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 산행기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을 맞아 사무실에서 추계체육행사를 하게 되었다. 날씨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화창하고 전형적인 가을날이었다. 부서에서는 추계체육행사로 가을날 온 산이 총천연색으로 물들이고 있을 쯤에 동두천에 있는 소요산을 등반하기로 한 것이었다. 모두 예쁘고 멋있게 치장을 하고 나와 색다른 느낌을 안겨주었다. 오색찬란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형형색색의 등산복 차림이어서 먼 곳에서 온 다른 사람들로 착각하기 좋을 만했다.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소요산은 주봉인 의상대가 587m로 높지는 않지만,사계절빼어난풍광과절묘한산세로경기의‘소금강’으로 불릴 정도이다. 여섯 개의 봉우리(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가 말발굽 모양으로 능선을 이루어 산을 오르는 내내 맞은편 산봉우리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게다가 원효대사의 구도를 향한 자취가 배어 있는 사찰과 봉우리 이름들은 천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원효와 요석공주에 얽힌 옛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소요산은 매월당 김시습이 자주 거닐던 산이라 해서 소요산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산행에 들어가기에 앞서 전체 직원을 모아놓고 부장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어넣는 일장 연설부터 했다. 가파른 산길이라 제법 운동이 되는 듯했고 땀도 많이 흘렸다. 간단한 음료 등 필수품이 포장된 것을 하나씩 개인별로 나눠주기도 했다. 부장은 무릎이 좋질 않아서 중도에 하산할 뜻도 비쳤으나 결국 끝까지 완주했다. 평탄한 길을 따라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원효대사를 그리워 한 요석공주가 아들 설총과 함께 찾아와 머물렀다는 요석별궁지가 있다. 아들과 함께 일일 삼배의 치성(致誠)을 드리던 요석공주의 염원은 지금은 별궁지 비석으로 남아 소요산을 찾는 이의 마음을 애틋하고 아련하게 만든다. 소요산의 명 사찰인 자재암(自在巖)은 신라 선덕여왕 1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원효대사의 불도를 시험하고자 아름다운 여인으로 화현(化現)한 관세음보살에게 막히거나 꺼리는게 없이 절대적인 경지에 있음을 뜻하는 자재무애(自在無碍)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 사찰 이름이다. 자재암에서 하백운대(440m)까지는 경사가 가파르고 힘들지만 하백운대에서 상백운대(559m)에 이르는 곳은 완만한 구릉으로 주변의 바위와 소나무의 운치를 느낄 수 있었다. 상백운대에서 나한대(571m)에 이르는 길은 바위가 많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길이지만 칼처럼 깎아지른 칼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진 경치는 바윗길의 백미(白眉)를 느끼게 해주었다. 안전을 위하여 밧줄과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조선 태조가 소요산에 머물며 자재암을 크게 중건한 후에 자재암을 창건한 원효의 수행동반자인 의상(義湘)을 기려 소요산 최고봉을 의상대라 부르게 되었다. 의상대에 서면 북한산, 도봉산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공주봉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전망은 빼놓을 수 없는 소요산의 즐거움 이다. 여직원 등 일부는 공주봉을 우회해서 내려가고 건장(健壯)한 직원들만 공주봉으로 올라갔다. 소요산행의 중간 정도 부근에서 점심을 먹었다. 부장이 프랑스 양주인 꼬냑을 한 병 가지고와 직원 모두에게 한 잔씩 손수 따라주었다. 그리고 건배를 제의했다. ‘ ○부서 무궁한 발전과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를 선창(先唱)했고 다들‘위하여’를 복창했다.점심은 땀 흘린 후에 자연과 더불어 하는 것이어서 맛이 배가 되었다. 식사 후에는 계속 내리막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제법 나뭇잎도 떨어져 있었고 어느 곳은 울긋불긋한 단풍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산길은 순조로웠고 가볍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화기애애(和氣靄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정상까지 간다면 추후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을 염려해 중도에 내려왔던 것이다. 