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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 674

후식 같은 하루 후식 같은 하루 / 남태희 직장인에게 일요일은 달콤한 후식 같다. 한 주에 닷새 근무하는 사람이야 덜하지만 일요일 하루 쉬는 사람에게는 아껴 먹는 디저트처럼 감질난다. 밀린 잠도 자야하고 미룬 집안일도 해야 한다.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여 못다 한 인사들도 챙겨야 한다. 일요일 내내 평일 못지않게 나름 종종댄다.  눈을 뜨니 아침 아홉 시다. 이불 속에서 좀 더 꼼지락거리며 휴일의 평화를 즐길까 하다 벌떡 일어난다. 커다란 머그잔 가득 커피를 타고 티브이 리모컨을 무의식적으로 켰다가 끈다. 한구석에 쌓아 올려진 책과 우편물을 정리해야겠다는 강박에 마음이 바쁘다. 읽은 책들과 읽어야 할 책들, 답을 줘야하는 책을 분리한다. 봉투에 적힌 신상은 검은 매직으로 지워버린다. 몇몇 책을 책꽂이에 꽂으며 나의 글도 .. 2024. 11. 26.
달의 외출 달의 외출 / 윤혜주 그날, 시월 열사흘의 달은 청송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았다. 일등성별의 반 이상이 얼굴을 내민 눈부신 푸른 밤을 호미곶에서 보냈다. 소슬바람이 선명한 붉은 잎가지를 흔드는 가로수 길에 눈길 주다, 또랑또랑한 풀벌레 마지막 울음에 귀 기울이다가, 다글다글 파도에 쓸려가는 몽돌의 자지러짐과 청잣비치 시거리에 다정한 미소 건네며 밤새 노닐었던 모양이다. 희붐한 새벽녘이 되어서야 내 창문을 비추며 돌아가는 길을 물었다.  ​도망치듯 나선 길이었다. 때론 지진 뒤의 피할 수 없는 쓰나미가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언제 십일 남매라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있었던가. 그 바람 또한 예고나 하고 불었던가. 이번에도 가족의 근원을 흔드는 슬픔이 거대한 쓰나미로 밀려와 덮쳤다. 넷쩨네 유학 간 .. 2024. 11. 26.
운 / 박찬웅 - 제11회 청송객주 문학대전 금상 바람에 따라 정처 없이 떠다닌다. 둥실 두둥실. 바람에 몸을 맡겨 그저 흘러간다. 새하얀 뭉게구름을 보고 있으면 그곳에 안기고 싶다. 푹신푹신할 것만 같으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허상이다. 안개가 하늘에 떠 있으면 그게 구름이다. 산에 걸쳐 있는 구름을 본 적이 있다. 그 산을 올랐을 땐 구름이 아닌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생각과는 다른 구름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의 본모습을 봤을 때와도 비슷하다. 멀리서 보았거나 말로 들었던 사람을 가까이서 실제로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미지와는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치 구름과도 같이 가까이서 보았을 때와 멀리서 보았을 때는 차이가 있었다. 구름은 다양한 모양을 띤다. 양털 모양의 권적운, 줄무늬 모양의 권.. 2024. 11. 25.
풋밤 같은 상큼함으로 수필 쓰는 하루 풋밤 같은 상큼함으로 『수필 쓰는 하루』 / 몽자풋밤을 좋아한다. 물론 잘 익은 알밤도 좋아한다. 풋밤은 생으로 먹으면 달큼하면서도 부드러운, 또한 상큼하면서도 사각거려 씹는 맛이 좋다. 오도독오도독, 입안에서 터지는 소리가 재미있고 촉촉하게 물기가 맴돌아 쉽게 질리지 않는 맛이다. 단단하게 익은 알밤은 제대로 삶아서 공을 들여 까먹어야 그 맛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매끈한 껍질을 벗기고 보늬까지 걷어내야 단맛이 난다. 한알 한알 먹는데 손이 많이 간다. 맛은 있되 껍질을 벗기기가 불편하다는 점, 그러고 보면 같은 밤이라도 풋밤과 단단하게 익은 밤은 맛의 차이와 각각의 특징을 갖고 있다. 잘 익어서 요리조리 찬찬히 뜯어보고 음미하며 뜻을 되새겨야 하는 수필이 알밤이라면 생의 깊은 연륜은 약하지만 상큼하.. 2024.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