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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5105

아버지 아버지 - 박재완 첫 제사다. 동생이 술잔에 술을 채웠다. 술잔이 향 연기를 넘어갔다. 아버지는 향 너머에 계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 ‘삶’‘삶’ 쪽에 가까웠다. 기억의 윤곽들이 아직 선명했다. 한순간의 죽음이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특히 자식에게 부모의 ‘존재’와 ‘부재’는 살아 있음과 죽어 없음으로 간단히 치환되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삶이 서로의 삶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절을 올렸다. 내가 절을 마치자 동생이 잔을 거둬왔다. 다시 동생이 술잔에 술을 채웠다. 다시 향 연기 위로 술잔이 넘어갔다. 조그만 제사상 안에 두 개의 세상이 있었다. 술잔만이 넘어 다닐 수 있었다. 멀었던, 아버지. 죽음이 삶을 더 분명하게 짚어줬다. 오늘 같은 날엔. 아내와 자식보다는 .. 2022. 9. 25.
아름다운 인내 아름다운 인내 -소관섭 아내와 함께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신촌마을에 갔다. 차사순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마을에 도착하여 동네 사람에게 집을 물어 찾아 갔더니 사람은 없고 몇 마리의 개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이웃집에 들어가 차사순 할머니를 만나러 왔다고 했더니 아들과 통화를 해보라고 한다. 통화를 해보니 전주에 있는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코로나 때문에 면회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한 장 찍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만날 수가 없었다. 차사순 할머니는 소양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전주 시장에 가서 채소를 팔았다. 그런데 자가용이 있으면 훨씬 편리할 것 같아 운전 면허증을 따려고 결심을 하고 필기시험을 보았다. 첫 시험을 치른 것은 60대 중반인 2005년 4월. 합격을 하려면 60점.. 2022. 9. 25.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 이옥 선비는 가을을 슬퍼하니 서리 내리는 것을 슬퍼함인가? 초목이 아닌 것이다. 장차 추워지는 것을 슬퍼함인가? 기러기나 벌레가 아닌 것이다. 때를 만나지 못하여 강개한 사람과 고향과 조국을 떠나는 나그네라면 또한 어찌 가을만을 기다려 슬퍼하겠는가? 이상하기도 하다! 바람을 맞이하여 흐느껴 탄식하며 스스로 즐거워하지 못하고, 달을 보면 비통하여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에 이른다. 저들의 그 슬픔은 무슨 까닭에서인가? 슬퍼하는 자에게 물어보니 슬퍼하는 자 또한 슬퍼할 줄만 알지, 그 슬퍼지는 까닭은 알지 못한다. 아, 나는 알겠다! 하늘을 남자에 해당하고, 땅은 여자에 해당하는데, 여자는 음陰의 기운이요, 남자는 양陽의 기운이다. 양기는 자월子月(음력 11월)에 생겨나 진사辰.. 2022. 9. 25.
살구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살구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정 약 용 위 아래로 5,000년이나 되는 시간 속에서 하필이면 함께 태어나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 가로세로 3만 리나 되는 넓은 땅 위에서 하필이면 함께 태어난 한 나라에서 같이 살아간다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살아간다고 해도, 나이로 보면 젊음과 늙음의 차이가 있는데다가, 그 사는 곳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골이면, 서로 만난다 해도 정중하게 예의를 차려야 하니, 만나는 즐거움이 적을 것이다. 게다가 죽을 때까지 서로 알지 못한 채 살다가 마는 경우는 또 얼마나 더 많겠는가. 더구나 이 몇 가지 경우 외에도, 또 출세한 사람과 그렇지 못함에 있어서 차이가 나고, 취미나 뜻하는 바가.. 2022.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