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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수필51

시적 변용에 대하여 2021. 11. 12.
청추수제 이희승 벌레 낮에는 아직도 90 몇 도의 더위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숨을 턱턱 막는다. 그런데, 어느 틈엔지 제일선에 나선 가을의 전령사(傳令使)가 전등빛을 따라와서, 그 서늘한 목소리로 노염(老炎)에 지친 심신을 식혀 주고 있다 그들은 여치요, 베짱이요, 그리고 귀뚜라미들이다 물론, 이 전령사들이 전초역(前哨役)을 맡아 가지고 훨씬 먼저 온 것으로 매미, 쓰르라미가 있지마는, 그들은 소란한 대낮에, 우거진 녹음 속에서 폭양(暴陽)에 항거(抗拒)하면서 부르는 외침이라, 듣는 사람에게 '가을이다'하는 기분을 부어주기에는 아직 부족한 무엇이 있었다 그렇더니, 이 저녁에 들리는, 정밀(靜謐)속에 전진하여 오는 소리야말로, '인젠 확실한 가을이로구나!' 하는 영추송(迎秋頌)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오.. 2021. 10. 12.
말의 힘과 책임 이 규 호 (李奎浩) 우리는 어떤 구체적(具體的)인 상황(狀況, 또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고, 또 그 상황에 필요하다고 믿는 ‘말’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움직인다는 말은 좋지 않은 방향(方向)까지도 포함(包含)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생각할 때에는, 말에 따르는 ‘책임(責任)’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제, 말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두어 보기를 들어 보려 한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위한 말의 창조적(創造的) 역할(役割)을 이해(理解)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에 따르는 책임에 관해서도 말해 보려 한다. 어쩌면 우리의 언어 생활(言語生活)을 반성(反省)하는 계기(契機)가 될지도 모르.. 2021. 10. 3.
아침에 쓰는 일기 유인경(3편) 초등학교 때 숙제로 쓰기 시작한 일기를 60세가 넘은 지금까지 꾸준히 쓰고 있다. 아직도 ‘고전적’으로 공책에, 볼펜이나 플러스펜으로 꾹꾹 눌러 쓴다. 작가들에게 일기는 문장력 연마의 수단이다. 일상의 에피소드는 작품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정치인들의 일기는 사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어린 소녀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기자들의 취재나 학자들의 연구로도 닿지 못했던 엄혹한 상황 속 유대인 가족의 내밀한 고통을 전세계에 알려줬다. 평범한 소시민인 나의 일기는 단순히 생활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만, 내게 엄청난 치유 효과를 준다. 어린 시절엔 ‘책을 읽고 엄마와 시장에 다녀왔다’는 등의 단순한 일상을 억지로 적었다면, 나이가 들면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보다 내 마음 상태와 세상, 주변을.. 2021.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