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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137

늙은 쥐의 꾀 늙은 쥐의 꾀(原題 : 效嚬雜記효빈잡기)-고 상 안 옛날에 음식을 훔쳐먹는 데 귀신이 다 된 쥐가 있었다. 그러나 늙으면서부터 차츰 눈이 침침해지고 힘이 부쳐서 더 이상 제힘으로는 무엇을 훔쳐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 젊은 쥐들이 찾아와서 그에게서 훔치는 기술을 배워 그 기술로 훔친 음식물을 나누어 늙은 쥐를 먹여 살렸다. 그렇게 꽤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쥐들이 말했다. "이제는 저 늙은 쥐의 기술도 바닥이 나서 우리에게 더 가르쳐 줄 것이 없다.” 그리고는 그 뒤로 다시는 음식을 나누어주지 않았다. ​ 늙은 쥐는 몹시 분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 마을에 사는 한 여인이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서 솥 .. 2022. 8. 20.
감탄과 연민 감탄과 연민-고재동 눈 들어 산을 바라보면 연두 초록 마구 번지는 사이로 산벚꽃, 철쭉꽃, 조팝꽃이 펑펑 제 황홀을 터트린다. 발자국 옮겨 들길을 걸으면 보리밭 서리서리 물결치는 그 곁에 자운영, 민들레, 제비꽃은 또 꽃수를 놓고, 어느 담장 안을 들여다본들 영산홍, 금낭화, 홍도화 한 무더기 피지 않은 집이 없다. 산벚꽃의 휘황함이요, 철쭉꽃의 정열이요, 조팝꽃의 떨림이라 했던가. 민들레의 미소요, 자운영의 유혹이요, 제비꽃의 교태라 했던가. 무릇 영산홍의 출중함과, 금낭화의 붉은 입술과, 홍도화의 귀기어린 관능을 보아라. 그 색깔과 향기의 길에 한번쯤 푹 빠져본다 한들 부처님이라도 어디 나무랄쏜가. ​ 친구 중에 유난히 감탄을 잘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들길을 걷거나 여행을 하다가도 그 마음이 어린아.. 2022. 8. 20.
오빠의 바다 오빠의 바다 -박미림 집 나간 오빠가 돌아왔다. 거지 행색을 하고. 달포만이었다. 초상집처럼 울고불고 전국을 찾아 나서곤 하던 가족들은 일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의 몰골에 할 말을 잃었다. 가난하지만 아들만큼은 온 정성을 다해 키우셨던 부모님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독 수재(秀才)였던 아들이었다. 내게도 오빠의 초라한 귀가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하늘같이 우러러 보이던, 우리 집의 우상이었던. 모범생 오빠, 그의 가출은 연유가 있었다. 난, 한 참 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부터 그는 모든 걸 포기한 인생 같았다. 짜증을 내고, 무단결석을 하고,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판을 벌이고, 온종일 기타를 두드리며 고성방가를 불렀다. 그러다가 .. 2022. 8. 20.
윤미순 선생님과 가을 윤미순 선생님과 ‘가을’- 김동찬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이셨던 윤미순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시더니 동시를 몇 편 써오라고 하셨다. 글이라고는 일기나 독후감밖에 써보지 못한 나에게는 시라는 것이 유행가 가사처럼 뭔가 멋있는 것이라는 정도의 개념밖에 없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내가 쓴 시가 목포의 지방신문인 《호남매일》에 실릴 것이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나는 목포에서 기차역으로 세 정거장 떨어진 ‘일로’라는 시골의 촌놈이었다. 대도시 목포의 신문에 실릴 것이라면 정말로 뭔가 그럴 둣한 것이어야만 했다. 원고지를 놓고 아무리 싸워도 좀처럼 써지지가 않았다. 밖으로 나가 내가 밥 먹듯이 오르내리던 감나무 위로 올라갔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헌 줄’ 아니면 ‘새 줄’을 기다리던 옛날이야기 속.. 2022.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