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119 73. 얼굴 얼굴 안병욱 좋은 얼굴은 인생의 최고의 예술품에 속한다. 단아하고 기품이 높은 얼굴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사람은 저마다 정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 착하고 품위 있는 얼굴의 소유자도 있고, 흉하고 험상궂은 얼굴을 가진 이도 있다. 우리는 자기의 얼굴을 선택하는 자유는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님한테서 선물로 받은 얼굴이다. 재주나 체질과 마찬가지로 운명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누구나 맑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기를 원한다. 추하고 못생긴 얼굴을 바라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자서전적 작품을 읽어 보면, 젊었을 때 자기의 코가 넓적하고 보기 흉한 것을 무척 비관하고 염세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젊었을 때에는 특히 자기 얼굴의 미추에 대해서 .. 2021. 12. 25. 72. 폭포와 분수 폭포와 분수 이어령 동양인은폭포를 사랑한다. 비류 직하 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란 상투어가 있듯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그 물 줄기를 사랑한다. 으레 폭포수 밑 깊은못 속에는 용이 살며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한다. 폭포수에는 동양인의 마음 속에 흐르는원시적인 환각의 무지개가 서려 있다. 서구인들은분수를 사랑한다. 지하로부터 하늘을 향해힘차게 뻗어 오르는 분수, 로마에 가든 파리에가든 런던에 가든, 어느 도시에나 분수의 물줄기를볼 수 있다. 분수에는 으레 조각이 있고 그곁에는 콩코르드와 같은 시원한 광장이 있다. 그 광장에는 비둘기떼가 날고 젊은 애인들의속삭임이 있다. 분수에는 서양인의 마음 속에흐르는 원초적인 꿈의 무지개가 서려 있다. 폭포수와 분수는 동양과 서양의 각기 다른 두 문화의 원천이 되었다고.. 2021. 12. 25. 85. 씨앗 씨앗 유동림 우리 집에는 거실과 주방 사이에 창틀모양을 한 소통의 공간이 있어 그 틀턱에 자잘한 꽃이 핀 화분 몇 개를 올려놓고 보거나 작은 골동품을 놓아두고 완상(玩賞)하기도 했다. 작년 가을부터는 그 자리에 내 손으로 심어 거둔 곡식들을 작은 플라스틱 병에 넣어 색 맞춰 진열해 놓았다. 골동품이나 꽃보다 내게는 더 의미가 있고 보기 좋았다. 손님들도 곡식을 장식품으로 삼는 집은 처음 봤다며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투명한 플라스틱 병 속에는 종류에 따라 크기와 색이 각각 다른 모양의 곡식이 들어 있다. 이 곡식들은 씨앗용이다. 병 속에 넣어 뚜껑을 잘 막아 두면 벌레가 생기지 않고 간수하기 편하며 찾기도 쉽다. 잠 안 오는 밤이나 너무 일찍 깨어난 새벽에 이 씨앗들을 오래 보고 있으면 귀가 틔어 씨앗.. 2021. 12. 25. 80. 설해목 설해목 법정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 노승 앞에 더벅머리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 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왔다.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물을 떠다 주었다. 이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지만 스님은 한 마디 말도없이 시중만을 들어 주는 데에 크게 감동한 것이다. 훈계라면 진저리가났을 것이다.그에게는 백 천 마디 좋은 말보다는 다.. 2021. 12. 25. 이전 1 ··· 6 7 8 9 10 11 12 ···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