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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수안보와 탄금대

by 자한형 202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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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10일이었다. 부친의 생신을 위해 수안보 수련원에 방을 잡았다. 다행히 원장이 지인이어서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용케도 예약이 되었다. 다음날에는 담안회 회합이 계획되어져 있었다. 하루일찍 부모님과 우리부부가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전격적으로 수안보에서의 시간이 맞춰진 셈이다. 급박스럽게 수안보 수련원이 예약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전격적으로 오시기로 했고 다행스러웠던 부분은 버스를 타고 오시지 않아도 되었다. 막내동생이 하필 그 부근의 대학에서 주최하는 학회에 참석을 하는 일이 있었다. 여차하면 여동생에게 부탁을 해서 버스를 태워보내도록 하는 방법도 고민을 했는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문제는 너무 일찍 도착하시고 서너시간을 보내야 하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빨리 출발을 해도 가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3시 또는 4시정도에 도착이 되는데 부모님은 11시에 도착을 하는 것이다. 본래의 복안은 그랬다. 집사람은 어차피 늦으니 버스를 타고 수안보로 오는 것으로 하고 11시쯤에 맞춰 내가 수안보에 도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집사람은 하필 그날이 인사발령이 예고된 날이었다. 10시쯤에 전화를 집사람에게 했다. 다행히 반휴는 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오후 한시에 여의도역 6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시 12시쯤 전화를 했더니 오후 한시까지 교육청으로 오라는 얘기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교육청으로 가서 집사람을 태우고 수안보로 출발했다. 동생과 통화를 통해 들은 내용은 농협수련원 옆에 있는 호텔 온천에 모셔다 드리고 학회참석을 위해 간다는 것이다. 수련원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오후 2시 내지 3시라고 얘기를 해 두었다. 온천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고 로비에서 기다리시다 시간이 되면 숙소에서 기다리시라고 했다. 차량을 타고 가던 중에 인사발령 발표가 있었다. 성동 광진 지역지원청 과장으로 전보된 것이었다. 거의 수안보를 30분 소요되는 지점에서 휴게소에 들렀다. 주유를 하고 두어시간 운전한 뒤 휴식시간을 가졌다. 수안보에 들어와 슈퍼에 들러 사과와 포도를 샀다. 복숭아를 사려 했는데 아예 동이 났는지 없었다. 수련원에 도착했더니 이미 부모님은 숙소에서 쉬고 계셨다. 인사를 드리고 본격적인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밥을 지었다. 그리고 가지고 온 등심불고기를 구웠다. 점심식사가 변변치 않았든지 부모님께서 저녁을 맛게 드셨다. 반주는 가지고 온 인삼주로 드셨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와 과일로 후식을 드셨다. 나는 곧바로 작은 방에 들어가 골아떨어졌다. 집사람은 부모님과 얘기를 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에어컨은 잘 작동이 되었고 제대로 폭염을 피해서 피서를 하는 셈이었다.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었던 탓에 새벽녘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동이 틀려면 두시간은 더 있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신문을 뒤적이다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TV를 보면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부모님께서도 일찍 일어나셔서 채비를 하셨다. 어제 저녁에도 산책을 나가신다고 해서 수련원을 나섰다가 맞은 편 산에 오르던 중에 비를 만나 황급히 되돌아 오셨다. 어제 미리 준비해 두었던 올갱이 해장국을 끓여 아침식사를 했다. 9시경에 퇴실을 했다. 직원이 선물이라면서 이것저것을 챙겨주어 황송했다. VIP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첫 행선지로 잡은 곳은 월악나루였다. 유람선을 타고 충주호를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전화를 해보고 다시 오라는 얘기였다. 정해진 배 출항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형편에 따라 승객이 어느정도 되었다고 여겨졌을 때 간다는 식이다. 다음 목적지로 정한 곳은 충주의 탄금대였다. 신라시대 악사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는 곳이다. 충주 칠금동 대문산 절벽에 위치한 명승지다. 신립장군이 임진왜란때 외적을 맞아 결사항전을 하던 곳이기도 했다. 8000명이 전사한 곳이기도 했다. 절벽아래로는 남한강이 흘렀다. 탄금정이라는 정자도 세워져 있었다. 충혼탑도 있었고 신립장군이 칼을 식히기 위해 열두번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는 열두대도 있었다. 입구에 차를 주차해 두고 산책길을 걸어서 탄금정까지 갔다. 너무 무더운 날씨여서 돌아다니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집사람에게 차를 끌고 오라고 해서 차를 타고 순람을 했다. 유람선 운항정보를 파악하고는 다시 유람선을 타러갔다. 1050분경에 출항한다더니 10분이 더 지연이 되어 11시에 출항이 되었다. 한사람당 배삯도 13천원이었다. 50분가량 충주호를 한바퀴 돌아오는 유람선이었다. 처음으로 본 것은 바다에 세워진 태양광이었다. 국내 최초라 했다. 부유하는 식으로 떠있는 발전시설이었다. 까치등 조류가 앉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가 되어져 있었고 물고기에게도 그늘을 제공하는 등 순기능이 있었다. 호숫가 오른쪽에 악어바위가 있다는 설명을 선장이 해 주었다. 왼편으로 월악산을 볼 수 있었고 돌아온 선착장 인근에는 모터보터를 타는 곳도 있었다. 아직까지 호수 관광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는 듯 여겨졌다. 유람선을 타고서는 다음 행선지는 점심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계곡을 따라서 이동을 하다보니 여기저기에 야영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송계계곡으로 일정지역은 출입금지구역으로 묶여있기도 했다. 우리가 식사할 곳은 송림이란 식당으로 송어회를 취급하는 곳이었다. 계곡에 바로 인접해 있어 인기가 높았다. 텐트를 쳐놓고 평상을 마련해 놓아 풍광도 그저그만이었다. 송어회를 시켜서 네식구가 달고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집사람과 어머님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도란도란 정담을 나눴다. 수안보 탄금대 관광을 마친 후 다음 행선지는 담안회의 저녁식사 자리였다. 두시간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다. 고속도로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편안하게 부모님을 모셨다. 일년에 한두차례 모이는 친목 가족계였다. 불참자가 많아 분위기가 썰렁했다. 테이블 세곳에서 불판을 놓고 삼결살과 막창을 구워서 약주를 한잔했다. 차 운전 때문에 음주는 집사람이 했다. 모두들 자고 가라고 종용을 했지만 막무가내로 가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관철시켰다. 부모님은 해운대 형님께서 모시기로 했다. 귀경길은 순조로웠다. 워낙 늦은 시간이어서 차량의 흐름은 막힘이 없었다. 거의 자정을 넘기고서야 도착이 되었다. 수안보와 탄금대의 12일이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부모님과 담안회 회원님들은 청암사와 수도암으로 산책을 갔고 용추폭포를 둘러보고 기념촬영을 했다. 폭포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추어탕집에서 점심을 먹고 각자 해산하는 방식으로 산회되었다. 후일담으로 모친께서는 23일간의 일정이 너무 과도했는지 몸살을 앓으셨다. 이제 연로하셔서 여행을 다니시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더운 여름철 매미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있지만 이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되었다. 여름도 끝나가고 있는 듯하다.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오고 있다. 보릿고개라는 노래가사에는 물한바가지로 배채우시던 시절을 어찌 사셨소라는 가사가 있다. 참으로 아련하게 느껴지는 옛추억이 어린 말이다. 이제 우리후손들은 상상도 못할 가난한 시절의 얘기가 추억으로 회자될 뿐이다. 풍족해진 만큼 마음도 풍성해지고 여유워지는 삶을 살아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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