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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의 향기 (5권)

1977년 봄 종례

by 자한형 202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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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봄 종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77년 봄 종례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전 까마득한 예전 얘기다. 나는 학우 13명과 함께 3반교실로 갔다. 교실에는 담임선생님과 60명이 엄숙하게 앉아있었다. 모두 심각한 표정이었다. 뒷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갔다. 14명이 교실 옆으로 죽 섰다. 실장이 차렷 경례 구령을 붙여 종례가 시작되었다. 담임은 어제 무기명으로 적어낸 쪽지에 적힌 불량학생 다섯 명을 호명했다. 첫 번째 학생에게 사정없이 뺨을 후려쳤다. 왕복으로 서너 대를 때리자. 매 맞은 학생이 벌벌 떤다. 몽둥이로 허벅지를 갈긴다. “또 떠들겠어. 응 맛 좀 볼래.” “학교에 도대체 뭐 하러 오는 거야? 학교를 그만 두던지 조용히 하던지 양자택일을 해” “조용히 못하겠으면 학교를 그만둬야할 거 아냐. 민심은 천심이야.” 첫 번째 학생이 매에 주눅이 들어 아주 비굴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 안하겠습니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 굴욕적인 인간의 나약함이 70여명의 눈에는 불쌍하게 비춰졌으리라. 나는 교실 뒤에 서서 그 모양을 보니 흡사 고양이 앞에 쥐요. 맹수의 왕 사자 낮잠을 방해한 생쥐와 흡사했다. 담임선생님은 잠바를 교탁위에 벗어두고 그 우람한 체격을 마음껏 뽐내는 중이었다. 차례차례 다섯 명이 박살이 나고 혼줄이 났다. 그는 씩씩거리며 일동을 향해 일장 연설을 했다. “권력관계를 아는가. 권력관계에는 일반권력관계와 특별권력관계가 있다. 쉽게 말해서 일반권력관계란 국민과 국가의 권력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특별권력관계란 여러분과 나와의 권력관계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매 맞고 고소해봐야 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다. 나는 Y대 정외과 출신이다. 대학이 문제가 아니다. 물론 대학에 가면 좋다. 그러나 대학에 간다고 해서 다 출세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나 같은 사람 대학 안가고 고등학교만 나오고 국제시장 시장바닥에서 장사를 못할 것 같나. 아마 그랬으면 난 지금 으리으리하게 떵떵거리며 살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미국인 학교를 많이 가봤다. 그들은 절대 남에게 방해하거나 상관하지 않는다. 그곳은 다 남녀공학이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수업 중에 손을 꼭 쥐고 수업을 받는다. 선생도 그것을 본다. 옆에 학생도 본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두 아이가 옆의 다른 학생에게 추호도 방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본받아야할 부분인 것이다. 남이 공부하는데 최소한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 왜 공부하기 싫으면 자기혼자 공부안하면 그만이지 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방해를 하는가 말이다. 인문 고등학교 3학년생이면 장차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다. 그게 상업학교나 공고와의 차이점이다. 여러분은 이 나라 지도자가 될 인물들이다. 그런데 담임이 이런 식으로 지도를 해서 되겠나. 나는 잔소리를 싫어한다. 학교에서 기분 좋게 수업하고 기분 좋게 끝을 내면 얼마나 좋으냐. 미국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한 학생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핀다. 연기가 화장실 위로 올라온다. 그것을 보고 선생이 뛰어가서 그 화장실에서 나오는 학생을 보고 얘기한다. 너 담배 피웠지. 아니요. 전 안 피웠는데요. 그리고 그 일은 끝이다. 증거가 없다. 그것을 갖고 학생을 때리고 하지 않는다. 물론 담배는 변기 속으로 들어갔지. 그것을 찾으러 변기를 뒤져 꽁초를 찾는 선생은 없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학생들이 보는데서 담배를 피운 놈이 12명이나 되나. 정 담배가 피우고 쉽거든 집의 골방에 가서 마음껏 담배를 피워라. 학교에서 화장실에 서너 명이 들어가 한 번씩 빨고 마는 그런 식으로 담배를 피워서 뭐하나. 지금 이 가운데는 학원에 가야하고 바쁜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것도 잘 알지만 여러분들이 계속 이런 식으로 수업을 받고 들어오는 선생님들마다 3학년 3반 수업분위기가 나쁘다는 소리가 끊어질 때까지 여러분이 졸업하는 날까지 이런 식으로 할 것이다. 알겠나.” “조용하게 앉아 있던 학생들이 겨우 소리를 내며 산발적으로 대답을 한다. 장승처럼 옆에 서 있던 14명은 멍하니 교단 위 담임선생님을 바라다본다. 다시 또 몇 명을 불러 호통을 치고 훈계를 한다. 앞으로 조용히 하도록 오늘은 이상. 실장의 차렷, 경례의 구령으로 종례가 끝난다. 나는 잠시 지난날 나를 생각해 보았다. 중학시절에는 매의 노예로 그 명맥을 유지했던 아주 나약한 존재로 삶을 영위한 것에 한없는 슬픔을 느꼈다. 앞으로 절대 그런 비굴한 인간성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결심한다. 아주 우둔한 든사람인 선생들에게 나는 아주 신물이 났다. 든사람 그리고도 어느 정도 된사람 그러나 현대에서 소외된 인간의 한 부류 선생님들 그들은 가난한 가정의 노동자 출신들의 후손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사회나 국가에 대한 반동적이고 비협조적인 아주 나약한 인간들이다. 그들에게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어서 빨리 대학으로 가서 나름대로의 어떤 학문과 진리를 위해서 인생을 불태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3반 교실을 나와 5반 교실에서 책을 싸서 자습실로 갔다. 어이없게도 수학과 영어선생님께서 숙직이었다. 이번에 수학선생님께서 가정의 경제 사정 때문에 서면학원으로 전직을 했다. 어떤 면에서는 기분이 나빴고 어떤 점에서는 공감이 갔다. 남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천재로 통하는 선생님이셨는데 대학에서 교수로 오라고 해도 가지 않을 능력있고 실력이 탁월하신 선생님이었는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또 영어로 탁월한 실력을 갖춘 선생님이 7월경에 서울의 종로학원으로 초빙되어 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더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이때 당시를 회고해 보면 참 아득한 시절이긴 하다.

