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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5105

내 삶의 퍼펙트 내 삶의 퍼펙트 / 이병식 퍼펙트(perfect)란 말을 처음 들은 건 젊었을 때 볼링장에서였다. 한 게임을 스트라이크로 시작해서 스트라이크로 마감하여 300점 만점을 받는 것이다. 언젠가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여자 양궁선수가 과녁의 정중앙을 맞히어 중계방송용 카메라 렌즈를 깨뜨렸다. 그때 중계석에서는 퍼펙트 골드를 외쳤다. 퍼펙트는 그렇듯 완벽함에만 있는 것일까. 나는 한때 주차관리 일을 했었다. 내 나이 이미 노년에 이르렀지만 100세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조금 더 일이 필요했다. 주차관리 일은 책상에 앉아 사무 보는 일이 아니요, 기계를 돌려 생산을 하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팔고 돈을 받는 일도 아니다. 차를 잠시 보관해주고 그 대가를 받는 서비스업이다. 또한, 주차장 일은 젊.. 2022. 12. 16.
꽃은 시들면서도 노래한다. 꽃은 시들면서도 노래한다 / 유경환 공기가 투명하여 원거리도 잘 보인다. 방금 소나기 지나간 듯 그렇게 맑게 보인다. 서양화 가운데 유화(油畵)가 가장 발달한 그 이유처럼, 선명한 색채로 다가오는 먼 곡식 밭 그리고 가까운 목초지 또 눈앞에까지 다가온 나무 울타리.. 산에 오른 것이 아니라, 바람에 불려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너머 노랑과 초록이 밑바탕 된 들판이, 언덕을 타고 끝없이 이어진다. 원근법(遠近法)이 뚜렷한 그림이다. 하느님은 이런 그림을 위해 얼마나 많은 초록 물감을 만들어 산허리마다 넘치게 쏟아부은 것일까. 하느님은 우리에게 안 보여도 좋으나, 풀 꽃 나무를 키워내는 하느님은 꼭 필요하다. 이 싱그러운 자연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하늘이 길게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아래쪽 골.. 2022. 12. 16.
겨울편지 /반숙자 겨울 편지/ 반숙자 방금 우체부가 다녀 갔다. 요즘 부쩍 늘어난 우편물에 우체부는 영문 모를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오늘로서 편지는 65통을 채웠다. 9월, 10월 두 달 사이에 날아든 독자들의 편지다. 연예인도 아니요 유명인사도 아닌 평범한 촌부요 수필가인 내게 이렇게 많은 편지가 오다니 우체부의 의아스러움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 9월호 S지에 실린 원고지 8매의 짧은 글이 몰고 온 거센 바람은 얼음 속에서 피어나는 갯벌의 수선화를 내 생활에 피워 주고 있다. 내가 살아 온 이 만큼의 여정에서 이처럼 훈훈하기도 처음이요 부끄럽기 또한 처음이다. 과실 치사죄로 4년을 복역하고 나온 젊은이가 세상의 냉대에 좌절하며 요즈음은 아이들 장난돌에 맞아 바르르 떨며 죽어가는 개구리를 보고도 마음 아파 울어 버린다는.. 2022. 12. 16.
여체 여체(女體) / 도창회 조물주가 인간의 몸을 지을 때 아무렇게나 짓지 않았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인 것 같다. 나도 같은 생각이지만 아무려나 그 쓰임새에 따라 매우 조화롭게 지었는가 싶으기도 하다. 일찍이 어떤 시인은 인간의 육체를 소우주에다 비겼다. 어떤 생각에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옛 그리스의 천문인 푸톨레미는 우주는 분명 질서가 있게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런 소릴 내가 믿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단순한 몸둥이를 소우주라고 보고서 찬찬히 각 부위를 뜯어보면 신기하기가 이를 데 없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 대로 그 특색이 있겠지만, 그러나 대체로 여자의 육체는 남자보다는 더 아름답게 지어졌다는 게 통설이다. 그림 속에 나부(裸婦)를 가만히 지켜보면 나는 어느새 탐혹(耽惑)되어 야릇한 감흥에 젖는.. 2022. 12. 6.