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 권리와 휴일산책
인간의 망각(忘却)의 동물이라고 한다. 요즘은 잊히고 지워지는 것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엊그제 휴일이었다. 모처럼 화창한 가을날을 맞아 격월간에 만나는 모임이 있어 참석을 했다. 휴일 오전에 잠깐 만나 두어 시간 산책을 하고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져 있었다. 30분 정도 지체가 되었다. 목적지는 가파른 산도 아니고 언덕길 정도의 산책로를 대화도 하면서 가볍게 걷는 것이었다. 거의 칠순이 내일 모레이신 분부터 40대 중반까지 참석이 되었다. 한 선배님은 아들의 군 생활 이야기를 하였다. 요즘의 병사들이 하도 부모님들 간섭과 호통이 많아 지휘관들이 아주 곤욕스러워 한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체육시간에 농구를 하다 인대가 늘어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치료를 하고 그것이 다 나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격훈련을 가야하는데 열외를 하라고 했다. 이유인즉 인대 손상이 있어 기껏 치료를 해 놓았는데 다시 유격훈련하다 재발하거나 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냐는 것이 그의 하소연이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요지경 속인 세상인 것이다. 얼마 전 부하 직원의 아들은 병가를 내어서 집으로 왔다. 이유인즉 군 의료시설에서는 수술 등을 해서 뒷감당을 할 재간이 없으니 일반 사회병원에서 수술하고 치료를 한 다음 다시 입영을 하라고 했다. 발목 복숭아뼈 부근의 뼈가 돌출되는 것이어서 그것을 제거하고 기브스를 했단다. 병가기간이 짧아 기간을 더 연장해서 기브스를 한 채로 입영을 해야 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병사들에게 과도하게 제설작업을 시킨다고 해서 문제가 된 적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세상이 참으로 요지경 속임을 느껴볼 수 있는 일이었다. 산책길에는 도로위에 설치된 누에다리라고 명명된 명소도 지났다. 서리풀공원이라는 곳도 아주 멋지게 단장이 되어 있었다. 지자체의 재정이 넉넉하니 그런 부분에서의 공원조성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다. 반환점에 이르니 거의 한 시간여가 소요된 셈이었다. 전체 참가자가 모여 기념사진 촬영을 한 컷 하고 출발점으로 되돌아갔다. 26회 산악회에 관해 한 선배의 얘기가 있었다. 법제처에 오랫동안 근무하다 정년을 맞이했고 이제는 대학에서 후학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있는 분이었다. 1년이 52주쯤 된다고 하면 그중에서 추석, 설, 기타 며칠을 빼면 47주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주를 매주 등산을 한다는 것이다. 참석인원이 10여명 내외라고 한다. 당신 자신이 참석한 것은 거의 50% 수준이었단다. 최고의 참석율을 가진 진기록자는 한번 불참한 이였다고 했다. 대부분의 대소사를 다 팽개치고 산악회에 몰입하지 않고서는 그런 참석율이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토요일에 하는 것은 일요일의 교회참석자를 배려하는 차원이고 일요일에 하는 것은 가끔씩은 토요일에 혼사 등 여러 가지 가정사를 배려하는 차원에서라고 했다. 가끔씩은 1박2일도 하고 부부동반 등산도 한다고 했다. 그것도 대단한 참석율이었다. 용마산악회에서 5회 정도 산행을 하면 그것은 그 일정에 맞추는 것으로 한단다. 그렇게 산행을 하게 되면 산행후 후기를 남기게 된다. 처음 출발부터 끝나는 여정까지 기록된다는 것이었다. 산행 전후기의 사진과 산행 중 사진 등 그리고 오고간 얘기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것을 삼년동안 써왔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책으로 내는 것도 상당히 얘기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번 3일에서 5일까지의 3일간에는 설악산 대청봉을 간다고 한다. 한계령에서 대청봉을 등반하고 오색약수로 내려오는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끼어들었다. 대청봉을 세 번 등반한 경험담을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한계령에서 대청봉까지의 소요시간이 거의 9시간이 소요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대청봉에서 오색약수는 올라가는 코스가 4시간 정도 소요가 되니 내려오는 것은 3시간 30분정도면 되지 않을까 여겨졌다. 공릉능선도 여쭤보았다. 예전에는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코스였는데 요즘은 모든 곳에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사다리 등을 설치해두어 한결 편하게 등정할 수 있게 해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대청봉까지의 케이블카도 신문지상을 오르내리고 있는데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인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잊힐 권리라는 것에 대해 말씀이 있었다. 한창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잊힐 권리라는 것이다. 예전 철없던 시절의 과거행적이 정보통신의 발달에 의해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그런다는 것이다. 부부간의 이혼소송에 돌입하게 되면 제일먼저 수집하는 것이 각자 상대방 배우자의 SNS기록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이 어떻게 의견을 피력했고 어떤 내용이 있었는 지를 검색해서 그것을 증거 자료화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올리고 지웠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형식으로 다시 돌출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정한 기간이 지나거나 아니면 일정한 구역을 벗어난 경우에는 그런 부분들이 삭제되고 제거될 수 있도록 하는 잊힐 권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 생활 30년을 한사람에게 그가 젊은 시절 연애했던 부분으로 결혼 30년을 휴지로 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 요체였다. 산책을 마치고 일행은 음식점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소하며 애틋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모임을 기약했다. 가볍게 전혀 부담 없이 그렇게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몸에 무리가 될 만한 과도한 것도 아닌 산책을 통해서 서로의 우의를 다지고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모임이 요즘의 대세인 듯했다. 저녁에 모이게 되면 과도한 음주로 인해 다음날 일상까지 지장을 주기가 일쑤인데 이렇게 오후시간쯤에 파하게 되니 일석이조인 듯했다. 혼자서 하던 산책을 주변 지인들과 가볍게 하고 오니 가뿐한 느낌이 들어 더 좋았다. 둘레길이 요즘의 대세이다. 지난번에는 북한산 둘레길을 했었고 또 그 전에는 우면산을 택했었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상태에서 가벼운 산책을 다들 선호하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는 것이다. 젊은 친구들은 너무 쉬운 코스였기에 참석율이 저조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이 되니 청명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건강을 위해 심신을 살찌우고 한해를 마무리 잘해서 더 나은 새해를 맞이하길 기대해 본다.
'심향을 향한 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한의 일상사 (0) | 2023.03.26 |
---|---|
자금성과 마지막 황제 (0) | 2023.03.26 |
임관 30주년 기념식장에서 (0) | 2023.03.26 |
의료사고 (0) | 2023.03.25 |
율곡 이이 (0) | 2023.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