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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31. 가을의 사유 가을의 사유(思惟) 강석호 가을의 최대 명절인 추석을 지낸 지 오래다. 아침저녁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드높고 푸른 하늘, 들길에는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고 북쪽 산간지방에서는 벌써 성급하게 무서리가 내렸다는 소식과 함께 단풍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계절은 창변을 통해온다. 봄에는 겨우내 꽁꽁 닫아두었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가을엔 여름 내내 활짝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구석으로 몰아 붙였던 커튼을 내린다. 커튼이 닫힌 서재에 촛불을 밝히고 오랜만에 책상 앞에 다소곳이 앉아 손때 묻은 고서를 편다. 호젓한 나만의 세계가 열린다. 지난여름 흥분된 열기 따라 내 사유(思惟)는 영상과 스포츠에 빼앗기고 멍하니 세월만 보냈다. 이젠 삽상한 가을을 맞아 잃었던 나의 사유를 찾아 나선다.. 2022. 1. 23.
30. 이게 낙 아인기요 “이게 낙 아인기요”/ 김열규 조금은 이른 오후, 나는 뒷산을 향해서 오르고 있었다. 야트막한 비탈에 펼쳐진 밭 새로 난 오솔길은 눈부신 햇살과 어울려서는 바람이 상쾌했다. 하지만 글인가 뭔가를 쓰다가 지쳐 있는 머릿속은 계속 찌푸드드했다. 책상 앞에서 풀리지 않던 생각이 내처 꼬이고 들었다. 발걸음도 절룩대듯 가볍지 못했다. 글의 제목은 그런대로 잡혔지만, 내용을 두고는 갈팡질팡하고 있던 참이라, 머릿속에서 비틀대기만 하는 줄거리가 발걸음에 족쇄를 채우고 들었다. 말이 산책이지 고행이었다. 땅이 꺼지라고 한숨이 나도 모르게 토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발걸음을 돌리기도 뭣했다. 뒷산에 올라서 우거진 솔밭 새를 거니는 것은 온전히 습관이 되고 버릇이 되어 있었기에 그 타성에 밀려서라도 오던 길로 돌아설 수.. 2022. 1. 23.
29. 시대고와 그 희생 시대고와 그 희생 오상순 우리 조선은 황량한 폐허의 조선이오, 우리 시대는 비통한 번민의 시대이다. 이 말은 우리 청년의 심장을 찌르는 듯한 아픈 소리다. 그러나 나는 이말을 아니할 수 없다.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소름이 끼치는 무서운 소리나, 이것을 의심할 수 없고 부정할 수도 없다. 이 폐허 속에는 우리들의 내적(內的), 외적(外的), 심적(心的), 물적(物的)의 모든 부족, 결핍, 결함, 공허, 불평, 불만, 울분, 한숨, 걱정, 근심, 슬픔, 아픔, 눈물, 멸망과 사(死)의 제악(諸惡)이 쌓여 있다. 이 폐허 위에 설 때 암흑과 사망(死亡)은 그 흉악한 입을 크게 벌리고 곧 우리를 삼켜버릴 듯한 삼이 있다. 이 세상은 고해(苦海)와 같다고 말한다. 사실에 가까운 것 같다. 흔히 우리 인류 생활.. 2022. 1. 23.
28. 석남꽃 석남꽃 - 서정주 머리에 석남(石南)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 나 죽는 바람에 네가 놀래 깨어나면 너 깨는 서슬에 나도 깨어나서 한 서른 해만 더 살아 볼꺼나 죽어서도 살아서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서른 해만 더 한번 살아 볼꺼나 내 글 써놓은 공책을 뒤적거려 보니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라 제목한 이 시(詩)는 1969년 7월 15일 새벽 한 시에 쓴 것으로 되어 있으니, 이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관악산 밑으로 이사 오기 바로 한 해 전 일인데, 그 때의 공덕동 집에도 나무와 풀섶이 꽤나 짙어 모기가 많아서 그 때문에 짧은 여름밤을, 열어 놓은 창 사이로 날아드는 모기 떼와 싸움깨나 하고 앉았다가 쓴 것인 듯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것은 내 육체의 꼴이지, 마음만은 그래.. 2022.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