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라는 볼로냐 대학의 기호학 교수의 첫 장편소설이다. 52세때였다고 하니 늦은 셈이다. 중세 14세기 한 수도원에서 일주일동안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900페이지의 방대한 양의 장편소설을 창조해 냈다. 정확히는 1327년에 한 수도원에서 일주일동안 일어났던 일을 회상형식으로 그려낸 것이다. 아드소의 묵시록이라고도 했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윌리엄과 그의 종자 아드소는 멜크 수도원을 방문한다. 교황과 황제의 대립이 있었던 때이기도 하고 프란체스코파와 베네딕트파간의 갈등도 있었던 시대였었다. 중세의 시대에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통해서 그 시대를 조명해보고자 하는 것이 엿보였다. 첫 피살자는 종루에서 떨어져 죽은 이였다. 그것을 파헤치다보니 그는 결국 동성연애자였던 것이 드러나자 죄책감에서 수도원 종루에 올라가 몸을 던졌던 것이었다. 수도사는 청렴을 모토로 하는 프란체스코파였고 종자는 베네딕트파였다. 베네딕트파는 게으름에 대해서 무척이나 터부시 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일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생활의 토대위에서 종교생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념이었다. 수도원에는 장서관이 있었다. 그곳에서 필사를 하거나 번역을 하는 수도사들이 존재했다. 두 번째 죽음을 맞은 이가 생겨났다. 그는 희랍어 번역사였다. 베난티오라고 했다. 그리스어 번역사였다. 입이 새까맣게 탔고 손에도 독이 묻어 있었다. 윌리엄 수도사와 종자는 수사를 해가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나간다. 수도원의 아래 마을쪽의 사람들은 수도원에서 나오는 음식폐기물을 얻어서 그것을 재활용해서 먹을거리로 이용하고 그것을 위해 온갖 수도원의 요구를 다 수용하기도 한다. 다음의 피살자는 돼지피를 담아놓는 용기에 빠져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의 이름은 세베리노였다. 윌리엄 수도사의 친구 우베르티노의 암시에 의해 장서관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낸 윌리엄과 아드소는 미로속같은 장서관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 겨우 출구를 찾아나오기도 한다. 윌리엄은 아드소에게 이단의 흐름, 교회 평신도의 역할, 그리고 보편적 법칙에의 접근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의혹을 고백한다. 종자는 어둠속에서 홀로 있을 때 마을 처녀를 만나게 되고 정을 통하게 되기도 한다. 황홀한 지경에 빠진 종자는 수도사에게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처녀는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정분을 쌓은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교황측 사절단이 도착하기도 한다. 살바토레와 레미지오는 한 때 돌치노의 이단 사상에 빠져 그와 같은 길을 걷기도 했었다는 것을 고백하기도 한다. 돌치노가 어떻게 행동했던가에 관한 서적을 보고 아드소는 이단의 내용을 알게 된다. 그는 예전부터 윌리엄 수도사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이로 베르나르 기였다. 그는 이상한 행동을 일삼던 수도원의 잡일을 했던 살바토레와 또다른 마을 처녀를 붙잡아 신문한다. 그들은 횡설수설하게 되고 제대로 해명을 못하면서 살해용의자로 투옥된다. 마을 처녀는 아드소와 정을 나눴던 이였다. 마녀로 의심받게 되고 심문을 당하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이단에 몸담았던 한 수도사가 심문을 받게 된다. 돌치노라는 이단의 무리에 가담했던 것으로 해서 집요한 교리에 의한 추궁을 당하게 된다. 결국 그도 다음날에 살해된 채 발견된다. 최종적으로 장서관에서 살해의 증거를 찾게된 수도사와 종자는 그를 심문하게 된다. 그는 가장 원로 수도사라 할 수 있는 호르헤였다. 그는 성서에 위배되게 책을 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읽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것에 독을 발라 놓았다. 그것을 탐독한 이는 그것에 의해 독살을 당하게 되었고 피살되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희극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런 웃음 희화화가 인간의 두려움을 약화시키고 신앙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인식한 수도사가 그런 야료를 부린 것으로 해서 연이어 피살자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었다. 웃음이라는 것은 농부의 여흥이나 주정뱅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된 것이었다. 한편 베르나르기는 살바토레와 마녀사냥식으로 해서 십자가에 묶어놓고 화형식을 거행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살바토레는 화형을 당하게 되나 마녀는 마침 수도원에서 불이나는 바람에 사람들이 모두들 불을 꺼기위해 동원된다. 처자는 화형을 면하고 살아나게 된다. 성난 민중에 의해 쫓김을 당하게된 베르나르기는 마차를 타고 가던 차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윌리엄 수도사와 종자는 이제 다시 수도원을 떠나 돌아가는 여로에 오른다. 그러면서 종자는 처자와 최후의 작별을 고한다. 그녀의 이름도 모른채 종자는 그녀와의 연을 끊게 된다. 윌리엄 수도사는 그후 얼마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게 된다. 종자는 그가 준 돋보기를 쓰고 글을 쓰고 있다. 중세에는 카놋사의 굴욕이라해서 왕권이 교황에게 무릎을 꿇었던 치욕이 있기도 했다. 독일 왕이었던 하인리히4세가 자신의 궁정에 근무하던 신부를 대주교에 임명했다. 그러자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오 7세는 성직 임명권에 대한 협상에 응할 것을 요청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왕을 폐위하고 주교의 직위도 박탈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러자 왕은 왕비를 모시고 교황이 유했던 카놋사에 가서 폐위를 철회해 줄 것을 간청하게 된다. 차가운 눈밭에서 3일을 떨며 용서를 구했다. 1077년 1월 28일 왕의 폐위를 철회하는 선언을 하게 된다. 교황의 권력이 왕권을 넘어서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그는 다시 그의 굴욕적인 것을 복수하기도 했다. 그런 연후에 또 일어났던 것은 교황이 왕에게 굴욕적인 일을 당했던 것이 있었다. 아비뇽의 유수라고 명명된다. 교황이 왕권에 굴복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앙스 왕 필리피 4세가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를 아비뇽에 교황청을 옮겨올 것을 명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결국 1309년부터 1377년까지 거의 70년간 교황청이 아비뇽에 제한적으로 위치하게 된 사건을 일컫는 것이다. 아무튼 장미의 이름은 그 암울했던 중세의 시대를 배경으로 수도원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한 갈등과 사건들이 맞물리면서 충격을 주었던 살인사건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러 가지 복선들이 얼키고 설키게 되어있어 내용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중세를 배경으로 해박한 성서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간 것이 탁월한 점으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