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5105 무산 무산(霧散)소리 / 강정숙 지금 어머님의 머릿속은 온통 안갯속이다. 자욱한 안개가 갈 길을 막고 있다. 온 종일을 출렁이며 안개 짙은 추억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다. 현재의 좌표도 보이지 않는다. 삶의 방향키를 잃어버렸다. 치매이다. 갑자기 아들에게 “오빠요, 외양간에 소는 메 났는기요?” 하고 묻는다. 아들은 “예, 매 났어요.” 한다. 이때 어머님은 외항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오빠와 어린 날 소 먹이던 시절로 가 있다. 그러다가는 “알라 들은 다 어디 갔노?” 하고 손자를 찾으신다. 보고 싶은 손자들이 집으로 오면, 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고 기억 속의 어린 손자만 찾는다. 누워서 손주들 밥걱정에 연속 헛기침을 할 때는 “어머님 밥해 놨어요.” 하면 얼굴에 안도의 빛을 띄운다.. 2022. 12. 6. 겨울편지 겨울편지 / 이명희 기억하시는지요? 이맘때쯤이면 기나긴 겨울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한 번씩 몸살을 앓는 것을. 그래서 나선 길이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가서도 시골길을 한참 더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 양쪽 길 옆으로 지금은 쉬고 있는 텅 빈 논과 밭들이, 그 뒤로 산들이,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겨울을 나는 중입니다. 사시사철 같은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나무와 산과 들판의 모습은 그림 속 배경처럼 든든합니다. 가감 없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겨울 들판을 볼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 나무들처럼 정직하게 살아야지 다짐합니다. 시골장터에서 친구와 만났습니다. 우리는 장터를 한 바퀴 돕니다. 시끌벅적한 시골장터의 활기와 사람살이의 훈기가 이곳에는 있습니다... 2022. 12. 6. 암용 위에 큰 뜻을 세우니 암용(巖龍) 위에 큰 뜻을 세우니 / 이승희 전통 묵집에서 무심코 눈길이 머문다. 부석사의 장엄한 전경 한 장, 이곳이 화엄의 땅임을 짐작게 한다. 길을 따라 병풍 같은 소백의 줄기가 펼쳐진다. 맑은 기운을 받으며 얼마나 들어갔을까. 저만치 소백의 명당 봉황산 품에 부석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부석사로 들어가는 연못에는 무지개가 떠 있다. 맞다. 이 땅은 몽골리안들이 동경하는 무지개의 나라. 무지개의 나라에서 가장 무지개 같은 곳, 가람으로 오르는 입구에는 속세와의 경계를 알려주는 당간지주가 서 있다.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 깃대인 당간. 당간을 양쪽으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 당간지주. 혼자보다는 둘이 났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인지. 폐사지의 당간지주는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였으나, 이곳 당간지주에 서면.. 2022. 12. 4. 산토끼, 집토끼 산토끼, 집토끼 / 박순태 토끼란 놈은 참으로 묘한 동물이다. 산과 집으로 갈라선 두 집단이 만물의 영장을 서로 자기네 영역으로 끌어들여 조롱까지 한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어느 지역을 위기로 몰아넣었을 때였다. 특정 종교집단이 바이러스 전파의 빌미로 손가락질을 받고, 그곳 단체장이 저울대 위에 오르는 민감한 시점이었다. 카카오톡 단체 방에 올린 글 몇 자가 나를 산토끼 신세로 만들었다. 위기 속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단체장을 두고 다른 지역 지도자와 비교하는 무지렁이 짓을 했던 게다. 자칭 집토끼 한 마리가 사약이라도 받은 듯 붉은 눈을 치켜뜨고 요란을 떨었다. 나도 우리 집에서는 집토끼이련만. 산토끼와 집토끼는 외형상 비슷해 보이지만 속성은 전혀 다르다. 산토끼는 특별한 거처 없이 생활하는지라 메토끼.. 2022. 12. 4. 이전 1 ··· 4 5 6 7 8 9 10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