내려오는 길도 경사가 급하고 곳곳에 돌들이 자리해 만만치가 않았다. 완전히 평지로 내려와서는 미리 예약해놓은 파전에 막걸리를 족구장에서 한 잔씩 하면서 갈증(渴症)을 풀었다. 다음 일정은 팀별 족구대회였다. 6개 팀이 토너먼트를 해서 우승팀을 가리는 것이었다. 4인조 경기를 했고 15점 단판 승부였고 결승전은 3판 양승제로 하기로 했다. 추첨을 잘못해 초반에 초 강팀과 붙는 바람에 1차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주무팀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팀과 준우승팀에게는 상금이 수여되었다. 바비큐로 음식을 준비한다고 했었는데 이것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소요산 일대는 축제 기간이라 해서 여러 곳에서 다채롭고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았다. 다들 차량을 갖고 왔고 운전을 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술을 최대한 자제(自制)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부장이 대리운전을 제안해 술잔의 무차별적인 지원사격이 시작되었다. 밤이 으슥해지자여러 가지 판이 펼쳐졌다. A팀장은 맥주를 한 잔 더하고 귀가를 했다. 주무팀장도 귀가하고 H대우는 술이 제법 취할 정도까지 되었다. 바깥에서 자고 있다가 밤이 깊어지자 한기를 느꼈는지 방으로 들어왔다. 조금 지나고 나서는 가겠다고 해서 K 대리가 데리고 갔다. 자정에 이
르자 주인집에서도 눈치를 주었다. 오후 내내 방을 비우고 장사를 못했다며 엄청 투덜대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수그러들었다. 막판에는 컵라면까지 끓여주었다. 최종 마무리된 시간은 거의 새벽녘으로 술은 이미 다 깨어 있었다. 부장을 집까지 모셔다 드렸다. 부부장은 딸의 대학면접시험 때문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대부분 일찍 자리를 뜬 직원들이 많았다. 직무와 관련된 협력자가 찬조한 소곡주는 사 분의 일만 마셨고, 소주도 한 상자를 시켰는데 6병 가량이 남았다. 족구에서는 A과 B팀이 붙었는데 박빙의 승부였다. 치열한 접전으로 용호상박의 멋진 경기 모습을 보여주어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다. 문제의 선수 K 차장과 J 차장 두 명의 대결이 볼만한 구경거리로 압권이었다. 두 사람의 실수가 연발될 때마다 온 족구장이 떠나갈 듯한 폭소의 웃음바다가 되었다. 족구장 주변이 주차장이어서 고급 승용차들이 빠져 나갈 때마다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심판은 노조분회장이 보았고 이의제기를 인정하지 않고 공정하게 처리했다. H대우는 몹시도 감정이 복받쳐서 혼란스러워 했다. 아마도 승진이 누락된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었으리라 여겨진다. 별다른 사고없이 무사히 행사가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작년 행사에서는 한 직원이 술 마시고 넘어지면서 코를 크게 다쳐 입원까지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 안타까웠던 적이 있었다. 월요일에는 전 직원이 김치찌개를 먹으며 소요산 행사의 후일담을 나누었다. 산행도 적정할 정도의 코스였고 이후의 족구경기도 좋았으며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즐거웠던 행사였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조직이 평상시에는 업무적으로 뭉치고 단합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반면에 체육행사를 통해서는 조직원 간의 일체감을 갖고 동질감을 느껴 볼 수 있는 장이 되어 좋았다. 늘 업무에 쫓겨 개인적인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던 부분을 서로가 나눌 수 있어서 화합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하늘도 높고 화창한 가을날에 심신의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 수 있었던 기회였던 듯하다. 모두 흔쾌해했고 오랜만에 일체감과 동질감을 느껴볼 수 있었던 화합과 상생의 한 마당이 되었던 행사였다. 그날 여운이 가끔 절로 미소 짓게 하는 데는 다 이런 연유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