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3.백자이제 백자이제 김상옥 학(鶴)이 받쳐 든 술잔 여기 술잔이 하나 있다. 그러나, 이 술잔은 적어도 백유여 년(百有餘年)을 창공(蒼空)에 높이 떠 물 흐르듯 흐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언제까지나 떠서 흐르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정말 술잔이 창공에 떠서 물 흐르듯 흐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떠 있는 바에야 어찌하랴. 일찌기 이 땅에 한 무명 도공(無名陶工)이 있어, 그 도공(陶工)의 슬기가 능히 이러한 이적(異蹟)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내 눈앞에 선연(鮮然)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술잔은 정작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이는 그 무명 도공이 나고 살고 또 죽고, 그리고 죽어서 묻혀 있을 그 어느 외딴 산골짜기의 흙임에 틀림없다. 종생(終生)토록 고된 노역(勞役)으로.. 2022. 1. 21. 2. 백리금파에서 백리금파에서 김상용 고개를 넘어, 산허리를 돌아 내렸다. 산 밑이 바로 들, 들은 그저 논뿐의 연속이다. 두렁풀을 말끔히 깎았다. 논배미마다 수북수북 담긴 벼가 연하여 백리금파를 이루었다. 여기저기 논들을 돌아다니는 더벅머리 떼가 있다. '우여, 우여' 소리를 친다. 혹 '꽝꽝' 석유통을 두드리기도 한다. 참새들을 쫓는 것이다. 참새들은 자리를 못 붙여 한다. 우선 내 옆에 있는 더벅머리 떼가 '우여' 소리를 쳤다. 참새 떼가 와르르 날아갔다. 천 마리는 될 것 같다. 날아간 참새들은 원을 그리며 저편 논배미에 앉아 본다. 저편 애놈들은 날아 앉은 새 떼를 보았다. 깨어져라 하고 석유통을 두들긴다. 일제히, "우여!" 소리를 친다. 이 아우성을 질타할 만한 담력(膽力)이 참새의 작은 심장에 있을 수가 없.. 2022. 1. 21. 1. 미리내 미리내 서정범 은하수를 우리말로 미리내라고 한다. 미리내는 '미리'는 용(龍)의 옛말 '미르'가 변한 말이고 '내'는 천(川)의 우리말로서, 미리내는 '용천(龍川)'이란 어원을 갖는 말이라 하겠다. 어원에서 보면 용은 하늘에서는 은하수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보통 학교 아이들이 기차를 본 횟수를 늘리기 위해 꼭두새벽에 일어나 달려가기도 하고 기차를 보려고 밤 늦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그리고 기차에서 얼마큼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느냐가 큰 자랑거리였다. 하루는 셋이서 새로운 기록을 내려고 기차 오기를 기다렸다. 선로가에 아이들이 있는 것을 보면 기적을 울리기 때문에 숨어 있다가 지날 때 바싹 다가서야 된다. 기차가 굽이를 돌아 나타났다. 뛰어나왔다. 뒤늦게 우리를 본 .. 2022. 1. 21. 15. 인테그랄 인테그랄 유성은(2021당선작) 남편과 나는 고집이 세고 까다롭고 자존심이 강하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단 세 가지 공통점이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만났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운명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너무 평범한 만남을 더 그럴싸한 의미로 채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편의점 가판대에서 색다른 과자봉지를 한 번쯤 집어 보고 싶은 유혹 같은 것이었다. 그의 썰렁한 농담에 내가 박수를 치며 웃게 되었을 때, 차비를 아끼려고 늘 걸어서 다니던 그가 불현듯 저녁을 사겠노라 했을 때 우리의 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뜨겁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재채기만큼이나 숨겨지지 않았던 설렘, 상대의 의미 없는 행동에도 심장을 쓸어내렸던 떨림. 우리는 그것.. 2022. 1. 6. 이전 1 ··· 28 29 30 31 32 33 34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