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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청령포와 낙산사 등

by 자한형 202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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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 2일차였다. 아침에 일어나 바깥으로 나왔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그냥 그칠 비가 아니었다. 비는 관광여행에 치명적이었다. 일단 아침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향한 곳은 영월 한반도 지형이었다. 주차장에 버스를 주차해 두고 우산을 쓰고 올라갔다. 비포장 흙탕길이어서 바지 신발 등은 흙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험로를 걸어서 전망 좋은 곳까지 올라가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애국가 제창때 영상으로 나오는 모습이었는데 그것이 실제 눈앞에 펼쳐졌다. 흐린 날씨였음에도 그런대로 시계도 양호한 편이었다. 다음목적지는 청령포였다. 육지 속의 섬이란 말이 실감이 났다. 예전에는 밧줄을 잡고 끌어서 배를 이동시켜서 이동을 했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그래도 배를 탔다. 타자마자 내려야할 정도로 짧은 거리였다. 어소는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조그맣다. 어소에는 단종의 모습을 한 모형이 좌정해 있었다. 어소를 나와 소나무길을 걸어 조금 갔더니 관음송이 나왔다. 600여전 단종의 모습을 지켜봤다고 해서 관()이고 그의 한맺힌 울음을 들었다고 해서 음()이었다. 가파른 길을 올라갔더니 그가 바라보았을 북쪽 한양이 어스럼프레하게 느껴졌다. 돌탑이 쌓아져 있었다. 이름이 망향탑이라고 한다. 단종이 하나씩 돌을 쌓아 만든 탑이다. 또 그 길을 따라서 내려왔더니 조그만 전망대가 나타났다. 그곳을 일러서 노산대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내려오니 금표비라고 하는 비석이 있었다. 이곳은 임금이 기거하는 곳이니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12살에 임금에 올랐다가 17살에 사약을 받고 이 세상을 하직한 비운의 왕이었다. 그의 묘지는 장릉이라는 이름으로 영월 인근에 위치해 있다. 일제 강점기 이광수라는 작가는 단종애사란 소설을 써서 동아일보에 연재를 했고 또다른 작가 김동인은 대수양이란 소설로 그 시대상을 묘사했었다. 한쪽에서는 사육신의 충절을 얘기했었고 또다른 쪽에서는 역사를 흐르는 대세론을 내세워 왕권의 강화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도 한다. 집현전 학자 신숙주는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그런 남편이 불만족 스러워 목을 맨 그의 부인에 관한 소설도 있었다. 그런 변덕에 비유되어 숙주나물이 탄생하기도 했다. 단종에게 사약을 가지고 내려간 왕방연은 차마 사약을 건넬 수가 없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 가 임무를 마치고 지었다는 시조 한 수가 전해온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내 안은 내 마음이고 예놋다는 가는구나의 옛말이다. 청령포의 관광을 마치고 다음으로 들른 곳은 청학동이라는 음식점이었다. 생선구이 전문점이었고 돌솥밥이 나왔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거의 비가 그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향한 곳은 양양의 휴휴암이었다. 중간에 평창 휴게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휴휴암은 동해안 바닷가의 조용한 암자였다. 바다를 등지고 관음보살상이 입상으로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온 가족이 모여 단체 기념촬영을 했다.

휴휴암의 관광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는 해안가의 횟집이었다. 원산횟집이라는 곳이었는데 지척에 유명한 설악횟집도 있었다. 맛있는 회에 좋은 안주는 술을 불렀다. 저녁좌석을 마치고 버스를 타 고 낙산사 인근의 펜션 숙소로 이동했다. 버스로 이동하는 중간에는 가족들의 노래자랑 대결이 벌어졌다. 노래를 부르고 노래점수가 95점 이하면 벌금을 내고 그 이상인 경우에는 벌금이 면제되었다. 이렇게 모은 상금은 관광지에서의 정보를 바탕으로 퀴즈를 내어 맞춘 학생들에게 상금으로 사용되었다. 잠깐동안 여장을 풀고 다시 전가족이 집결해서 본격적인 회혼식 행사가 시작되었다. 사회는 미처제가 했다. 케이크의 절단식도 있었고 장인어른의 일장연설도 있었다. 자손들의 선물증정이 있었고 손자, 손녀들은 건재순으로 각자 준비한 축하편지를 읽었다.

 

둘째 딸의 편지에 적힌 내용은 이랬다.

아버지, 엄마. 두 분이 만나서 어려움을 다 이겨내시고 우리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곁에 오래 같이 계세요. 둘째 딸 주소연 올림.”

 

손자, 손녀의 손편지를 소개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결혼 60주년 회혼식 축하드려요. 추가로 할머지 8순도 축하드려요. 두 분이 건강하시고 행복하신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엄마, 삼촌, 이모들 낳아주시고 저 어렸을 때 고생해서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아직 많이 부족한 손자, 손녀지만 앞으로 더 노력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항상 기쁨을 드리는 손자, 손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께요. 다시한번 결혼 60주년 축하드리고 언제나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사랑해요. 손자. 손녀 000올림

 

번외행사로 장모님의 춤사위도 이어졌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에 맞춘 춤동작이었다. 아주 간단한 동작이어서 아들과 딸네들이 같이 춤을 췄다. 2일차 여행이 마무리 되었다. 숙소는 낙산사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문서방은 일찍 일어나 미리 낙산사를 둘러보고 있었다. 나도 일찍 기상해서 산책을 한바퀴 하고 왔음에도 아직 다른 식구들은 기침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후 한 두사람씩 일어나기 시작해 일상이 시작되었다. 식사는 김밥을 그냥 맨밥으로 말아 다른 반찬과 식사를 했다. 통상 얘기되는 충무김밥 형식이었다. 예고된 시간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탑승했고 일행 모두는 박수로 맞이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부르짖었다. 10여분 차로 이동해서 낙산사 관광이 시작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너무나 유명한 사찰이었다.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날 목적으로 27일간 기도를 했는데 만날 수 없자 바다에 빠져 죽으려 했다. 그러자 굴속에서 관음보살이 나와 뒷산길로 올라가면 두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세워진 곳이 원통보전의 자리라 한다. 의상대, 홍련암 등이 유명하다. 2005년 산불로 인해 낙산사의 일부가 화마에 휩쌓이기도 했는데 현재는 그나마 재건되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관음보살상 등지에서 기념촬영을 했고 주차장 앞 건어물 점에서는 건어물을 구입하기도 했다. 다음 목적지는 춘천의 닭갈비집이었다. 그곳에서 중식을 하고 일부 가족은 서울로 향하게 되고 나머지 일행은 버스로 이동해서 대전을 거쳐 최종 목적지 광주로 향한다. 고서방 부부와 희진양이 서울행 ITX에 동행했다. 고서방 부부의 표는 입석표여서 대책마련이 필요했다. 한시간 남짓 소요되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이로써 23일 간의 장인어른 회혼식 가족여행 행사가 마무리 되었다. 항상 건강하시고 활기찬 노년을 보내시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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