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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인간(이응준)

수필인간11

by 자한형 2021.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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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인간11 이응준

타투가 있는 그 사내는 왜 서쪽으로 갔는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가 있다. 1989, 한국영화계와는 아무 관련 없이 하늘에서 혼자 뚝, 떨어졌던 영화. 조용한 천둥벼락 같은 영화. 감독을 비롯한 대부분의 것들이 수수께끼였던 영화. 그 이후로도 비밀의 안개가 채 다 걷히지 않고 있는 영화. 어쩌면 오히려 더 깊은 질문들 속으로 멀어져가고 있는 영화. 한국대중의 불면증 치료에 큰 도움이 되었을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렇듯 내용보다는 제목이 세상을 지배하는 경우가 있다. 제대로 읽은 이가 몇이 안 돼도, 혁명이라기보다는, 혁명에 관한 영원한 분란을 일으키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처럼. ‘인간이 뭔지도 모르면서 인간적인 것'들을 우기고 따져가며 서로 싸우고 살육하는 인간들처럼.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저 죽은 사과나무가 에덴동산 언덕 위에 서 있는 까닭은? 뭐 그런 거지, 대충 알아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그래도 별일 없는 것은. 그래도 별일 없다고 생각해서 무서운 일은. 그런 일들은. 우리는 누군가가 설명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도 설명해줄 수 없는 것들에 매혹되곤 한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멍해진다. 16절지 안에는 나 말고 두 사람이 더 있는데 둘 다 죽은 사람이다. ‘사망이라는 글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만날 수 없음.’을 뜻한다. ‘완전한 이별인 거지. 그런데, 어머니에게는 생몰연월일은 물론이고 사망이라는 단어조차 기재되어 있지를 않다. 그저 이름만 덩그러니 있다. 주민센터 공무원에게 까닭을 물으니, 돌아가신지 너무 오래 된 이의 경우 서류에 그렇게 나온다고 한다. 이게 보통사람의 죽음 뒤 존재다. 여기서 얼마큼의 시간이 더 흐르면 가족관계증명서 따위를 뽑아볼 아들조차 세상에서 없어질 것이다.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니지만, 좋은 일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한 번뿐인 인생,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이, 순간순간을 살다가 죽음 뒤 완전 소멸되면 그뿐인 것이다. 이의를 제기 못하는 깨끗한 진실. 뭐가 남아야 고민이 있지. 고민은 허상이다. 허무주의자만 방황할 뿐, 허무주의 자체는 해탈이다.

아직 생몰연월일이 남아있는 내 아버지는 괴짜라면 괴짜였다. 예술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그였지만 그의 언행들을 돌이켜보면 그게 그의 숨겨진 예술성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아버지의 유언은 다음 세 가지였다.

첫째, 보증을 서지 마라.

둘째, 의형제를 맺지 마라.

셋째, 문신을 새기지 마라.

첫째와 둘째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부탁이다. 타인과 경제적인 책임을 나누지 말 것은 물론이요 인간을 과신하지도 과신 받지도 말라는 뜻이다. 예수도 비슷한 말을 했다. “또한 옛사람에게 말한바 헛된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검고 희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요컨대, 판단은 하되 맹세는 하지 말라는 말씀. 이런다고 내가 내 죽은 아버지를 예수 급으로 추켜세우려는 것일 리는 없다. 함께한 이승의 시간 동안 우리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가 판단하기에 아들은 괴짜 중에서도 쓸모없는 괴짜였다. 그는 내가 문인인 것을 싫어했고, 내가 영화를 하는 것을 더 싫어했고, 내가 교수를 그만 둔 것을 가장 싫어했다. 나는 아무것도 맹세해주지 않았다.

아무튼. 세 번째는 오로지 나 자신에 관한 항목이다. 내 몸뚱이에 꽃을 그리건 악어를 그리건, 그건 내가 나에게 하는 짓이니까. 내가 문신을 하고 다닌다고 해서 날 조직폭력배로 볼 만큼 심약하고 상상력이 지나친 사람은 없을 테니까. 지난해 가을이던가, 영화평론가 김봉석이 타투(tattoo)를 하고 나타났다. 늙어서 주책도 주책이려니와, 우리가 어느 횟집 접시에서나 흔히 보게 되는 그 파도무늬를 새겨 넣은 것이다, 왼편 어깨에.

왜 그런 걸 그려 넣었어?”

좋으니까.”

? 횟집 메뉴판을 새겨 넣지 그랬냐. 차마 이런 말을 해주진 못했지만, 나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큰 교만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싸악하고 스치는 거였다.

나도 문신을 해볼까?

