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힘들었고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폭염에 열대야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는 거의 평년 기온을 되찾아 가고 있는 요즘이다. 지천으로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여름의 진수를 느껴보고 있는 셈이다. 말복이 지나고 처서가 지나면 여름도 이제 그 기세가 좀 꺽어지리라 기대한다. 지난 7월 중순에 대부도 학균네에서 신녹사의 모임행사가 있었다. 회장님이 올린 최초 알림내용부터 보자. 학균네. 며느리 맞이 신녹사 모임 행사 준비하시느라 더운 날씨에 고생이 아주 많으시지요? 7월 14일 토요일입니다. 신원동 동부아파트 앞에서 오후 두시에 출발하면 3시 또는 4시쯤 도착하겠지요. 참석인원이 예상외로 적으니 간단하게 비싸고 맛있는 것으로 준비하세요. 대충 파악해보니 부부동반 참석 여섯쌍(범수, 영근, 훈민, 용성, 민경, 영재)입니다. 1명 참석(승환, 수미)입니다. 불참은 기택이네, 재민네입니다. 학균네. 우리 신녹사를 위해 만나는 그 시간까지 고생 많이 하세요. 지난 5월에 학균의 결혼식이 있은 후 2개월만이었다. 오후 두시에 신원동 동부아파트 앞에서 만났다. 워낙 더운날씨여서 모두들 냉방이 잘 되어 있는 우리은행 365코너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멀리서 온 민경네가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왔다. 사모님들은 고문님 차에 탔고 남자회원들은 총무님 차에 탔다. 남자7명, 여자 5명이었다. 신림동 도림천변길을 따라 가서 강남순환을 타려고 했는데 입구가 꽉막혀 있었다. 관악산 주차장쪽으로 가려는 등산객들의 차 때문에 생긴 정체였다. 차량이 강남순환로에 들어서자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네비게이션은 민경아빠가 코치를 했다. 이리저리 코치를 받아가며 가는 길에 정체구간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길은 좀 멀었고 통행료를 많이 내야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거의 오후 4시쯤이었다. 학균네가 이렇게 대부도 전원주택으로 내려온지 1년 정도가 지났다. 서울 강서쪽에 살다가 이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내려와서 정착해가는 중이었다. 햇살이 따가운 여름날씨였고 해가 아직 중천에 남아있었다. 조금 후에 영재네와 사모님을 태우고 출발했던 고문님 차가 도착했다. 먼저 집구경부터 했다. 2층으로 지어졌고 거실도 넓었고 화장실도 3개였다. 대지가 130평에 건평이 30평여 정도였다. 건축에 소요된 기간도 2개월여가 꼬박 걸렸다. 부부가 살기에는 너무 넓은 것이 아닐까했다. 거실 등의 나무는 편백나무로 향기가 났다. 전등도 최신 LED로 고가의 최신식 간접조명을 설치해 두었다. 주택의 마당에는 잔디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고 한켠에는 아로니아, 블루베리 등이 익어가고 있었다. 마당 구석지에는 조그만 흔들그네도 설치되어져 있었다. 집 뒤편으로는 고추, 가지, 상추 등 텃밭으로 활용이 되고 있었다. 바로 앞에는 천변이었고 그 너머에는 언덕이 있었다. 5분만 걸어나가면 바로 서해바다가 있었다. 현관앞 테라스에는 탁자와 의자가 배치되어져 있었다. 소나무 등 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집안을 돌아본 후 본격적인 회합이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된 것은 회였다. 아침에 떠온 회로 약주를 한잔씩 하면서 얘기를 나눴다. 단연 화제에 오른 것은 수미네의 빌딩구입 건이었다. 난곡쪽에 4층 건물을 구입한 사례였다. 평생노력하신 결실이 이제 열매를 맺는 셈이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로 ‘조물주 위에 건물주’ 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에 합당하리라. 두 번째는 회장님네의 혼사였다. 10월 하순에 따님을 결혼시키게 된 것이었다. 이런저런 세상사 얘기를 하며 주말 오후 반나절을 보내게 된 것이다. 고문님네가 그늘막용 텐트를 간단하게 마당에 설치해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준비된 것은 돼지 목살이었다. 바베큐로 마당에서 숯불로 구워서 제공되었다. 직접 텃밭에서 재배한 싱싱한 야채도 곁들여졌다. 집사람의 공저인 책 ‘니르바나로 가는 길’ 이란 것이 한권씩 배부되었다. 집사람은 4년 동안 목포 선원에 다니며 수행을 했다. 그에 관한 것을 경험담을 여러 도반과 함께 펴낸 것으로 편집된 것이다. 오늘은 집사람이 수행의 마침표를 찍는 졸업날이었다. 마지막으로 준비된 음식은 한우였다. 맛있는 음식으로 포식을 한 모든 이들은 모두 흥겨운 기분이 되었고 유쾌해졌다. 일부 회원들은 천변을 넘어가 언덕가에서 게를 잡아오기도 했다. 그네에서 부부간에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귀경길에는 영재네 승용차에 편승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영재네 형제간은 7남1녀라고 했다. 누님형님이 계시고 영재네가 5번째라 했다. 밑에 3명의 동생이 있었다. 자동차 정비업을 낙성대에서 같이 하고 있는 동생이 두명이었다. 고향은 삼천포였다. 차량을 현재 차량으로 바꾸게 된 사연을 들었다. 구형 그랜저 XG를 탈때였는데 기름을 착각하여 휘발유를 넣어야 하는데 경유를 넣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차를 망쳐 새차를 뽑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부도 반나절 행사를 마친 후에 후기를 남기신 부회장의 말씀입니다. 우린 고문네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학균아들 결혼턱으로 맛있는 음식 겁나게 많이 준비해주신 학균네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참석하신 수미아빠, 혼자참석하신 승환아빠 그 외 회장네 운전하신 총무네 고문네 또 영재네, 민경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은 회장님 말씀입니다. 흰머리 휘날리며 운전해주신 고문님, 일부러 신림과 광명을 오가신 총무님, 둘만의 시간에도 배려해주신 영재네 막내라고 고생하신 영재네, 용성어머니, 아이스크림 사들고 뛰어오신 민경네 마나님 졸업식도 마다하시고 참석하신 우리 작가님, 오랜만에 모임에 오신 수미아빠. 우리 인생의 길잡이 훈민네, 저의 사사로움을 감싸주는 딱따구리 우리누님, 모두 모두 감사하고요. 재민, 기택네는 다음을 기약하고 학균네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오늘 이밤을 마무리 합니다. 신녹사 모두 사랑합니다. 이제 신녹사 모임을 한지도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만난 인연인데 이제 결혼을 할 나이가 되었으니 참으로 오랜세월 회합을 이어온 셈이었다. 모든 회원이 언제까지나 행복하시고 건강한 나날들을 보내시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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