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사람은 세 가지 끝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첫째가 혀끝이고 둘째가 손끝이고 마지막이 거시기 끝이다. 혀끝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옛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만 제대로 잘하면 천 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가치 있는 말도 있으며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이라는 말도 있다. 남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만큼 무거워야 한다는 것으로 약속을 지킬 줄 알아야 하고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조선 초기 유명했던 남 이 장군이 읊은 시구 하나에서 글자 한 자를 바꿔 천하의 충신을 역적으로 만든 것을 보면 말이 얼마나 묘한가를 느끼게 해준다.
白頭山石 磨刀盡 (백두산석 마도진) 백두산 돌은 칼로 갈아 다하고
豆滿江水 飮馬無 (두만강수 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 먹여 없애네.
男兒 二十未平國(남아 이십 미평국)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랴.
그 시구는 미평국과 미득국(未得國)이었다. 유모라는 고약한 사람이 나라를 평정한다고 했는데 나라를 얻지 못하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라고 사람을 모함해서 천하의 역적으로 몰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였음을 볼 때 말 한마디가 가지는 위력을 되새겨보게 한다. 글자하나 바꿔서 엄청난 음모를 꾸몄고 그렇게 천하의 호연지기 넘치는 장군을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만들기도 한 것이었다. 일구이언(一口二言)이라는 사자성어도 있다. 한 입으로 두말한다는 의미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다른 동물과 비교되는 것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부분일 수 있는 것이 인간은 언어를 가지고 있고 서로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부분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언어가 가지는 마력이나 힘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 남자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이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이를 위하여 화장을 한다.”고도 하였다. 그 속에서 세상만사가 이루어지고 전개되어지고 하나의 사회를 이루어 가고 역사를 만들어가고 문명을 창조해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물론 이를 기록화하는 문자도 그에 덧붙여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예전의 전하는 말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도 있다. 권세에 아부하는 자가 사슴을 두고 말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윗사람을 농락하고 권세를 함부로 부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논어에서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고도 했었다. 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대거나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 생글생글 웃으며 남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치고 마음씨가 착하고 진실된 사람은 적다는 뜻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처럼 이렇게 말을 했다가 또 바꿔 다르게 말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말의 힘이라는 것도 있다. 어느 유명한 미국의 뉴욕 번화가에 거지가 앉아 있었다. 팻말에 그렇게 썼다고 한다. “나는 맹인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호응해서 적선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시인이 그렇게 팻말을 고쳐서 걸어주었다고 한다. “바야흐로 봄이 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봄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끊임없이 적선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격려의 말도 덧붙여졌다고 한다. 그렇게 적어준 이는 프랑스 시인 앙드레 볼톤이라는 이였다고 합니다. 직접적인 말보다 간접적인 말 한마디가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칭찬이라는 것도 결국의 말에 해당하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얘기는 오래전에 한창 유행했던 얘기이기도 하다. 말에 관한 말을 하다 보니 끝이 없을 듯하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혀끝에 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주 오래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꽤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자신의 분신 같은 이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술을 한잔하러 갔다. 그는 돈독한 유대관계가 있었고 충심으로 충성도가 높은 부하 직원이었다. 자신의 간(肝)까지도 다 내어줄 만한 그런 두터운 신뢰관계가 형성된 사이였다. 그런 자리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게 술이 얼큰하게 오르자 이 높은 분도 호기가 동하게 되고 외도라는 일을 벌이게 되었다. 조직생활을 하는 몸으로서 스트레스도 쌓이고 기분도 울적하다 보니 그렇게 사달이 벌어지게 되었다. 문제는 이미 일은 벌어졌고 수습하는 부분만이 남았다. 그분은 신신당부를 했다. “자네와 나만이 알고 있는 부분이니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이야.” 하고 언질을 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부하직원은 베갯머리 송사라고 이불 아래에서 마누라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고 고백을 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게 끝이 나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걸 다시 부하직원의 부인은 가장 가까운 상사부인에게 내용을 토설하게 되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특성상 그것은 곧 상사의 부인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아무리 발뺌을 하고 용서를 빌었지만 주워담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서로간에 죽이네 살리네까지 가게 되었고 사네, 못사네까지 가는 대판싸움으로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급격하게 냉랭해진 부부관계는 좀체 회복할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부하직원은 이제 상사의 눈 밖에 나게 되고 신뢰는 무너지고 아예 대면조차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고 보니 백배사죄(百拜謝罪)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한 번 엎어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믿음직했고 신뢰를 받았던 인간관계가 하루아침에 대면불가의 사이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언제든지 항상 그렇게 공든 부분이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이 세상살이의 일면일 것이다. 그는 결국 그 조직에서 바깥으로 내몰리게 되고 일의 발단이 된 부인과의 이혼까지 이르게 되었다. 종국에는 조직생활에서 종지부를 찍고 야인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조그만 불씨 하나가 눈두덩이 만큼 확대되고 그것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씨앗으로 화해버리고 말았다. 인생에서 하나의 전기로 인해 치명적인 약점으로 그 사람의 인생 자체를 곤두박질치게 하였던 것이다. 사람 사이의 신뢰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도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가 아닐까 한다. 모름지기 신뢰를 지속시키는 것만큼이나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한 것임을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공든 탑도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거시기 끝을 잘못되게 사용한 상사도 문제의 근원에 해당하지만 그런 비밀스러운 일을 무덤에까지 가지고 가야 했음에도 무의식으로 토설하고만 결과가 결국 파국적인 종말을 고하고 만 것이다. 세상사에 이런 유사한 일은 비일비재하리라.
혹자는 그렇게들 얘기한다. 어떤 일이든 그것은 당사자가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말이다. 결코, 비밀리에 묻혀 있는 일이라는 것이 애당초 없는지도 모른다. 혀끝을 조심하지 않은 이의 몰락을 보는 듯해 참 안타까웠다. 말 한마디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입이 얼마나 무거워야 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자신의 처에 대한 입단속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불찰을 저지른 한 가장의 죗값을 모질게도 받았다. 모쪼록 혀끝을 조심해서 적절한 처세를 익혀야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역린지화(逆鱗之禍)라는 말도 있다. 용의 비늘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고 남의 약점을 드러내게 하는 것은 언제나 화를 자초한다는 의미이다. 말이라는 것이 화의 근원이고 뿌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혀끝을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도 부족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