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5105 두꺼운 북소리 두꺼운 북소리 - 박남주 "덩, 궁딱. 따드락 딱, 구궁 딱!" 종이박스의 작은 면을 대점으로, 넓은 면을 궁편과 채편으로 삼아 두드리는 고향 친구 유당의 장단은 둔탁했지만 듣고 있는 동안 가슴 한 편이 저려왔다. 장단을 맞춰 추임새를 넣는 친구들도 있었고, 모처럼 만난 반가움에 들뜬 탓도 있었겠지만 밤이 이슥하도록 노래를 부르며 지난 옛이야기에 젖어 들었다. 한동안 고수(敲手)가 된 유당이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넌지시 물었다. "어이 종심, 자네가 고수가 되었어야 헌디, 어째서 아부지한테 북을 전수받지 않았능가?" "그렇지 않아도 후회가 되네. 젊었을 땐 여유가 없었지 뭐!" 나는 별일 아닌 듯 대답했다. 목청이 좋은 죽봉은 '호남가'와 '사철가'를 불렀다. 연한 옥색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봉사하는.. 2022. 10. 13. 고등어 고등어 -정성화 붉은 아가미를 헐떡이며 즐겁게 내달리는 고등어 떼를 TV화면으로 보았다. 수학여행길에 오른 아이들처럼 생기가 넘쳤다. 그물이 서서히 조여 올 때까지도 고등어는 무리지어 유영을 즐겼다. 건져 올린 것은 고등어의 몸통일 뿐 고등어의 푸른 자유는 그물 밖으로 다 새어나가고 있었다. 싱싱한 고등어를 보면 잘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동그란 눈 속에는 검푸른 바다가 출렁이고, 방추형으로 생긴 몸매는 어느 각도에서 봐도 맵시가 난다. 짙은 색을 띤 등에는 물결무늬가 일렁인다. 제가 가본 바다를 기억하기 위해 고등어는 제 몸에다 그 바다의 물결을 새겨두었을까. 고등어의 모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등과 뱃살의 대비다. 군청색을 띤 등은 눈부시게 흰 뱃살 때문에 마치 ‘눈 속에 묻힌 댓잎’처럼 보인다.. 2022. 10. 13. 의자에 대한 자세 의자에 대한 자세 -이상수 의자는 풍경의 낙관이다. 산들바람 부는 드넓은 풀밭이나 파도소리 철썩이는 해변, 삶이 펄떡이는 시장 한쪽에서나 아이들 다 돌아간 운동장 귀퉁이에 놓인 의자는 지상에서 오래된 은유다. 앉음과 섬의 사이, 일과 휴식의 틈, 어제와 내일의 중간에 의자는 있다. 사막 같은 인생항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오아시스가 되어 준다. 두 다리를 가진 인간의 불완전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심리적 환각제요, 지음知音이자 인생을 함께 나누는 반려다. 다리는 세 개로 부족함이 없지만 개를 질투하여 네 개로 되었다는 장 그노소의 말은 너무 피상적인 접근법이라 불온하다. 초등학교 때 내 의자는 높아서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게다가 청소를 하느라 책상 위에 올릴 때는 무거워서 언제나 .. 2022. 10. 3. 아등바등 아등바등 –이상경 묘하게 알아보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생전보다 특별히 부으시거나 살이 빠지신 것도 아닌데도.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제야 익숙한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돌아가시기 전 담도가 막힌 탓에 온통 누렇게 변해 있었기는 해도, 확실히 명절 때마다 뵈었던 그 얼굴이 맞았다. 기묘했다. 그냥 주무시고 계신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또 아예 사람인 적 없었던 밀랍인형처럼 보였다. 왜 옛사람들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는지 짐작할 것도 같았다. 생명의 마지막 흔적마저 자취를 감춘 얼굴은 마른 강바닥 같았다. 강이었고, 강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넘실거리는 뭔가가 사라져 버렸기에 강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고 이질적인. 천성이 감성적인 엄마는 할머니 옆으로 다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2022. 10. 3. 이전 1 ··· 6 7 8 9 10 11 12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