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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속 마음의 정화 (4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by 자한형 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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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그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1451년 도미니코 콜럼버스와 수산나 디 폰타나로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직업인 양모직공일을 했었고 가톨릭을 신봉했다. 그는 147626세 때에 배를 타고 나갔다가 해적의 습격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리스본으로 상륙한다. 이후 그는 그곳에서 지도 제작 일을 하며 생활한다. 수학자 P토스카넬리에게서 받은 지도에 의해 그는 지구는 둥글고 계속 서쪽으로 가면 육지에 도달한다는 것에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검은 바다로 알려졌던 대서양을 횡단하기 위해 후원자를 찾아다닌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 관리이자 선장의 딸인 펠리자 페레스트 델로 에모니즈를 만나 1478년에 결혼한다. 장인에게서 항해술도 배우게 되고 여러 가지 도움도 받게 된다. 그러던 차에 스페인의 이자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대서양 횡단에 나선다. 그가 요구했던 것은 새로 발견한 곳에 대한 지배권과 수익의 10%, 그리고 귀족 칭호와 제독 칭호 등이었다. 그는 여왕으로부터 배 두 대를 지원 받는다. 그것은 핀타호와 니야호였다. 그리고 선원으로 의사, 목수, 은세공사. 에스파니아 황실의 사절 아랍어 통역자 등 90명이었다. 다른 배 한척은 선장이었던 핀손 형제가 제공한 배 산타 마리아호 였다. 149283일 항해가 시작된다. 본래 계획은 한 달을 항해하면 신대륙을 발견할 것으로 확신하고 갔지만 거의 두 달이 넘어서도 망망대해 속이었다. 오랫동안의 항해에 지친 선원들은 한없는 원망과 푸념을 널어놓는다. 924일 항해일지에서 그는 그렇게 썼다. 육지가 나타나는 조짐이 보이는 데도 현재 나와 선원의 관계는 심각한 상태다. 그리고 며칠 후 이제는 10월이 되자 선원들의 동요는 더욱 심해졌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말했다. “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내 머리를 잘라라. 그럼 여러분 모두 편안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1012일 새벽이 되자 드디어 육지를 발견한다. 그것을 최초로 발견한 이는 핀타호의 로드리고 데 트리아나 였다.“육지가 보인다.”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최초 상륙한 곳은 히스파나올라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담배와 해먹(흔들침대)을 가지고 귀국한다. 그리고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인디오 7명도 같이 데리고 갔다. 그런 다음 두 번째 항해는 여왕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엄청난 규모의 대규모로 이루어진다. 1495년에 1700명을 데리고 간다. 그가 식민지에 남겨두었던 선원 약 40명은 모두 원주민에 의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이제부터 총독이 된 콜럼버스는 더욱 악랄해지고 포악해진 정복자가 된다. 인디오들로부터 금을 약탈하고 노예로 팔아먹기도 하고 금을 가져오지 않는 피정복민들에게는 가혹한 형벌을 가한다. 그러자 그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게 되고 여왕은 그를 강제 소환한다. 세 번째 네 번째 항해까지 하게 된 콜럼버스는 파나마제도까지 발견하게 되고 더욱 식민지 지배를 공고히 하게 된다. 그러던 차에 여왕이 죽고 그는 후원자를 잃은 상태에서는 더 이상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항해를 처음으로 성공했다는 것에서만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서인도제도라고 착각하며 발견한 이후 그를 폄하하려했을 때 나온 이야기가 계란 세우기였다. 계란을 세워보라고 하자 아무도 그것을 세우지 못했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그것의 끝을 조끔 깨뜨려 세우는 법을 보여준다. 그로써 그는 세계의 역사에 빛나는 영웅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그는 1506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최초로 그곳에 묻히게 된 후 그가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말은 그랬다.“다시는 죽어도 스페인의 땅을 밟지 않겠다.” 그의 유해는 다시 산토도밍고의 성당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러던 차에 그곳이 다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자 아바나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그에 대해 새롭게 재조명되고 스페인의 영웅으로 칭송되게 되자 그를 세비야의 성당으로 그의 유해는 옮겨진다. 인도양을 발견한 바스코다가마와 태평양을 발견한 마젤란 등과 함께 콜럼버스는 어쨌든 아메리카를 발견한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콜럼버스의 시신이고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세비아 성당을 보게 되었다. 하늘에 붕 떠있는 자세로 있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성자가 아님에도 그런 대성당에 안치될 수 있는 것도 무척이나 대단한 일이 아닌가. 그의 동상은 바르셀로나에 세워져 있다. 미국 뉴욕에도 있고 멕시코에도 있다고 하나 바로셀로나의 것이 제대로 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한평생 대서양을 횡단하며 인도를 발견하고자 했던 위대한 항해자 콜럼버스는 여러 가지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면 조선이 세워진지 100년이 지난 후 일어났던 일이다. 세계가 새로운 식민지지배를 시작하던 때였다. 미국이 독립한 1774년까지로 보면 콜럼버스의 발견이후에도 거의 200년 가까이 식민지배시대를 갖게 된 것이다. 지금 한창 재조명되고 있는 임진왜란이 시작되기 100년 전인 것이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그 신념하에 성취를 이뤄낸 위대한 업적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기초가 되는 것이리라. 한사람의 선각자 선구자가 결국은 그의 불굴의 신념과 의지의 궁극화를 통해 결국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곧 역사발전의 원동력이고 불씨가 되는 것이리라. 항상 처절한 고통과 아픔 희생이 있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멕시코에서는 그의 동상이 훼손되고 사장될 위기에까지 몰렸다고도 한다. 그들이 받았던 핍박과 홀대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리라. 아무튼 그는 포악한 정복자이기도 했지만 위대한 항해사로 역사에 길이 빛날 위인으로 남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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