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4137 백정과 박서방의 차이 백정과 박서방의 차이 -가재산 옛날에 박씨 성을 가진 나이 지긋한 백정이 장터에서 푸줏간을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백정이라면 천민 중에서도 최하층 계급이었다. 어느날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다. 첫 번째 양반이 거친 말투로 말했다. "야, 이 백정 놈아 ! 고기 한 근 대령해라!" "예, 그렇습지요."그 백정은 대답하고 정확히 한 근의 고기를 떼어주었다. 두 번째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백정이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 거북했다. 그래서 점잖게 부탁했다. "이보시게, 박서방!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나." "예, 그러지요, 고맙습니다." 그 백정은 기분 좋게 대답하면서 고기를 듬뿍 잘라주었다. 첫 번째 고기를 산 양반이 옆에서 보니, 같은 한 근인데도 자기한테 건네준 고기보다.. 2022. 8. 20. 어물전에서 어물전에서 -손광성 일요일 같은 날은 고궁을 산책하는 일도 괜찮을 것이다. 아니면 정장을 하고 연주회에 가 보는 것은 어떨까. 젊고 멋진 여자랑 함께라면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다. 젊었을 때 우리는 폭풍우 속을 우산도 없이 걸었다. 이유 없는 반항과 까닭없는 울분과 그리고 폭음과 폭언과·····. 젊은 혈기마저 식어버린 지금, 필요한 것은 따뜻한 온기와 약간의 생동감이라고나 할까. 나는 외롭고 쓸쓸할 때면 아내를 따라 장보러 가기를 좋아한다. 시장의 물건들은 임자가 따로 없다. 먼저 선택하는 사람이 임자요, 사가는 사람이 임자다. 게다가 모든 것이 생동감으로 넘친다. 장사꾼들이 외쳐대는 떠들썩한 소음과 북적거리는 인파의 혼란 속에서 나는 가벼운 흥분마저 느낀다. 그런 감정은 어물전 앞에서 절정에 이른다. .. 2022. 8. 20. 집단 규율과 절대 권력의 횡포 도 서 명 : "모리 오가이"의 중편소설 “아베 일족” 제 목 : 집단 규율과 절대 권력의 횡포 간에이(寬永) 18년(서기 1641년) 봄, 히고(備後)의 초대 번주 녹봉 54만석의 다이묘 호소카와 다다토시(細川忠利)가 병사하자 사십구재를 지내기까지 중음(中陰)기간 동안 열여덟 명의 가신이 할복하여 순사한다. 중음이란 망자가 다음 생을 기다리는 사십구일을 말하며, 순사자는 이 기간 중에 자신의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 주군의 죽음에 뒤따르는 순사는 우리에게 무척 낯선 일이지만 일본 중세 봉건사회에서는 흔히 벌어지던 일로 하나의 관례일 뿐 크게 주목할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일본 근대 문학의 거장 모리 오가이 (森鷗外, 1862-1922)는 일본이 근대화 작업을 마무리한 후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 2022. 8. 14. 식물성의 저항 이인성{고종석} 1 문학에 대한 작은 느낌들 - 문학을 시작하는 자리 (1981-1983) 문학은 눌변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지. 달변을 믿을 수 없으므로, 그것은 '저들'의 체계이자 함정이므로, 문학은 더듬거리며 허우적거리며 자기 말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닐지. 마치 모든 것을 처음으로 말하듯이 그토록 어렵게. 눌변이란 침묵이 최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침묵할 수 없는 자들의 서투름이라고나 할까. 더듬거리는 꼴에도 결국 삶을 사랑하므로 침묵으로 초월하지 못한 자가, 또는 그런 초월을 거부한 자가 침묵하듯 말하는 방식. 덧붙여, 이 모순을 끝끝내 밀고 나가는 방식. 고쳐지지 않는 서투름 때문에 그는 언제나 실패하겠지만, 그렇지만... (pg.13) 논쟁적인 것은 결국 '저들'의 정체이다. '저들'의 권위.. 2022. 8. 13. 이전 1 ··· 3 4 5 6 7 8 9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