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사수필51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김훈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싯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낚시를 발라 먹고 먹이만을 집어먹을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어수룩한 곳이 아니다. 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장이 꿰여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명랑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니 돈을 벌어라. 떠나가는 배 이 시대의 '개혁'은 수많은 사람들을 제.. 2023. 10. 20.
밥벌이의 지겨움3 밥벌이의 지겨움3/김훈 히딩크 열풍이 주는 교훈 한국팀이 공을 차 넣었을 때, 히딩크 감독의 골 세리머니는 선수들의 세리머니와는 크게 다르다. 선수들은 기쁨에 날뛰는 동작을 해보이지만, 히딩크 감독의 '어퍼커트 세리머니'는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성취의 희열을 폭발시킨다. 히딩크 감독을 모셔 와서 한국 축구가 단기간에 세계 정상으로 치솟았다는 성취를 '족집게 고액 과외'의 효과라고 말하는 자조적인 농담도 술자리에서 떠돌고 있다. 그리고 그 농담의 이면에는 스포츠가 아닌 현실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히딩크의 성취에 대한 가장 유력한 분석은 그가 한국인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외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의 고질적 악폐인 학연과 지연 등 인맥에 휘둘리지 않고, 재능과 성실성.. 2023. 10. 20.
밥벌이의 지겨움2 밥벌이의 지겨움 2/ 김훈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 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봄에, 새잎 돋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는 늘 마음이 아팠다. 나무들은 이파리에 엽록소가 박혀 있어서 씨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햋빛과 물을 합쳐서 밥을 빚어낸다. 자신의 생명 속에서 스스로 밥을 빚어내는 나무는 얼마나 복 받은 존재인가.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 그래서 내 밥과 너의 밥이 뒤엉켜 있다.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 2023. 10. 20.
밥벌이의 지겨움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책머리에 내가 사는 마을은 한강 맨 아래쪽 물가다. 저녁마다 서해에서 번지는 노을이 산하에 가득 찬다. 하류의 강은 늙은 강이다. 큰 강의 하구 쪽은 흐려진 시간과 닿아있고 그 강은 느리게 흘러서 순하게 소멸한다. 흐르는 강물 옆에 살면서 여생의 시간이 저와 같기를 바란다. 나는 이 물가 마을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저녁나절을 보낸다. 이제, 시간에 저항할 시간이 없고, 시간을 앞지를 기력이 없다. 늙으니까 두 가지 운명이 확실히 보인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벼락치듯 눈에 들어오고, 봄이 가고 또 밤이 오듯이 자연 현상으로 다가오는 죽음이 보인다. 공원에서 아이들은 미끄럼을 타고 그네를 타고 흙장난을 하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탄다. 노는 아이들의 몸놀림과 지껄임은 늘 나를 기쁘게 했는데.. 2023.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