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119 103. 참새 참새 윤오영 짹짹 짹, 짹 짹. 뭇 참새의 조잘대는 소리, 반가운 소리다. 벌써 아침나절인가. 오늘도 맑고 고운 아침. 울타리에 햇발이 들어 따스하고 명랑한 하루를 예고해 주는 귀여운 것들의 조잘대는 소리다. 기지개를 펴고 눈을 비빈다. 캄캄한 밤이 아닌가. 전등의 스위치를 누르고 책상 위의 시계를 보니, 새로 세 시다. 형광등만 훤하다. 다시 눈을 감아도 금방 들렸던 참새 소리는 없다. 눈은 멀거니 천정을 직시한다. 참새는 공작같이 화려하지도, 학같이 고귀하지도 않다. 꾀꼬리의 아름다운 노래도, 접동새ㆍ의 구슬픈 노래도 모른다. 시인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완상가에게 팔리지도 않는 새다. 그러나 그 조그만 몸매는 귀엽고도 매끈하고, 색깔은 검소하면서도 조촐하다. 어린 소녀들처럼 모이면 조잘댄다. 아무 기.. 2021. 12. 28. 101. 조화 조화 박경리 무슨 빛깔을 좋아하느냐, 어떤 꽃을 사랑하느냐 하고 묻는다면 얼핏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이 어느 계절이 인상적이냐고 한 대도 역시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할 것이며 종내는 잘 모르겠노라는 대답이 될 성싶다. 사람의 경우만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어떤 성격이 매력적이며 어떠한 얼굴에 흥미를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과 인간들 앞에서 창문을 닫아 버리고 내 마음이 황무지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떠한 하나하나를 추려 내어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하며 서둘러 보기에는 좀 나이 들어 버린 것 같기는 하다. 무릇 어떤 꽃이든 빛깔이든 혹은 계절이든 간에 어느 조화를 이룬 속에서만이 참된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그러한 조화는 명확하게 구체화시켜 볼 수 없는 일종.. 2021. 12. 28. 100. 조춘점묘 -공지에서 조춘점묘(早春點描) 보험 없는 화재 격장(隔墻)에서 불이 났다. 흐린 하늘에 눈발이 성기게 날리면서 화염은 오적어(烏賊魚) 모양으로 덩어리 먹을 퍽퍽 토한다. 많은 약품을 취급하는 큰 공장이란다. 거대한 불더미 속에서는 간헐적으로 재채기하듯이 색다른 연기 뭉텅이가 내뿜긴다. 약품이 폭발하나 보다. 역 송구스러운 말이나 불구경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뒤꼍으로 돌 아가서 팔짱을 끼고 서서 턱살 밑으로 달겨드는 화광(火光)을 쳐다보고 섰 자니까 얼굴이 후끈후끈해 들어오는 것이, 꽤 할 만하다. 잠시 황홀한 엑스 터시 속에 놀아 본다. 불을 붙여 놓고 보니까 뜻밖에 너무도 엉성한 그 공장 바라크는 삽시간에 불길에 휘감겨 버리고 그리고 그 휘말린 혓바닥이 인접한 궤딱지 같은 빈민 굴을 향하여 널름거리기 .. 2021. 12. 28. 99. 짜장면 짜장면 정진권 짜장면은 좀 침침한 작은 중국집에서 먹어야 맛이 난다. 방은 퍽 좁아야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깨끗지 못해야 하고, 허술한 앉은뱅이 식탁은 낡아야 한다. 고춧가루 그릇이나 식초병은 때가 좀 끼고 금이라도 가야 운치가 있다. 방석은 때에 절어 윤이 날 듯하고, 짜장면 그릇은 거무스레하고 이가 두어 군데 빠져 있는 게 좋다. 그리고 그 집 주인은 뚱뚱해야 한다. 머리엔 한 번도 기름을 바른 일이 없고, 인심 좋은 얼굴엔 개기름이 번들거리며, 깨끗지 못한 손은 소두방만하고, 신발은 여름이어도 털신이어야 한다. 나는 그가 검은 색의 중국 옷을 입고, 그 옷은 때에 전 것이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그런 옷을 찾기 어려우니 낡은 스웨터로 참아 두자. 하여간 이런 주인에게 돈을 치르고 나오면 언제나 마.. 2021. 12. 27. 이전 1 ··· 3 4 5 6 7 8 9 ···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