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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수필51

꽃 출석부 1 꽃 출석부 1 /박완서 작년 가을에 이웃집에서 복수초를 나누어 받았다. 뿌리는 구근이 아니라 흑갈색 잔뿌리와 검은 흙이 한데 엉겨 있고 키는 땅에 닿을 듯이 작은데 잎도 새의 깃털처럼 잘게 갈라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볼륨이 느껴지지 않아 하찮은 잡초처럼 보였다. 그전에 나는 복수초라는 화초를 사진으로 본 적은 있지만, 실물을 본 적은 없기 때문에 그게 과연 눈 속에서 핀다는 그 복수초인지 잘 믿기지 않았다. 생각해서 나누어 준 분 앞이라 당장 양지바른 곳에 심긴 했지만, 곧 가을이 깊어지니 워낙 시원치 않아 보이던 이파리들은 자취도 없어지고 나 역시 그게 있던 자리조차 기억 못 하게 되었다. 아마 3월이 되자마자였을 것이다. 샛노란 꽃이 두 송이 땅에 닿게 피어 있었다. 하도 키가 작아서 하마터면 밟을 뻔.. 2023. 12. 4.
The flower attendance book The flower attendance book /Wanseo Park Hello. It's very nice to meet you. Last fall, I received a bunch of pheasant’s-eye from a neighbor. The roots are not bulbs, but dark brown fine roots and black soil clumped together, and the height is so small that it almost touches the ground. The leaves are also finely divided like bird feathers, so the overall volume is not felt, so it looks like an in.. 2023. 12. 4.
그리운 내가 온다2 그리운 내가 온다 2/ 박범신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이 변경까지 도망쳐 와 지하에 은거했던 중세의 기독교인들, 그들도 맞이했을 그 아침 해가 다시 떠오르는 시간입니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이, 고난의 시간이 지나면 영광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박해를 피해 은거했던 기독교 문명은 이제 동굴의 어둠 속에서 나와, 아침 해처럼,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됐습니다. 기독교가 세계로 널리 퍼져 나간 것처럼 사랑의 물결이 세계로 더 널리 퍼져 나갔는지는 의문입니다. 어떤 이에게 종교는 구원이지만 또 어떤 이에게 종교는 욕망이 된 세상입니다. 터키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해서, 말을 붙이지 못할 정도입니다. 마치 잃어버린, 젊었을 때, 그 옛날의 우리 같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잘 살아보자는 개발 이데올로기를 따라오면서 세.. 2023. 10. 20.
그리운 내가 온다 그리운 내가 온다 / 박범신 유럽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아시아가 여기서 끝납니다. 바꿔 말하자면, 유럽이 끝나고 아시아가 시작되는 곳이 이스탄불입니다. 일찍이 강성했던 히타이트인들이 자리 잡았으며 페르시아 제국과 로마 문명의 세례를 받았던 곳, 동로마 제국의 비잔틴 문화가 꽃피었고, 오스만 터키의 이슬람 문명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아시아 몽골 제국의 말발굽 소리가 천지를 울리기도 했던 곳, 동양과 서양, 오래된 과거와 현재, 갈등과 화해가 뒤섞여 흐르는 곳, 이스탄불은 터키의 심장입니다. 터키인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보아즈(bogaz), 목이라고 부릅니다. 길쭉한 모양이기 때문이지만, 제게는 생명이라는 은유를 떠올리게 하는 목으로 들립니다.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30여 킬로미터의 이 물길은.. 2023.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