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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23. 독서 개진론 독서 개진론 안재홍 일생을 일하고 일생을 읽으라. 황국단풍(黃菊丹楓)이 어느덧 무르녹아 달 밝고 서리 찬 밤 우러예는 기러기도 오늘 내일에볼 것이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다. 하늘 높고 바람 급한 적에 호마(胡馬)가 길이 소리쳐 장부의 팔이 부르르 떨치면서 넌지시 만리의 뜻을 품는 것은 가을의 감정이다. 그러하매, 옛사람이 가을밤 벽상에 장검(長劍)을 걸고 홀로 병서(兵書)를 읽었다고 하니 가을의 숙살한 기운이 무한 정진의 의도를 충동일 제 그 기(機와 경(境)이 알맞게 의도를 펼 수 없는 것이 인세에서는 더욱 천하의 뜻이 굽일어 나아가는 것이니 독서의 의의와 영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가을이 아니니, 언제나 독서는 자아(自我)인 일생을 객관의 경(境)에서 새로 발견하는 것이요, 졸고 있.. 2022. 1. 22.
22. 그림 안 파는 이야기 그림 안 파는 이야기 김환기 나는 그림을 팔지 않기로 했다. 팔리지가 않으니까 안 팔기로 했을지도 오르나 어쨌든 안 팔기로 작정했다. 두어 폭 팔아서 구라파 여행을 3년은 할 수 있다든지 한 폭 팔아서 그 흔해 빠진 고급차와 바꿀 수 있다든지 하면야 나도 먹고 사는 사람인지라 팔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내 그림에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인사가 있기를 바라겠는가. 그림을 팔지 않기로 작정한 다음부터는 마음이 편안하다. 혹시 전람회장에서나 그 밖의 어느 기회에 내 그림의 가격을 물어 보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 그림은 안 팝니다." 이렇게 똑똑히 대답하는 것이, 또 대답하고 나서 내 마음은 어찌나 통쾌한지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은 이상해서 안 판다고 그러면 더욱 더 조른다. 그러나 나는 시종일.. 2022. 1. 22.
21. 희생화 희생화 현진건 스물한 살 때 '개벽(開闢)'에 '희생화(犧牲花)'란 것을 처음 발표하였다. 바로 어제와 같은 그 때의 일이 역력히 기억에 남았건만 벌써 5년 전 옛이야기가 되었다. 남녀 학생 간에 남몰래 사랑을 주고받다가 남학생은 부모의 엄명(嚴命)으로 딴 처녀에게 장가를 아니 갈 수 없게 되자 표연히 외국으로 달아나 버리고, 여학생은 애인을 기다리다 못하여 마침내 병이 들어 죽고 만 경로를 센티멘탈하게 그린 것이었다. 구도덕(舊道德)에 희생된 여자라 하여 '희생화'라고 제목을 붙인 것부터 시방 생각하면 곰팡내가 난다. 그러나 그 당시엔 몇 번을 고쳐 쓰면서 감흥에 젖었는지 몰랐다. 그 때 '개벽'의 학예 부장으로 있던 나의 당숙인 현철(玄哲)씨를 성도 내며 빌기도 하며 제발 그것을 내어달라고 조르고 볶.. 2022. 1. 22.
20. 친절한 사람들 친절한 사람들 / 조연현 1971년 여름, 나는 더블린에서 개최된 세계 팬 대회에 참석하게 된 기회에, 약 40일 동안 세계 몇몇 나라를 여행한 일이 있었다. 다 알다시피 더블린은 아일랜드의 신생 공화국인 에이레의 수도다. 갈 때에는 자유 중국의 타이베이로 해서 홍콩, 이탈리아의 로마, 프랑스의 파리에 들렀고, 올 때에는 미국에 들러 뉴욕, 워싱턴, 볼티모어, 시카고를 돌아보고, 일본의 도쿄를 거쳤다. 그 중, 자유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퍽 가까운 거리에 있고, 또 같은 아시아 국가들일 뿐만 아니라, 전에도 가 본 일이 있기 때문에, 해외여행이라는 데서 오는 흥분이나 불안은 느끼지 않았으나, 그 밖의 나라들에 대해선 적잖은 흥분과 불안을 함께 느꼈다. 아니, 흥분보다 불안이 앞섰다고 하는 것이 옳을.. 2022.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