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5105 아빠의 파도 아빠의 파도 –장만평[의학도 수필공모 대상] 아, 파도가 높아지나 보다.’ 불안한 확신이 주는 불쾌감이 심장을 움켜쥐는 바람에 잠이 달아나버렸다. 눈을 잔뜩 찡그린 채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새벽 여섯 시다. 잠을 깨운 불안함은 방문 틈을 뚫고 들어온 아빠의 목소리 때문이다. 나름 소리를 낮춰보려 하지만 ‘밀물’ 시기 아빠의 목소리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휴대폰으로 아빠의 블로그를 검색해 들어갔다. 밤새 포스팅을 스물세 개나 올렸다. 어제도 거의 잠을 자질 않은 것이 분명하다. 거실로 나오니 아빠는 벌써 외출 채비를 마친 상태다. “아침부터 어디 가려고요?”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내 목소리는 퉁명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들뜬 표정이다. “어! 며칠 어디 좀 갔다 오려고.” 그리고.. 2022. 9. 29. 오래된 부고 오래된 부고 –최지안 화요일의 비. 봄비는 소나기처럼 내리지 않는다. 새싹들을 위해 살살 내리라고 자연이 배려해준 설정이다. 이 비에 작년에 떨어진 낙엽은 썩고 움튼 싹은 고개를 들 것이다. 그 사이 매화 꽃눈이 겨울의 봉제선을 뜯으며 카운트다운을 한다. 이미 기울어진 것들은 새로운 것들의 거름이 되라고, 그런 거라고 다독이듯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그의 페이스북에 들어가니 부고가 와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부고였다. 종이였다면 벌써 모서리가 해지고 구겨졌을 시간. ‘고 James님은 OO년 O월 O일 소천하셨습니다.’ 자신의 부고를 누군가에게서 댓글로 받은 사내. 페이스북에 누군가 그의 죽음을 메시지로 알린 것이었다. 그것을 끝으로 그의 페이스북엔 올라온 소식이 없었다. 한동안 연락이 없는 사람의.. 2022. 9. 29. 울지 않는 반딧불이 울지 않는 반딧불이 - 박일천 시골집 대문 안에 들어서자 텃밭에서 푸성귀를 솎아내던 시어머니께서 흙 묻은 손을 털고 일어서며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신다. 가끔 다녀가는 자식들이 적적함을 밀어내는 말동무이리라. 이것저것 물어보며 세상 밖 이야기에 귀 기울이신다. 밭에서 솎은 어린 배추로 얼갈이김치를 담고 챙겨간 찬거리로 저녁밥을 지어 먹었다. 귀뚜라미 소리에 이끌려 그이와 함께 개울가로 나갔다. 동구 밖을 지나 갈대가 사운거리는 둑길을 따라 걸었다. 동산 너머로 열나흘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벼들이 그득 찬 들녘은 달빛에 젖어 희붐하다. 내 키보다 큰 갈대들은 냇둑 위에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다. 갈대밭 언저리로 작은 불빛 하나가 깜박거리다 사라진다. 잘못 보았을까. 내 눈을 의심하기도 전에 또 다른.. 2022. 9. 29. 겨우살이 겨우살이 -박일천 겨울의 끝머리에 산사를 찾았다. 나뭇잎이 떨어진 숲은 멀리까지 훤히 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나무는 내밀한 곳까지 드러낸 순정한 모습이다. 응달진 산꼴짜기는 아직 잔설이 하얗다. 산모통이를 돌아 암자로 가는 오르막길은 천천히 걸어도 숨이 가쁘다, 비탈길 나무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얼음을 깬 듯 청담 빛 하늘이 조각조각 내려온다. 어디선가 '쓰쓰 빼이' 새소리가 들려와 위를 올려다보았다. 가슴이 발그스름한 것이 곤줄박이다. 좀 더 가까이 보려고 발걸음을 떼자 후드득 날아가버린다. 새가 날아간 참나무 가지에 언뜻 연두빛 뭉치가 보인다. 회백색 나무줄기에 새집처럼 초록잎을 드리운 겨우살이다. 군데군데 보이는 겨우살이는 삭막한 숲에 생기를 뿜어낸다. 겨우살이는 오리나무나 .. 2022. 9. 29.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