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19. 잊지 못할 윤동주 잊지 못할 윤동주(尹東柱) - 정병욱 윤동주(尹東柱)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즐겨 거닐던 서강(西江) 일대에는 고층 건물이 즐비(櫛比)하게 들어서고, 창냇벌을 꿰뚫고 흐르던 창내가 자취를 감추어 버릴 만큼, 오늘날 신촌(新村)은 그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달 밝은 밤이면 으레 나섰던 그의 산책길에 풀벌레 소리가 멈춘 지 오래고, 그가 사색(思索)의 보금자리로 삼았던 외인 묘지는 계절 감각을 상시랑 지 오래다. 그가 묵고 있던 하숙집 아주머니는 어쩌면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세월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고 마는 것이지만, 동주에 대한 나의 추억은 조금도 퇴색하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 내가 동주를 처음 만난 것은 1940년, 연희 전문 학교(.. 2022. 1. 22.
18. 일하는 행복 일하는 행복 안수길(安壽吉) 알랭이 그의 에서, '파리의 경찰서장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 말은, 언제 생각을 해 보아도 재치 있고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서장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예기치 않았던 사건들이 뒤를 이어 기다리고 있고, 직책상 그것을 처리하지 않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할 일이 없어 하품을 하거나 적적한 느낌이 들 때는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이란 일을 하는 데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행복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사실, 일에 열중하고 있노라면, 몸과 마음에 일종의 리듬이 생겨 쾌적한 느낌을 맛볼 수 있고, 일한 자리가 생기게 되므로, 역시 일종의 정복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된.. 2022. 1. 22.
17. 은행나무 이야기 은행나무 이야기 정창희 은행나무는 자랑스러운 것들을 많이 가졌다. 곧고 튼튼하고 깨끗한 줄기, 굵고 싱싱한 가지들, 부드럽게 살랑이는 부채꼴의 잎들, 그리고 은빛의 은행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열매인 은행이다. 그 속씨가 포도알처럼 둥글게 생겼다면, 그것에 매력을 느낄 이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둥글납작하면서도 예리한 칼날이 한 바퀴 휘이 둘러져 있는 그 꼴은 깜찍해 보이기까지 한다. 곧, 입술을 나불거리면서 무엇인가 지저귈 것만 같다. 사람들은 은행을 본떠서 마고자 단추를 만든다. 은행이 영글어갈 무렵에는 사람들이 그의 나래 밑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다. 숫제 아주 멀찍이 떨어져서 활모양을 그리며 숨가쁘게 달리기도 한다. 은행나무가 은행들에 최후의 정열을 부어넣을 때에 뿜어낼 수밖에 없.. 2022. 1. 22.
16. 오월이라 단오날에 오월五月이라 단오端午날에 이영도 어제 오후 저자에 갔던 아이가 창포菖蒲 한 묶음을 사들고 왔다. 우리의 모든 세시풍속歲時風俗이 날로 잊혀져 가는 요즘 세월에 그나마 단오절을 기억해서 창포를 배어다 팔아주는 아낙네가 있어 주었던가 싶으니, 우리 겨레의 멋을 말없이 이어 주는 숨은 정성이 아직도 우리 둘레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시켜 창포를 삶아 그 물을 뜰 모퉁이 작은 상추밭에 두어 밤이슬을 맞히게 하고, 목욕탕에 물을 넣도록 일렀다. 이슬 맞힌 창포물을 섞어 머리를 감고, 또 상추 잎에 내린 이슬방울을 받아 분을 찍어 아이에게도 발리고 나도 화장을 했다. 가르마엔 분실을 넣고, 창포 뿌리엔 주사를 발라 곤지를 찍었다. 올해 여든이신 어머님께도 화장을 시켜드렸더.. 2022.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