안 될 게 뭐란 말인가. 사이가 좋지도 않았던 그의 유언을 내가 왜 따라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첫 번 째와 두 번째 유언은 잘 지켰고 앞으로도 그럴 텐데. 이만하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만약 어디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한들 날 비난할 순 없는 거 아닌가 말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편지들을 많이 주고받았고 또 그 내용이 중요한 기록으로 남겨진 대표적인 인물로는 프란츠 카프카와 칼 마르크스가 있다. 카프카의 모든 작품들 가운데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가장 좋아한다는 뭔가 척, 하기 좋아하는 어떤 재수 없는 위인을 술자리에서 본 적이 있다. 카프카는 평생 아버지의 존재적 무게와 그늘에 짓눌렸고 시달렸더랬다. 그의 소설은 거의 예외 없이 그의 그러한 세계관이 반영된 결과물들이다. 181851어린이날에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크스는 김나지움에서 5년간 공부한 뒤 183510월 본대학에 입학했다. 마르크스의 부친은 아들이 변호사가 되어 가업을 잇기를 바랐다. 근데 웬걸, 마르크스가 심취했던 것은 법학이 아니라 문학, 특히 시창작이었다. 마르크스는 하이네와도 친분이 있었고, 자본론에는 셰익스피어, 괴테, 발자크 등의 문학작품 속 등장인물과 표현 들이 그대로 혹은 패러디 되어 등장한다. 청년 마르크스가 쓴 시들은 그가 아버지와 나누었던 편지들처럼 잘 보존되어 요즘 우리들도 책으로 읽어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문학에 소질이 없었다. 만약 그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처럼 시를 잘 썼더라면 세계사는 지금의 것과는 엄청나게 달랐을 것이다. 이런 마르크스는 모범생이 아니었고, 온갖 탈선들 끝에 사브르 결투까지 벌여 왼쪽 눈 위를 다치기도 했다. 마르크스 부자지간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더 사이가 안 좋아졌다. “마치 경계표처럼, 한 시기의 종료를 알리면서도 동시에 어떤 새로운 방향을 분명하게 가리키는 인생의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라는 18371110일자 마르크스의 편지에 아버지 하인리히의 답장은 이러했다.

너는 부모를 속상하게만 하고 기쁘게 해주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 놈이다.”

나도 아버지에게 이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니지, 더 심한, 천만 배는 더 심한 소리였지. 하지만 나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시에 소질이 있었고, 그래서 나 때문에 레닌이나 스탈린이나 마오쩌뚱이 나타나지도 않았고, 소련이 생기거나 공산주의가 전 세계의 절반 이상을 점령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위대한 시인인 것이다.

마르크스와 나의 차이는 또 있다. 아들을 욕하는 저 편지를 쓰고 나서 반년 후 트리어에서 마르크스의 아버지는 사망했고, 베를린에 있던 마르크스는 장례식에 참석하질 않았다. 둘은 완전한 이별이전에 화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 나는 말년에 병원에 누워 고생하던 아버지를 제법 열심히 돌보았고, 어느 밤 어느 순간, 아버지는 내게 나를 쓸모없는 괴짜로 보았던 것을 조용히 사과했다. 나는 그게 괜히 싫었고, 괜히 슬펐다. 그리고 아버지는 얼마 뒤 나와 완전히 이별했다.

장례식장에서 상주로 서 있으면서, 나는 아버지의 지인들 가운데 사회적으로 약자인 친구와 후배 들이 많이 찾아와 엉엉 우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들이 자신들을 지켜주고 격려해주고 위로하던 자신들의 대장을 잃었다는 것을, 자신들의 의형제가 죽어 애통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사랑하며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의형제를 맺지 않아도 누군가의 의형제가 되고, 굳이 보증을 서지 않아도 누군가의 증명이 된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의 놀라운 문신을 본 뒤 한참이 지났어도 아직까지 나는 문신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했던 화해가 마음에 걸려서만은 아니다. 지울 수 없는 것은 몸에 일부러 새기지 마라. 문신을 하건 말건 간에, 모든 인간들은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얼굴부터 발끝까지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문신이 새겨진다. 아직 노인이 된 것은 아닌데도, 이미 내 몸에는 너무 많은 보이지 않는 문신들이,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문신들이 새겨져 있다. 나는 그 문양들의 의미를 모르고, 전부 무의미한 그저 흉터인 것만 같아 괴롭다. 어쩌면 이게 삶인지도 모르지. 이게 내가 문신을 하지 않는 이유다. 인생이 뭐냐고? 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해주는 것, 그게 인생 아닐까? 사랑하는 너에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말이다. 파도가 많은 인생에서 제 왼편 어깨에 횟집 접시의 파도무늬를 그려 넣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마치 경계표처럼, 한 시기의 종료를 알리면서도 동시에 어떤 새로운 방향을 분명하게 가리키는 인생의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타투가 있는 그 남자는 왜 서쪽으로 갔는가?”

삶은 아무도 설명해줄 수 없는 매혹 같은 영화다. 영화를 찍다보면, 아버지와 아들은 사이가 안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망완전한 이별이라면, ‘사랑이라는 말에도 다른 뜻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워하고 있음. 많이 미안하고, 이미 다 용서했음.’ 이러한 이것은 옳은 말이고, 나는 아무것도 맹세하지 않아 행복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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