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수필2203

10. 외투 외투 김소운 계절 중에서 내 생리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 겨울이다. 체질적으로 소양(小陽)인 데다 심열이 승(勝)하고 다혈질이다. 매양 만나는 이들이 술을 했느냐고 묻도록 얼굴에 핏기가 많고 침착 냉정하지 못해 일쑤 흥분을 잘한다.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김나는 뜨거운 것보다 찬 음식을 좋아한다. 남국에서 보다는 눈 내리는 북국에 살고 싶다. 그러면서도 유달리 추위는 탄다. 추위에 대한 저항력이나 자신으로 겨울을 좋아하느니보다, 추위 속에서 그 추위를 방비하고 사는ㅡ 추위는 문 밖에 세워 두고 혼자서 뜨끈하게 군불 땐 방 속에 앉아 있고 싶은 이를테면 그런 의 심정이다. 눈보라 뿌리는 겨울 거리에 외투로 몸단속을 단단히 하고 나선, 그 기분이란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어느 때는 외투라는 것을 위해서 겨울이.. 2022. 1. 2.
11.수정비둘기 수정 비둘기 김동인​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끝없이 무겁게 하는 어떤 가을날이었다. 가슴을 파먹어 들어가는 무거운 병에 시달린 외로운 젊은이는, 어떤날 저녁. 어떤 해안의 조그만 도회의 거리를 일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저녁해가 바다에 잠기려 하는 황혼이었다. 죽음을 의미하는 불치의 병에 걸린 이 젊은이는 무거운 다리를 골목으로 끌고 있었다.이렇게 일없이 돌아다니던 젊은이는, 어떤 집 문앞에서 그 집 대문턱에 걸터앉아 있는 소녀를 하나 보았다. 열 두세 살 난 소녀였다. 소녀는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젊은이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소녀의 눈은 수정과 같이 맑았다. 진주와 같이 보드라웠다. 젊은이는 소녀에게 가까이 갔다. "너 몇 살이니?" "열두 살" "이름은?" "영애." 병 때문에 감격키 .. 2022. 1. 2.
9. 수목송 수목송 김동리 돌과 흙과 쇠 같은 따위들은 그 깸 없는 깊은 잠에 주검처럼 굳어진 자들이라, 일깨워 우리와 사귈 수 없고, 조수와 충류들은 생로병사에 사람의 아픈 바를 지니되, 그 신령한 바를 갖추지 못하니, 또한 더불어 살기에 나를 기를 것이 없다. 수목은 이와 달라, 돌, 흙, 쇠같이 깸 없는 잠으로 굳어진 자도 아니요, 꽃으로 잎으로 또는 열매로 그 생명의 다양한 변화가 사람의 얼굴에서처럼 발랄하되, 그 생로병사에 신음없이 의젓함은 조수, 충류에서 멀다. 깨어 있으되 소란하지 않고, 삶을 누리되 구차하지 않음이 사람에서는 지인달사의 풍모라고나 할까? 우리가 수목에서 가장 경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그 장수라 할지니, 느티나무, 은행나무, 밤나무, 녹나무, 회화나무, 편백나무 따위들은 그 수명이 천 .. 2022. 1. 2.
8. 수필문학소고 수필문학소고 김광섭 수필이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글이다. 그러므로 다른 문학보다 더 개성적이며 心境的이며 경험적이다. 우리는 오늘날까지의 위대한 수필 문학이 그 어느 것이나 비록 객관적 사실을 다룬 것이라 하더라도 心境에 부딪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했다. 강렬하게 짜내는 心境的이라기보다 자연히 유로되는 心境的인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 점에서 수필은 詩에 가깝다. 그러나 詩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詩를 쓰려 한다. 소설을 지어 보려 한다. 혹은 희곡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 그 어느 것이나 함부로 달려들려는 무모한은 아니다. 동일한 작자면서도 그 태도가 서로 다르다. 詩는 心靈이나 감각의 전율된 상태에서 희곡과 소설은 재료의 정돈과 구성에 있어서 과학에 가까우리만큼 엄.. 2022.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