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려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가을 기도 하이네 / 시인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쓸쓸함으로 그려내는 가을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그려내는
한 폭의 수채화이게 하소서
이 가을이 종일토록
내 마음 눈 시린 하늘 저 멀리
가벼운 새털구름 한 자락
고이 걸어두는 아름다운 가을이게 하소서
바람에 살랑이는
코스모스 향기 따라 가을을 실어옴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의 흐느낌 속에서도
이 가을이 내게 쓸쓸함이지 않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 하늘 뭉게구름 피어오르며
청명한 물길 따라 흐를 때
나 혼자 저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봄에
이 가을이 더 이상 외로움을
그려내는 가을이지 않게 하소서
단풍나무 불붙어 몸살나는 그리움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도 깊어지는
내 고운님을 향한
나만의 곱고 고운 그리움이게 하소서
낙엽 구르몽 / 시인
시몬, 어서 가자, 나뭇잎이 져버린 숲속으로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그대는 좋아하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낙엽의 빛은 부드럽고, 그 소리 너무도 나직한데
낙엽은 이 땅 위에 연약한 표류물
시몬, 그대는 좋아하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해질 무렵, 낙엽의 모습은 서글프고,
바람만 몰아치면 낙엽은 정답게 외치는데
시몬, 그대는 좋아하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발길에 밟히면 낙엽은 영혼처럼 울고,
날개 소리, 여인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그대는 좋아하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니,
오라, 날은 이미 저물고, 바람은 우리를 휩쓸고 있다
시몬, 그대는 좋아하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들국화 나태주 / 시인
울지 않는다면서 먼저
눈썹이 젖어
말로는 잊겠다면서 다시
생각이 나서
어찌하여 우리는
헤어지고 생각나는 사람들입니까?
말로는 잊어버리마고
잊어버리마고······
등피
아래서.
2
살다 보면 눈물날 일도
많고 많지만
밤마다 호롱불 밝혀
네 강심에 노를 젓는
나는 나룻배
아침이면
이슬길 풀섶길 돌고 돌아
후미진 곳
너 보고픈 마음에
하얀 꽃송이 하날 피웠나보다.
가을 편지 2 이해인 / 수녀, 시인
도토리만 한 꿈 한 알
밤 한 톨만 한 기도 한 알
가슴에 품고
길을 가면
황금빛 벼이삭은
바다로 출렁이고
단풍숲은 불타며
온 천지에 일어서고
하늘에선 흰 구름이
큰 잔치를 준비하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살아 있음의 축복
가을이여, 사랑이여
가을이 서럽지 않게 김광섭 / 시인
하늘에서 하루의 빛을 거두어도
가는 길에 쳐다볼 별이 있으니
떨어지는 잎사귀 아래 묻히기 전에
그대를 찾아 그대 내 사람이니라
긴 시간이 아니어도 한 세상이니
그대 손길이면 내 가슴을 만져
생명의 울림을 새롭게 하리라
내게 그 손을 빌리라 영원히 주라
홀로 한쪽 가슴에 그대를 지니고
한쪽 비인 가슴을 거울 삼으리니
패물 같은 사랑들이 지나간 상처에
입술을 대이라 가을이 서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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