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수필 672

혼자 먹는 밥맛의 깊이 혼자 먹는 밥맛의 깊이/남모나는 종종 허름한 국밥집에 혼자 들어가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가령 계절과 상관없이 비가 부슬부슬 온다거나, 조곤조곤 무심히 흐르는 음악처럼 얌전한 저녁이거나, 뜬금없이 국밥이나 소주가 생각날 때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국밥집에서 마주하는 소박한 식탁은 꽤 오래된 습관처럼 취향저격인 풍경이다. 남들은 이 유서 깊은 청승을 만류하는 편이지만 거기 해장국집이나 순댓국집 구석에 앉아 주인이 그냥 틀어 놓은 텔레비전을 별 감흥 없이 보거나 지난 신문들을 뒤적이며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한 입 두 입 넘기는 일은 생각보다 쓸쓸하지도 군색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립고 그리운 일이다.잠시 허락된 온전한 공간과 한 끼를 받아놓고 앉아있는 일은 덜커덩거리던 하루와 생각을 차분히 가다듬어 볼 .. 2024. 10. 30.
그들의 신접살이 그들의 신접살이 / 강천기나긴 기다림이었다. 분주하던 까치집에 이제야 고요가 깃들었다. 드디어 알 품기에 들어간 모양이다.까치 부부가 둥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새해가 막 시작된 무렵부터였다. 이 나무 저 나무를 오가며 물색하더니 마침내 공원 가장자리 팽나무를 집 자리로 골라잡았다. 겨끔내기로 나뭇가지를 물어와 기초를 놓은 후 스무날이 넘도록 공사는 계속되었다. 얼마나 부지런을 떠는지 체력이 버텨낼 수나 있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부부의 안달과는 달리 까치집은 모양새가 엉성해 보였다. 대략 오십여 미터 간격을 두고 이웃하는 둥지가 서너 개 있다. 그네들의 집은 약간 둥그스름한 데 비하여 이들의 집은 길쭉하게 늘어져 있었다. 마치 집 두 개를 아래위로 이어 붙인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나마도 중간 부분은 .. 2024. 10. 29.
받침 그 위 받침, 그 위 / 최명임-2024 우하 박문하문학상 대상 어느 씨족의 씨방에서 빠져나와 저의 왕국을 세웠을까. 바람도 지치는 변방에 홀로 피었더라면 멍이 들었을 꽃이다. 무리를 이끌고 봄의 뜨락에 흐벅지게 피었다. 꽃은 제 모습에 반해 나르시시즘에 빠지고 나는 꽃들의 하느작거림에 벌겋게 취기가 오른다. 개양귀비가 붉은 깃발을 높이 올렸다. 아래로 필까, 위로 필까 고개를 내리 꺾고 몇 날을 생각에 잠겼더니. 꽃잎들이 하늘가에서 팔랑거린다. 향기에 취한 바람이 어쩌자고 꽃 속을 누비고 다닌다. 햇살 정원에서 벌이는 꽃들의 왈츠 바야흐로 그들의 우주가 펼쳐진다. 그들의 우주는 한 점으로부터 발아하였다. 바람과 비와 산소와 대지의 뭇 요소와 알 수 없는 무수한 입자들과 융합하여 존재의 출현을 예고하였다. .. 2024. 10. 28.
받침, 그 위 받침, 그 위 / 최명임-2024 우하 박문하문학상 대상 어느 씨족의 씨방에서 빠져나와 저의 왕국을 세웠을까. 바람도 지치는 변방에 홀로 피었더라면 멍이 들었을 꽃이다. 무리를 이끌고 봄의 뜨락에 흐벅지게 피었다. 꽃은 제 모습에 반해 나르시시즘에 빠지고 나는 꽃들의 하느작거림에 벌겋게 취기가 오른다. 개양귀비가 붉은 깃발을 높이 올렸다. 아래로 필까, 위로 필까 고개를 내리 꺾고 몇 날을 생각에 잠겼더니. 꽃잎들이 하늘가에서 팔랑거린다. 향기에 취한 바람이 어쩌자고 꽃 속을 누비고 다닌다. 햇살 정원에서 벌이는 꽃들의 왈츠 바야흐로 그들의 우주가 펼쳐진다. 그들의 우주는 한 점으로부터 발아하였다. 바람과 비와 산소와 대지의 뭇 요소와 알 수 없는 무수한 입자들과 융합하여 존재의 출현을 예고하였다. .. 2024.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