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깃
패랭이 제껴 쓰고
무녀야 미칠 듯
너는 춤을 추다
도홍선(桃紅扇) 활짝 피어
붉은 입술 가리고
웃고 돌아지는
보석 같은 그 눈매
쩔레쩔레 흔드는
신(神) 솟은 몸
저도 남도 모르는
귀매(鬼魅)를 부르는데
헐은 옷 떨치어
낙화로 흩날리고
징소리 쟁쟁
바람집에 모이더라.
멸(滅)하지 않는 것 [신석초]
황홀하게도, 은밀하게도
내 가슴에 정열이 타고 남은
적막한 잿무덤 위에,
예지와 수많은 그리메로써
꾸며진 이 회색의 무덤 위에
페닉스! 오오, 너는 되살아서
불과 같은 나래를 펴고
죽은 줄만 여긴 네 부리에
매혹의 힘은 다시 살아나서
나를 물고, 나를 쪼으고
연애보다도 오히려 단 오뇌로 나를
또, 이끌어 가누나.
꽃잎 절구(絶句) 신 석 초
꽃잎이여 그대
다토아 피어
비 바람에 뒤설레며
가는 가냘픈 살갗이여.//
그대 눈길의
머언 여로(旅路)에
하늘과 구름
혼자 그리워
붉어져 가노니//
저문 산 길가에 저
뒤둥글지라도
마냥 붉게 타다 가는
환한 목숨이여.
백목련을 꺾던 밤 신석초
너와
내가
백목련을 꺾던 밤은
달이 유달리도
밝은 밤이었다.
백공작 같은
그 가슴에 안길
백목련을 생각하며
나는 그 밤을 새워야 했다.
인젠 하얀 꽃이파리가
상장(喪章)처럼 초라하게 지는데
시방 나는
백목련나무 아랠 지나면서
그 손을
그 가슴을
그 심장을 어루만진다.
고풍(古風) 신석초
분홍색 회장저고리
납끝동 자주 고름
긴 치맛자락을
살며시 치켜들고
치마 밑으로 하얀
외씨버선이 고와라
멋들어진 어여머리
화관 몽두리
화관 족두리에
황금 용잠 고와라
은은한 장지 그리매
새 치장하고 다소곳이
아침 난간에 섰다.
‘시문학’ 창간호 (1971년 7월) 소재.
주제는 고풍(古風)한 차림새에서 풍기는 예스러운 멋과 아름다움.
석초(申石艸, 1909-75). 본명은 응식(應植). 충남 서천 출신.
신석초(申石艸) 시인 / 1909~1975
충남 서천 출생. 본명은 응식(應植). 경성제일보를 거쳐 일본 호오세이(法政)대학 철학과 수학. 신유인(申維仁)이라는 필명으로 카프 진영의 비평가로 활동하다 전향함. 1935년 자신이 편집에 관여했던 잡지 [신조선]에 [비취단장(翡翠斷章]을 발표하면서 시작활동을 시작함. 고전적 혹은 전통적인 소재를 주로 다룸. 시집으로 [석초시집](1946), [바라춤](1956), [폭풍의 노래](1974), [수유동운(水踰洞韻)](197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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