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수필51 갑사로 가는 길 이상보 지금은 토요일 오후, 동학사(東鶴寺)엔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새로 단장(丹粧)한 콘크리트 사찰(寺刹)은 솜이불을 덮은 채 잠들었는데, 관광 버스도 끊인 지 오래다. 등산복 차림으로 경내(境內)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우리 넷뿐, 허전함조차 느끼게 하는 것은 어인 일일까? 대충 절주변을 살펴보고 갑사(甲寺)로 가는 길에 오른다. 산 어귀부터 계단으로 된 오르막길은 산정(山頂)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어 팍팍한 허벅다리만 두들겼다. 그러나 지난 가을에 성장(盛裝)을 벗은 뒤 여윈 몸매로 찬 바람에 떨었을 나뭇가지들이, 보드라운 밍크 코트를 입은 듯이 탐스러운 자태로 되살아나서 내 마음을 다사롭게 감싼다. 흙이나 돌이 모두 눈에 덮인 산길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는 우리들은, 마치 북국의.. 2021. 9. 27. 신록예찬 이양하 봄·여름·가을·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중에도 그 혜택이 가장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우거진 이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驚異)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고 녹음.. 2021. 9. 23. 미리 쓴 유서 법정스님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 라도 첨부되어야 하겠지만 제 명대로 살만치 살다가 가는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증오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라도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걸음 한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가.. 2021. 9. 20. 가끔씩은 날개를 달고 김영월 어느 누가 일상의 굴레를 쉽게 떠날 수 있으랴. 나이를 들수록 점점 더 빠져 드는 일상의 늪을 허우적 거리다가 꼬르륵..... 그대로 끝나고 마는게 우리들의 인생이 아니던가. 바쁜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일주일 한달, 일년이 후닥후닥 지나가고 "내 몫의 시간"은 별로 주어지질 않는 것 같다. 아무튼 직장과 교회, 가정등을 떠나 뭔가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 나만의 시간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 현실인지 모른다. 요즘 서점가에서 베스트 셀러로 떠오르는 조안리의 작품 "사람과 성공은 기다리지 않는다" 가운데 이런 대목이 나로선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저자는여 늬 날과 다름없이 바쁜 사무실 일을 마치고 혼자서 차를 몰고 퇴근한다. 마침 창밖으로 바라뵈는 가을 하늘이 너무나 파랗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 2021. 9. 17. 이전 1 ··· 5 6 7 8 9 10 11 ···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