전체 600명이 한 학년이었다. 그중 5개 반이 문과반이었고 나머지가 이과반이었으니 반반인 셈이었다. 4개 반에서 14명 정도씩 선발을 해서 특별반을 만들었다. 그래서 14명이 평소 일과시간의 수업은 5반에서 하고 소속반으로 가서 종례를 하는 특이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자신이 맡은 반이 수업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산만하다는 데서 분노하여 학생들에게 훈시하고 질타하는 부분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것이다. 역량이 탁월하고 실력이 출중했던 선생님들이 한 분 두 분 학교를 떠나게 된 것은 선발시험에 의해 우수한 학생들을 가르쳤던 부분이 이제는 평준화로 인해 그런 부분에서 실망한 선생님들이 더욱 나은 대우를 해 주는 곳으로 다들 입지에 맞는 자리를 찾아 떠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졸업한 후에 선생님들이 십시일반으로 사재를 출연해서 학원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생겼다. 오래 전 추억 속의 한 토막이었다. 31년 후 졸업30주년 홈커밍데이에 갔던 때에 은사님들을 초청했는데 이미 담임선생님은 고인이 되어 있었다. 삼가 명복을 빈다. 그시절에는 그래도 선생님들이 정말 제자들을 지도자로 키우고자 하는 열정도 있었고 혼신의 얼을 불어넣고자 하는 의욕이 충분한 선생님들이 많았다. 제자들을 위해 혼신을 다하여 열정적으로 교육하고자 했던 선생님의 깊은 뜻을 받들어 모두가 사회에 공헌하는 지도자로 다 성장 발전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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