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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15. 애국가 애국가 이오덕 얼마 전 어느 자리에 나갔다가 '국민의례'가 있어 애국가를 부르게 되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목청을 가다듬어 부르는데, 그날 따라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애국가를 부를 마음이 안 났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부르는 애국가를 들으면서, 이제부터 내 입으로 이 애국가를 부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국민이면 어린아이들도 누구나 부르는 애국가, 나 자신이 50년도 넘게 불러온 애국가를 왜 부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나? 그 까닭은 이렇다. 바로 그 며칠 전에 어느 일간신문에서, 애국가 노랫말을 지은 사람이 윤치호란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신문은 윤치호 자신이 지은 애국가를 손수 붓으로 써서 '윤치호 작사'라 해 놓은 것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이래서 지금까지 누가 지었는지 확실히 몰.. 2022. 1. 22.
14. 싸리꽃 싸리꽃 - 조병화 지다 남은 꽃은 들판에 피어난 요염한 첫 꽃보다 더 사랑스러워라 그것은 더욱더 애절한 그리움을 우리 가슴에 안겨 주는 거 아, 그와도 같이 헤어질 땐 만날 때보다 더욱더 몸에 저려드는 것을. 이 시는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Pushkin)의 이다. 가을이 되면 머리에 떠오르는 싯귀절이다. 하늘에선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고, 파릇파릇 풀잎이 남아있는 바람이 부는 늦가을 들 풍경, 그곳에 지다 남은 작은꽃송이 하나를 연상해 본다. 바람에 떨고 있는 그 애절,그 애련, 그 청초, 그 가냘픔, 그 사랑, 그 몸에 저려드는생명의 절감,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느끼며.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나의 장조카는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니고 있었다. 나보다 다섯 살쯤 나이가 많았던가 한다. 그 장조카의.. 2022. 1. 22.
13. 시일야방성대곡 시일야방성대곡 장지연 지난 번 이등(伊藤)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 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 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 2022. 1. 22.
12. 석류 석류 한흑구 내 책상 위에는 몇 날 전부터, 석류 한 개가 놓여 있다.큰 사과만한 크기에, 그 빛깔은 홍옥과 비슷하지만, 그 모양은 사과와는 반대로 위쪽이 빠르고 돈주머니 모양으로 머리 끝에 주름이 잡혀져 있다. 보석을 꽉 채워 넣고 붙들어매 놓은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작은 꿀단지가 깨어진 것같이 금이 비끼어 터진 굵은 선 속에는 무엇인가 보석같이 빤짝빤짝 빛나는 것이 보인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석류의 모양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본다. 매끈한 사과와는 달리 무엇에 매를 맞았는지 혹과 같은 것이 울툭불툭한 겉모양 그 속에는 정녕코 금은보화가 꽉 채워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나는 아까워서 아까워서 석류 한 개를 놓고 매일같이 바라만 보고 있다. 행여, 금이 나서 터진 그 석을 쪼개 볼 생각을 .. 2022.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