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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 672

운 / 박찬웅 - 제11회 청송객주 문학대전 금상 바람에 따라 정처 없이 떠다닌다. 둥실 두둥실. 바람에 몸을 맡겨 그저 흘러간다. 새하얀 뭉게구름을 보고 있으면 그곳에 안기고 싶다. 푹신푹신할 것만 같으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허상이다. 안개가 하늘에 떠 있으면 그게 구름이다. 산에 걸쳐 있는 구름을 본 적이 있다. 그 산을 올랐을 땐 구름이 아닌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생각과는 다른 구름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의 본모습을 봤을 때와도 비슷하다. 멀리서 보았거나 말로 들었던 사람을 가까이서 실제로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미지와는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치 구름과도 같이 가까이서 보았을 때와 멀리서 보았을 때는 차이가 있었다. 구름은 다양한 모양을 띤다. 양털 모양의 권적운, 줄무늬 모양의 권.. 2024. 11. 25.
풋밤 같은 상큼함으로 수필 쓰는 하루 풋밤 같은 상큼함으로 『수필 쓰는 하루』 / 몽자풋밤을 좋아한다. 물론 잘 익은 알밤도 좋아한다. 풋밤은 생으로 먹으면 달큼하면서도 부드러운, 또한 상큼하면서도 사각거려 씹는 맛이 좋다. 오도독오도독, 입안에서 터지는 소리가 재미있고 촉촉하게 물기가 맴돌아 쉽게 질리지 않는 맛이다. 단단하게 익은 알밤은 제대로 삶아서 공을 들여 까먹어야 그 맛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매끈한 껍질을 벗기고 보늬까지 걷어내야 단맛이 난다. 한알 한알 먹는데 손이 많이 간다. 맛은 있되 껍질을 벗기기가 불편하다는 점, 그러고 보면 같은 밤이라도 풋밤과 단단하게 익은 밤은 맛의 차이와 각각의 특징을 갖고 있다. 잘 익어서 요리조리 찬찬히 뜯어보고 음미하며 뜻을 되새겨야 하는 수필이 알밤이라면 생의 깊은 연륜은 약하지만 상큼하.. 2024. 11. 15.
호모 픽투스의 비애 호모픽투스의 비애 / 지영미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진 기술이다. 고유한 능력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확장하고 상상을 첨가한다. 그러한 과정은 자연 상태로 있던 사람과 사물들, 작고 무의미한 사건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유기적으로 얽힌 이야기는 그 시대의 정서와 현실에 맞게 가감된다. 인간은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대에 걸쳐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전승한다.  이야기는 민화, 만담 설화라는 옷을 입고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 내려와 아이들의 머리맡에서 애착 인형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세월 속에서 전하는 사람의 순발력으로 달라지기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양념을 첨가하면서 변형되기도 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뭉근히 숙성시킨 고유한 영양소가 이야기 속에 가라앉아 있다. 우리.. 2024. 11. 13.
종소리 종소리 / 최원현 “대앵, 대애애앵.” 종소리는 신기하게도 십 리가 넘을 우리 집까지도 들려왔다. 교회와 우리 집이 모두 조금 높은 곳에 있다 하더라도 사이에 동산도 두 개나 있건만 수요일 저녁만 되면 어김없이 들려왔다. 할머니는 먼 어두운 밤길은 다녀올 수 없기에 종소리를 들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를 하시곤 했다. 그렇게 중학교 3년간을 들었던 종소리다. 막내이모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 화요일 저녁이었다. 어머니 대신 나를 업어 키워주신 분이다. 몇 년 전부터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돌아가신 것이다. 얼마 전 찾아뵈었을 때만 해도 이리 빨리 돌아가실 것 같진 않았었다. 하지만 기름기가 다 빠져나가 버린 뼈와 가죽만 남은 가느다란 몸매와 얼굴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앉아 있는 것이라 할 정.. 2024.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