. 이에 또다시 권력을 좇아 변절한다면 이 한 몸 팔아 배를 불리는 대역 죄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부차대왕 소인이 은혜를 모르거나 세상을 위한 노력을 아끼고자 함이 아닙니다. 범려의 이 더러운 이름이 오나라의 조정을 더럽힐까 염려될 뿐입니다!.”
세상을 사는 이치나 지혜를 이 와신상담 속에서 충분히 배울 수 있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굴욕과 모멸속에서 복수를 위해 평생을 노력했던 옛사람들의 세상을 사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 지를 뼛속 깊이 느껴보게 된다. 목표를 갖고 그것에 한발한발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고 일념으로 대업을 이루어가는 것에서 사람의 삶의 묘미와 철리를 깨닫을 수 있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